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는 지진, 태풍과 달리 한정된 지역이 아닌, 전 세계로 피해를확산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코로나 19, 여행을 못 떠나게 된
3월 타이베이 Taipei 여행이 불발됐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호텔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싱가포르, 마카오에서 직접 받은 사진을 근거로 지금 한국에서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보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한 마디로 내 여행을 재고하라는말이었다. 내 눈으로 판단한 것과 다른 이야기, 아니 여행 가고 싶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구글만 연신 검색했다. 대만의 확진자수가 한국보다 적다면 크게 개의치 말고 여행을 감행하자가 내 방침이었다.
근데 비행 스케줄이 항공사 사정에 의해 일방적으로변경돼 버렸다. 2일 연차만 내면 떠날 수 있는 여행이 3일의 연차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3일 연차는 코로나 19로매출의 타격을 받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자의 권리 연차, 내 권리를 눈치 안 보고 누리는 날은 언제 올까. 그런 푸념을 하며 엄밀히 따지만 코로나 19가 아닌, 연차를용기 있게 내지 못한 나 때문에비행기 티켓을 환불하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 스케줄이 변경됐으니까 코로나가 진범이긴 하지만)
환불의 여정은 험난했다. 나와 같은 여행자가 지구촌이 된 2020년에한 둘이 아니었으므로. 각오는 했지만 음, 다시 복기해도 다시 할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피해 갈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부딪혔다. 원래도 평판이 그다지인 저가의 외국 항공사환불 절차는 코로나 사태가 더해져 더 골치 아픈 일이 됐는데, 여행도 못 가는 데다 이런 골칫덩어리까지 껴안게 된 나는 마냥 심기가 불편했다. 꽁꽁 얼어붙은 내수 경기로 힘들다는 자영업자의 넋두리 앞에 애당초 환불이 안 되는 티켓을 환불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악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사는 일에 지쳤나 보다. 그냥 뜻대로 안 되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눈 앞에 일을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환불 절차 및 방법을 찾았고, 그대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데....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번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연결 자체가 됐다가 안 됐다가 반복됐고, 연결은 그보다 훨씬 어렵고 어려웠다. 과장 없이 3시간은 족히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돈 얼마를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불면의 시간을 연결이 되지 않는 수화기에 집착하며 며칠을 보냈다.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가 이런 날 봤더라면 뭐라고 할까. 췌장암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슈퍼에서 기계 오작동으로 중복 결제된 2,3만 원을 되돌려 받으려다가 해야 하는 일을 떠올리고 그 일 대신 더 소중한 일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기로 결단을 내리는 그. 하지만 내게도 나만의 사정은 있었다. 내가 지금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좀 더 의미 있게 내 시간을 보낼까. 나는 오히려 그 얼마를 되새김하면서 후회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나는홀가분한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해 지금나에게 찜찜함을 주는 그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멋지게 살고 싶은데 돈이 걸림돌이다. 암튼
그렇게 연결된 상담원
기다린 만큼, 수월하지 않았던 만큼 기뻤던 순간, 목소리
그녀에게 예약번호, 여권번호, 국적, 이름 등 몇 가지 정보를 답함으로써 환불 처리는끝났다.
5분 남짓이면 됐다.
물론 실제 환불액을 내 카드 명세서에서 확인하는 일은 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로부터 또 한 달이 지났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우리나라는 이제 그보다는 약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어가며 해외 우수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닷새 연속 스무 명 안팎의 확진자 수를 기록 중이니긍정 쪽에 무게를 실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갈 뻔했던 여행을 아쉬워하며 환불을 기다리고 있다. 동시에 여행이 내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 지 깨닫고 있다. 다른 말로 시시콜콜 말 못하는 곤란함이 그만큼 쌓이고 있다는 것. 나의 여행을 만류한 외국계 회사원 내 친구는 한 달 유급 휴가를 다녀왔고, 지금은 무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 얘길 들은 후배는 "그래도 해고는 아니네요"라며 위로해주는데, 지금 고용노동부 대표번호 1350은 하고 싶은 말이 넘치는 사람들로통화 연결 조차 안 되고 있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지금 공부를 하면 미래 배우자상이 바뀐다,뿌린 대로 거둔다, 사필귀정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최후에 웃는 이가 되기 위해서 성실한 마음을 늘 간직하도록 하자.
이 모든 걸 무력화시킨내 노력과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존재,인간의 존재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든 바이러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안하고, 온기가 돼줄 사람은 거리를 두고 멀리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하게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하며, 더 나아가 생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라는 쓰나미
나는 현재가 불안해서 아니, 나를 사랑해서 최악의 상황에 놓여도 꿋꿋할 수 있는 경제력과 또 그 경제력을 가능하게 하는 내 경쟁력을 키울 궁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천금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 하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살 수 있는. 근데 머리가 하해진다.
우린 늘 그랬듯 코로나 19라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하겠지만 또 다른 핵폭풍급 폭탄이 안 왔으면 좋겠지만 10년 위기설도 있으니까 그 경우에 대비해 더 잘 극복하기 위해 아니, 폭탄급 파도에 올라타 파도를 즐길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