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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Apr 17. 2020

예측 안 되는 삶

타이베이 여행이 불발됐다



 달 전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사태는 지진, 태풍과 달리 한정된 지역이 아닌, 전 세계로 피해를 확산시켰고,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








코로나 19, 여행을 못 떠나게 된



 

3월 타이베이 Taipei 여행이 불발됐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호텔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싱가포르, 마카오에서 직접 받은 사진을 근거로 지금 한국에서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보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했다. 한 마디로 내 여행을 재고하라는 말이었다. 내 눈으로 판단한 것과 다른 이야기, 아니 여행 가고 싶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구글만 연신 검색했다. 대만의 확진자수가 한국보다 적다면 게 개의치 말고 여행을 감행하자가 내 방침이었다.







 근데 비행 스케줄이 항공사 사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변경돼 버렸다. 2일 연차만 내면 떠날 수 있는 여행이 3일의 연차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3일 연차는 코로나 19로 매출의 타격을 받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다. 노동자의 권리  연차, 내 권리를 눈치 안 보고 누리는 날은 언제 올까. 그런 푸념을 하며 엄밀히 따지만 코로나 19가 아닌, 연차를 용기 있게 내지 못한 나 때문에 비행기 티켓을 환불하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비행 스케줄이 변경됐으니까 코로나가 진범이긴 하지만)





환불의 여정은 험난했다. 나와 같은 여행자가 지구촌이 된 2020년에 한 둘이 아니었으므로. 각오는 했지만 음, 다시 복기해도 다시 할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피해 갈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부딪혔. 원래도 평판이 그다지인  저가의 외국 항공사 환불 절차는 코로나 사태가 더해져 더 골치 아픈 일이 됐는데, 여행도 못 가는 데다 이런 골칫덩어리까지 껴안게 된 나는  마냥  심기가 불편했다.  꽁꽁 얼어붙은 내수 경기로 힘들다는 자영업자의 넋두리 앞에 애당초 환불이 안 되는 티켓을 환불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최악은 아니라고 위로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사는 일에 지쳤나 보다. 그냥 뜻대로 안 되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눈 앞에 일을 해결하자는 마음으로  환불 절차 및 방법을 찾았고, 그대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거는데.... 공식 홈페이지에 적힌 번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연결 자체가 됐다가 안 됐다가 반복됐고, 연결은 그보다 훨씬 어렵고 어려웠다. 과장 없이 3시간은 족히 수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돈 얼마를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불면의 시간을 연결이 되지 않는 수화기에 집착하며 며칠을 보냈다.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가 이런 날 봤더라면 뭐라고 할까. 췌장암으로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던 어느 날, 슈퍼에서 기계  오작동으로 중복 결제된 2,3만 원을 되돌려 받으려다가  해야 하는 일을 떠올리고 그 일 대신 더 소중한 일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일을 하기로 결단을 내리는 그. 하지만 내게도 나만의 사정은 있었다. 내가 지금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좀 더 의미 있게 내 시간을 보낼까. 나는 오히려  그 얼마를 되새김하면서 후회할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나는 홀가분한 내일의 나를 만들기 위해 지금 나에게 찜찜함을 주는 그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멋지게 살고 싶은데 돈이 걸림돌이다. 암튼




그렇게 연결된 상담원

기다린 만큼, 수월하지 않았던 만큼 기뻤던 순간, 목소리

그녀에게 예약번호, 여권번호, 국적, 이름 등 몇 가지 정보를 답함으로써 환불 처리는 끝났다.

 5분 남짓이면 됐다.

물론 실제 환불액을 내 카드 명세서에서 확인하는 일은 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로부터 또 한 달이 지났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우리나라는 이제 그보다는 약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어가며 해외 우수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닷새 연속 스무 명 안팎의 확진자 수를 기록 중이니 긍정 쪽에 무게를 실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갈 뻔했던 여행을 아쉬워하며 환불을 기다리고 있다. 동시에 여행이 내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 지 깨닫고 있다. 다른 말로 시시콜콜 말 못하는 곤란함이 그만큼 쌓이고 있다는 것. 나의 여행을 만류한 외국계 회사원 내 친구는 한 달 유급 휴가를 다녀왔고, 지금은 무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 얘길 들은 후배는 "그래도 해고는 아니네요"라며  위로해주는데, 지금 고용노동부 대표번호 1350은  하고 싶은 말이 넘치는 사람들로 통화 연결  조차 안 되고 있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지금 공부를 하면 미래 배우자상이 바뀐다, 뿌린 대로 거둔다, 사필귀정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최후에 웃는 이가 되기 위해서 성실한 마음을 늘 간직하도록 하자.

이 모든 걸 무력화시킨 내 노력과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존재, 인간의 존재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든 바이러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불안하고, 온기가 돼줄 사람은 거리를 두고 멀리해야 하는 존재로 치부하게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하며, 더 나아가 생계의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라는 쓰나미






나는 현재가 불안해서 아니, 나를 사랑해서 최악의 상황에 놓여도 꿋꿋할 수 있는 경제력과 또 그 경제력을 가능하게 하는 내 경쟁력을 키울  궁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천금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말 하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살 수 있는. 근데 머리가 해진다.





우린 늘 그랬듯 코로나 19라는 이 위기를 잘 극복하겠지만 또 다른 핵폭풍급 폭탄이 안 왔으면 좋겠지만 10년 위기설도 있으니까 그 경우에 대비해  더 잘 극복하기 위해  아니, 폭탄급 파도에 올라타 파도를 즐길 수 있게

나를 더 사랑하고

내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지금, 이 시간을 사랑하고 싶다

좋은 생각과 좋은 사람과 좋은 언어로

왜냐면 지금 내 머리 속엔 그런 것들보다 아닌 것들이 더 많고 그래서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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