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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Jan 28. 2019

걱정 공화국의 여행자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걱정 공화국이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이다. 법륜 스님의 책 <방황해도 괜찮아>에서 본 인상적인 내용이 있다.  하루는 반에서 꼴등 하는 아이의 엄마가 찾아와 아이가 꼴등만 면했으면 좋겠다고 걱정을 한단다. 또 다른 날엔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아이의 엄마가 와서 인서울만 했으면 하는데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을 쏟아내고 간단다. 다른 날에는 반에서 상위권 하는 아이의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 갈까 봐 걱정이라고, 또 다른 날에는 문제아 엄마가 와서 제발 등교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단다. 또 다른 날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데, 완쾌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한단다. 스님을 찾아와 하소연하는 엄마들의 이야기엔 내 모습도 얼핏 얼핏 보였다. 걱정 없이 사는 일, 가능한 걸까?


베트남 유명 레스토랑의 설거지 현장



걱정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별수 있겠냐만은, 여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걱정은 불쑥불쑥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로 인한 것도 있었고, 타인이 불러온 것도 있었다. 참 많은 걱정을 했다. 청결과 거리가 먼 설거지 현장을 본 레스토랑에서는 이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어도 될까 걱정했고, 탈이 났을 땐 혹시나 큰 병으로 발전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길을 잃었을 땐 이대로 숙소를 못 찾으면 어쩌나 걱정했고, 길을 잘 찾은 날엔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려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를 걱정했다. 상점에서도 비싼 가격을 제시하면 바가지 씌우는 건 아닐지 걱정했고, 너무 싼 가격이면 하자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고 걱정했다.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심지어 그 사실을 아는 데도 걱정 또 걱정이었다. 걱정하며 마음 졸였던 여행의 순간들을 공유해본다.    


# 첫 번째, 치앙마이 가는 버스가 엉뚱한 곳에 멈췄다


정지 사인


이른 새벽이었다. 태국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이동하던 버스가 생뚱맞은 장소에 정차했다. 쌩쌩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가 보이는 걸로 봐선 고속도로 같았다. 편의점과 주유소도 보였다. 동트기 전의 어둠을 헤치고 본 건 그게 전부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휴게소에 내려준 셈이다. 어둠, 혼자, 휴게소를 떠올리니 슬슬 걱정이 됐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편의점으로 이동했다. 우버를 부를 수 있다면 부르고, 그게 안 되면 구글 지도라도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았다. 근데 편의점엔 나의 구원자가 될지도 모르는 와이파이가 제공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무리 속으로 돌아왔다. 다들 "여기가 어디니?", "왜 버스가 이 곳에 섰을까?"이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알고 싶어 했지만 해답을 갖고 있는 여행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였다. 썬태우 한 대가 여행자 주변에 멈춰 섰다. 여행자들은 그 썬태우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나도 그 무리에 합류했다. 십여 명의 승객이 빈틈없이 빼곡히 자리를 잡자, 후덕진 인상의 아주머니는 능숙한 영어로 숙소 이름을 대면 숙소 앞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가격은 한 사람 당 50바트였다.  목적지를  취합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난 50바트를 찾아서 내려고 하는데, 무슨 영문인 지  10바트를 더 내라고 했다. "비싸요" "깎아주세요."와 같은 여행 중 흔하게 나올 법한 그 단어를 내뱉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순순히 60바트의 거래 조건을 수락했다.


 

썬태우는 마치 치앙마이 모든 숙소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한 명씩 목적지에 내려줬다. 네댓 명이 그렇게 내렸다. 목적지를 취합할 때 올드시티 간다고 말했던 중국 청년들이 있었다.  영어가 짧아설까. 여행 준비가 미흡해설까. 아님 중국 문화에 익숙해져 설까. 조금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꿋꿋하게 올드시티를 얘기하던 그들이 뒤늦게 숙소명을 찾아냈나 보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는 아주머니께 진짜 숙소 이름을 댔다. 그러다 올드시티에 도착했다. 내리라는 아주머니와 숙소까지 썬태우를 타고 가고 싶은 중국인이 살짝 대립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를 이길 수 없었다.  내가 타고 있는 썬태우는 '자비'의 썬태우가 아님이 드러났다.


