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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Jan 23. 2019

모든 게 두려웠다

자꾸 집에 가고 싶었던 도쿄여행




생후 3개월 된 강아지를 온실 속 화초 마냥 집에서 귀하게 키우다 잠시 외출하게 됐다. 볼일을 마치고,  거의 집 근처였다. 행여 감기에 걸릴까 꽁꽁 에워싼 담요를 풀어, 엘리베이터 바닥에 강아지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엘레베이터 밖에서 기다렸다. 폴짝폴짝 뛰어서 내 폼에 쏙 안기길 기대하면서.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강아지는 그 어느 때보다 얌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이내 뒷걸음질을 치며 불안해했다. 그런 강아지를 안아 서둘러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세상이 살 만하다는 걸 느낄 기회가 전무했던 강아지에게 나는 무리한 일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아지에게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세상처럼 누구에게나 미지의 세계는 두려운 것다.   




나의 첫 여행도 그랬다. 친구와 도쿄행 비행기를 끊었다. 50만원이나 하는 비싼 비행기 티켓이었다. 심지어 저녁에 도쿄 도착해서 아침에 인천으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는 우린 저렴하게 잘 샀다며 고돼 있었다.

숙소를 예약해야 했다. 가난한 대학생이 비행기값에만 무려 50만원을 소비했으니 다른 항목에서 경비를 확 줄여야 했다. 예약사이트에 들어가 여러 숙소를 보고 또 봤다. 아니, 예약사이트도 몰라서 호스텔에서 만들어놓은 카페에서 예약을 한 것 같다. 어쨌든 모든 방법을 동원해 비효율적으로 후보지를 추렸다. 가격과 후기가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비싸기로 유명한 도쿄에서 1박 비용 3만원짜리 도미토리를 구했다.

으레 도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는 호텔과 달리 그 숙소는 골목골목을 한참 돌아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지금 같으면 절대 안 정했을 위치였다. 내부도 깔끔하보단 어수선했고, 밝기보단 어두웠고, 따뜻하보단  서늘했다. 그저 그런 숙소였다.


여행 일정을 짜야 했다. 여행 책자를 살펴보는데, 다 가고 싶었다. 유명하다니까 맛있다니까 전통이 있는 곳이라니까 후기가 좋으니까 이유는 다양했다. 그렇게 여행책자의 수식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여행 가기 전까지 일정이 추가되고 제거되는 과정이 반복됐다. 그렇게 2박 3일의 계획이라는 것이 세워졌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을 정하는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가는 방법을 몰랐고, 영업시간을 몰랐다. 그래서 헤맸고, 그래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도 못하고 되돌아 와야했다. '일본의 교통 시스템만 숙지하고 갔었더라도 유용했을텐데' 아쉬워하다 안다고 해도 집, 학교 뿐이던 길치 여대생 두 명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까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길을 잃고, 또 잃었다. 그만큼 체력이 소비됐다. 힘들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돈도 문제였다.  경비가 제한돼 있다 보니 지출이 있을 때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택보단 버스, 버스 보단 두 발을 선호했다. 비싼 시그니쳐 메뉴보다 가성비에 충실한 메뉴를 선택했다. 사고 싶은 걸 그저 바라만 보고 왔다. 그저 비행기티켓 값을 벌기 위해 도쿄를 촘촘히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아니, 하나라도 더 찍으려고 무리를 했다. 즐거움은 없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여기에 친하다고는 하지만 여행 초보자 두 친구 사이의 필연적인 의견 불일치가 발생했고, 그에 수반되는 마음 상함이 더해졌다. 점심 메뉴 고르기가, 잠시 저 찻집에서 차를 마시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그런 소소한 갈등이 누적됐다. 피로해졌다. 집에 가고 싶어졌다.


