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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Jan 24. 2019

모두가 잠든 새벽 한 시 로마

오후 5시에 나가자는 말은

이탈리아 거리


새벽 한 시, 잠에서 깼다. 얼마나 꿀잠을 잤는지 더 자고 싶은 욕구가 1도 없었다. 막 도착한 이탈리아 로마 숙소에서 새벽 한 시에 눈을 뜬 난 무엇을 해야 할까. 밀려오는 잡념을 곱씹는 일 말곤 딱히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가장 나를 괴롭히는 건 '깨워달라고도 했고, 5시에 나가자는 말도 남겼는데 왜 새벽 한 시까지 친구는 날 잠자게 냅뒀을까'였다.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평소 자주 접속하는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행여나 내 주관적인 감정이 실릴까 내 얘기가 아닌 친구 얘기로 시점을 변형했다. 최대한 담담하게 적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친구와 이탈리아에 놀러 왔어요. 점심시간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중국 우한에서 스톱오버를 했죠. 8시간 이상 스톱오버할 경우 항공사에서 호텔을 제공해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무비자로 중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깨알같이 거리를 누비고 다녔어요. 새벽 한 시 비행을 시작으로 거의 10시간 넘게 비행을 하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현지시각으로 아침 8시에 로마에 도착했어요. 근데 얼리체크인이 안 된다고 해서 짐만 호텔에 맡기고 콜로세움, 진실의 입 로마를 대표하는 관광명소를 구경했어요. 늦은 점심 먹으면서 친구가 체크인하고 오후 5시에는 나가자고 말했어요. 저는 그럴 수 있을까 회의적인 반응을 내보였죠. 친구는 나갈 수 있다고 나가야된다고 했어요.  오후 2시를 훌쩍 넘기고 체크인을 했어요.  친구가 먼저 샤워를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다는 게  잠이 들었나봐요. 아주 깊은 잠이 들었어요.


질문 드릴게요. 이럴 경우 친구를 깨운다 vs 자게 내버려둔다 여러분의 선택을 이유와 함께 적어주세요.

 




실시간으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깨워달라고 했으니까 깨워줘. 근데 안 일어날 수 있으니까 증거 영상을 만들어. 그리고 다음날 지랄하면 보여줘. 

-한 번 깨우고, 두 번 깨우고, 세 번까지 깨워보고 안 되면 혼자라도 로마를 즐겨.


좀 거친 의견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깨워준다에 한 표를 던졌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다.


-숙면 취하다 도중에 괴롭워. 난 그냥 자게 내버려둘래.

-일정만 들어도 피곤하다. 하루는 쉬어도 돼. 무리하지 마.



댓글을 보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이 그럴수도 있구나가 됐다.





이탈리아 겨리



다음 날, 혼자 꽁하고 싶지 않아서 친구에게 물었다.

 "왜 안 깨웠어?"

친구는 "너 코까지 골면서 자더라.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어. 그래서 쪽지 남기고 테르미니역에 있는 슈퍼 갔는데, 막상 혼자 나가니까 혹시 네가 도중에 깨면 어쩌지 걱정이 돼서 오래 돌아다닐 수가 없었어. 그래서 금방 들어왔는데 너 계속 자고 있더라."

친구는 친구대로 나를 배려했고 또 내가 잠들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있었다.


물어보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이 지어내는 고삐 풀린 이야기가 얼마나 높은  마음의 벽을 세울 수 있는 지 나는 알고 있으니까. 그저 허심탄회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것만으로도 그 벽은 허물어졌다.




대화를 한창 나누고 있는데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새로운 댓글이었다


"그래서 친구 깨웠어  안 깨웠어. 궁금해. 어서 알려줘."


'내 고민이  후기까지 궁금해할 만큼 흥미진진한 이슈였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댓글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도 지난밤 외롭고 심심할 뻔한 걸 또 내 생각에만 치우칠 뻔한 걸 막아준 익명의 유저였다. 실시간 답글로 소박하게나마 보답하고 싶었다.


"친구가 너무 곤히 자는 바람에 깨울 수가 없었어. 그리고 친구는 생체리듬이 깨졌다며 몹시 아쉬워했어. 새벽 한 시에 일어났대. "


바로 댓글이 달렸다 "아하 그렇구나. 이탈리아 여행 즐겁게 하고 와."


더 이상의 글은 달진 않았지만 낯선이의 세심한 관심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탈리아에선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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