썬태우 덕분에 무사히 숙소에 내렸다. 그 날의 해프닝은 '모든 것이 순조롭다'라는 제목의 일기가 됐다. 새벽 6시 인적이 드문 휴게소에 날 내려줘 막막했지만 '짠'하고 나타난 썬태우 덕분에  별문제 없이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일기는 끝을 맺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그때를 생각해보니 미심쩍은 게 한 두 개가 아니다. 으레 버스정거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 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니까 상점과 호객꾼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내렸던 곳엔 그 어느 것도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도 적절한 타이밍에 썬태우가 등장했고, 단 한 명의 열외자 없이 승객 모두가 썬태우에 탔다. 강한 확신이 드는데, 아무래도 버스 기사와 썬태우가 작당을 한 거 같다. 더 씁쓸한 건 그 사실을 눈치채는 데 거의 3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씨엠립 도착 첫 날, 받은 지사제들



#두 번째, 지사제를 들고 온 지구 반 바퀴를 돈 여행자


베트남에서 탈이 났다. 원인은 긴가민가했지만 병의 증세는 확실했다. 시도 때도 없이 랜덤으로 배에서 신호를 보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어려웠다. 활동에 제약이 생겼다. 서울에서라면 지체 없이 병원으로 갔겠지만 캄보디아의 병원은 썩 내키지 않았다. 소극적인 조치였지만 충분한 휴식과 따뜻한 물로 짐승 같은 회복력을 발휘해보기로 했다.  



베트남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린 후에(HUE)에서 만났는데, 그녀는 한국으로 귀국한 후 씨엠립으로 나는 호이안을 거쳐서 씨엠립으로 갈 계획이었다. 신기하게도 씨엠립 일정이 겹쳤고, 겹친 김에 얼굴이나 보자고 약속했었더랬다. 그래서 틈틈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었는데, 내가 배탈로 고생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랬더니 씨엠립에 아는 사람이 있는 데, 정로환을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사양을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근데 괜찮단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더 이상 사양할 여유는 없었다. 그럼 염치는 없지만 부탁한다고 했다. 숙소 이름을 적어줬다.



그렇게 캄보디아 도착 첫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 한 잔을 준비해서 정문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지사제를 가지고 올 그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리셉션 직원에게 나를 찾는 수고로움은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캄보디아의 아침은 뭐라고 해야 할까. 여행자 숙소가 밀집된 지역이라 여행자의 하루와 현지인의 하루가 극명하게 대비가 됐다.  바로 건너편 숙소 발코니에선 서양 여자 아이가 평화롭게 아침 요가를 하고 있었다. 반면, 내가 묵고 있는 숙소 측면에선 현지인이 아찔한 높이에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안전장치도 없이 안전 복도 없이 쪼리를 신고 그 힘든 일을 해내고 있었다. 또 여행자로 카테고리를 좁혀도  (상당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요가복을 입고 숨을 가다듬으며 코브라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녀와 겨우 씻고 병색이 짙은 모습으로 지사제를 기다리는 내가 심하게 대조가 됐다. 마음만 먹으면 서로를 인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각자 몫의 하루를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서 오매불망 지사제를 들고 올 구원자를 기다리는데, 늘씬한 체형의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셨다. 서양인 특유의 환한 미소를 보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는 내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곤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데이비드, 고향은 스코틀랜드, 나이는 60을 훌쩍 넘긴 고령자였다. 캄보디아에 온 지는 수년 째고, 이 곳에서의 직업은 영어와 불어를 개인 교습하고 있는 강사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직업 때문에 해외에서 생활할 일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에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그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 곳에서 수영을 하고, 오후엔 강습을 하며 수강생을 만나고 있다고.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이런 노년의 생활, 참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사십 대만 돼도 회사에서 버티는 게 쉽지 않다는 곳에서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젊은 회사라는 화려한 수식어에서 고용 불안정 다섯 글자를 발견한 건 비단 나뿐일까. 인공지능(AI)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직업 리스트를 클릭하며 다가오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고 또 걱정하는 건 나뿐일까.

그렇게 할아버지의 흥미로운 삶에 빠져들고 있을 때, 동양인 남자가 대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지구를 반 바퀴 돌았다는 여행자가 분명했다.

"저기요, 혹시"라며 말을 걸었다.

그는 도넛 두 개와 함께 정로환과 설사, 묽은 변, 식체라고 적힌 약상자 2개를 건네줬다. 그러면서 오늘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근사한 곳으로 1박 2일 여행을 갈 계획인데 동행하겠냐고 물었다.

아픈 데도 불구하고 그 제안은 달콤했다. 여행 배테랑이 설계한 여행을 어떨까. 동행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영 안 좋았다.  지금 나에게 절실한 건 화장실이었다. 그리고 회복이었다. 물론 아프지 않았더라도 처음 본 낯선 남자와 1박을 하는 여행을 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때는 몸상태 때문에 못 가니까 그저 이 몸상태가 원망스러웠다. 몸만 안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강렬했다.  