어렵게 점심 메뉴를 정했다. 해독 불가 수준의  일본어를 앞에 두고, 자판기라는 신문물을 이용해 결제를 해야 했다. 열등감이 튀어나왔다. 다른 문화권의 다른 방식을 경험해보지 못한 데에서 나온 창피함이었을까. 모든 걸 다 알아야 한다는 자만심이었을까. 아것도 모르는 내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상황을 참을 수 없었던 걸까.  모르면 모른다고 커밍아웃하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데 '모른다'는 그 세 글자를 차마 입 밖으로 못 내뱉던 시절의 이야기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을 앞에 두고, 낯선 맛을 느끼며, 낯선 경험을 하는 내가 낯설어서 편치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이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숙소가 아늑하지 못해설까. 고된 일정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선잠을 자기도 했지만 낯선 이의 코코는 소리와 잠꼬대에 다시 깨곤 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씩씩한 코골이였다. 집이 너무 그리웠다. 몇 시간만 지나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만 붙잡고 그 새벽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숙소보다 쾌적했을까.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잠에서 깼다. 근데 하늘을 고공행진하고 있어야 하는 비행기가 여전히 이륙 준비 중이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엔진 결함이 문제였다. 비행기 정검을 마치고 2시간 후 다시 출발하겠다고 양해해달라고 마무리되고 있었다.  


잠결에 무리를 따라 비행기에서 내렸다. 승무원이 내리는 승객들에게 3만엔 쿠폰을 나눠줬다. 공항에서 식사를 하며 대기해달라고 했다. 그런 공짜를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내심 기분이 좋았다. 스시집으로 향했다. 마치 모든 승객이 스시를 먹으러 온 것 같은 풍경이었다. 길게 늘어 선 줄을 합류했다. 순서가 되서 조금 짠 스시를 먹었다. 게이트 근처로 돌아와 비행기를 기다렸다. 근데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 있었다.  비행기가 차례 더 지연됐다는 안내방송이었다.


웅성웅성. 승객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명품 캐리어가 돋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선두에 섰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그 말과 동시에 고급진 슈트에서 명함을 꺼냈다. "지금 중대한 회의를 앞두고 있어. 내 일정 어떻게 책임질거야."  목소리가 점점 올라갔다. 중년의 아주머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비행기 결함이라는 데, 나는 무서워서 못 타겠다. 다른 항공편을 안내해달라. "그 말에 결함을 고쳤다해도 잠재적 결함을 안고 있는 그 비행기에 오르기 싫어졌다. 이번엔 휠체어를 탄 왜소한 체형의 할머니였다. "너네 일본,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가만히 있을 거냐. 가만히 안 있을 거 아니냐. 한국 사랆 무시하지 말아라" 반일감정을 토해냈다. 젊은 커리어 여성도 가담했다.  "내가 시간당 얼마 버는 줄 아느냐.  너희 과실로 인해 내가 손해를 보고 있으니 보상을 해 달라" 며 보다 적극적으로 원하는 바를 말하고 있었다.  40대 평범한 아저씨도 할 말은 있었다.  "나는 괜찮다. 근데 공항에서 몇 시간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가족은 어떡하냐. "며 가족 걱정을 쏟아냈다. 그 사연을 듣고 나니 나도 넘어갈 수 없었다. "제가 참석해야 하는 수업이 있는데요. 비행기 결함으로 어쩔 수 없이 수업에 참석할 수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속으로 야호를 외치면서.


각각의 클레임을 듣다 보니 흥미로웠다. 일본 여행 보다 이 시간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지루한 대기시간이 이어졌다.  한국 여자 분이 다가왔다. "아까 보니까 영어를 잘 하시더라. 죄송한데, 제가 배가 아파서 승무원에게 약을 좀 달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친구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있었다. 시트콤 같았다.


소란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 원래 출발 시각에서 대략 5시간 후, 게이트가 다시 열렸다. 두 번째, 탑승수속을 밟았다. 두 시간 후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나의 첫 번째 여행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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