  

조심스럽게 거절의 의사를 밝히고, 비상식량으로 챙겨 온 하리보젤리를 건네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도 여행하면서 여행자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라며 쿨하다 못해 차가운 답변을 남기곤 "혹시 생각 바뀌시면 얘기 주세요. 전 오후에 출발할 거예요." 한 마디를 남기고 왔던 길을 길을 되돌아 갔다.



그리고 그 낯선 이가 건네 준 호의 덕분에 그 후 한 달 넘게 동남아 곳곳을 누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


그 때 작성한 칭다오 여행 계획표



#셋째, 택시인 줄 알았는데...


호텔 가는 버스를 탄다는 게 우리 집 근처를 오고 가는 익숙한  버스에 올랐다. 701번이 아닌 702번 버스에 오른 건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친구와 난, 기왕 벌어진 일 번화가에서 점심이나 먹고 숙소로 이동하자고 했다. 맥도널드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진짜 숙소로 이동하려고 했다. 근데 택시마다 승차를 거부했다. 숙소 이름이 적힌 종이를 보여줬는데도, 도통 알 수 없는 중국어만 내뱉고는 갈 길을 가는 택시들이었다. 서너 대의 택시를 그렇게 보내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커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몹시 친절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도로가에서 우리 대신 택시를 잡아줬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차 한 대를 세웠다. 우린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차에 올랐다. "씨에씨에" 고개를 돌려 감사함을 표현하는데, 우리를 태운 차가 출발했다.


 

출발하고서야 우린 이 차가 택시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택시 아닌 승용차를 잡은 게 영 이상했지만 그래도 이때까진 괜찮았다. 왜냐면 막 칭다오에 도착한 여행자의 설렘이 모락모락 꽃 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쾌하고 호탕한 친구가 여행책자의 맨 마지막 장을 펼치고, 대화를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이름이 뭔가요?", "몇 시인가요?"와 같은 간단한 회화를 중국어 문외한안 친구가 소리를 냈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킥킥거렸다. 중국의 성조를 깡그리 무시한 알 수 없는 중국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운전하는 아저씨의 웃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아저씨는 웃음 대신 차의 문을 일제히 닫았다. 창문도 모두 올렸다. 그리고 전혀 웃지 않았다. 알아들으려는 노력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험상 굳은 아우라를 풍기며 아무런 대꾸도 없이 갈 길만 갔다.

그때 차가 인적 없는 골목길로 진입했다.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이 상황을 생각하느라, 차에는 정적만 흘렀다. 그 조용함을 깨고, 아저씨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뮤직?"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차에 울리는 클래식, 빠빠바빰 빠빠바빰 베토벤의 교향곡이 순식간에 서스펜스 영화 ost가 돼 버렸다.

친구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 안 되면 뛰어 내지자.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커플이 있었대. 하루는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갑자기 차가 움직이지 않더래. 택시 아저씨가 신랑한테 말했대. "잠시 나가서 차를 밀어줄 수 있겠니?" 신랑은 차 문을 열고 트렁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있는 힘껏 밀었대. 그러자 택시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멀어졌대. 신랑은 신부를 계속해서 찾다가 귀국할 날이 돼서 한국으로 홀로 돌아왔대. 그리고 얼마 후, 아내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는데, 글쎄 시체에 장기가 다 적출돼 있더래,




마음이 지어내는 고약한 스토리를 차마 쫓아내지 못하고, 교회에 등록만 돼 있는 나일론 신자지만 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제발,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게 해 주세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게요. 세상에 이로운 사람이 될게요 '




처음으로 택시 아닌 택시를 탄 중국 여행의 후기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릴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그 다짐은 기억하지만 그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이 여행지에서 겪은 나의 걱정 스토리다. 걱정과 다르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이야기. 캄보디아 프롬펜에서 친구와 장기간 거주 중이라는 프랑스인에게 "프놈펜 치안이 안 좋다던데, 괜찮아?"라고 물었다가 "위험은 어느 곳에나 존재해. 이 곳 말레이시아에도 존재하고, 프랑스에도 존재해. 문제 될 건 없어."라는 말에 뒤통수를 한 대 가격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된 적이 있다.  그 후 일생의 단 일 년만이라도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여행 중이라는 여자 아이에게 "혹시 배탈 난 적 없어?"라고 물었다가 "고작 세 번"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한 번의 배탈에 호들갑 떨어던 내가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직간접 경험이 누적되면서, 나는 예전만큼 걱정을 달고 살진 않는다. 물론 걱정하기에서 은퇴한 건 아니지만 여행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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