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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Apr 12. 2020

코로나 19 때문에 방콕

행복한 소비에 관하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이 아니다


앤 랜더스






역사는 되풀이된다





행거가 무너졌다.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초과한 탓이다. 무너진 행거를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다. 어지럽게 뒤섞인 옷가지 속에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까먹고 있던 잊혀진 옷가지들을 발견했다. 나는 그 옷가지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는 쉽지 않았다. 이 상태를 유지할 여러 가지 이유들이 만들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활에 위협이 돼버린 옷들을 처분하지 못하는 이유가. 빠이가 오버랩됐다.






가방이 터졌다





태국 빠이 Pai , 도로 한복판에서 가방이 터졌다. 내 가방을 한계로 몬 원인 제공의 주인공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아름답지 않은 자태를 드러냈다. 생수통, 선글라스, 선크림, 우산, 보조배터리, 치약 칫솔, 책 한 권.....

난감했다.  하지만 난감해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수습이 필요했다. 그건 터진 가방에 내 물건들을 도로 넣는 일이었다. 미봉책이라는 건 알지만 할 수 있는 게 마땅치 않았기에 터진 부분을 손바닥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 들어섰다. 시원한 맥주가 간절한 순간이었다. 안주 몇 가지도 골랐다. 넘침 때문에 이 사단이 났지만 나는 반성은커녕 혼술을 완성시켜줄 물건들을 추가한 후에야 편의점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은 다소 편했다. 나의 구원주가 되어줄 비닐봉지 덕분이었다. 새삼 비닐봉지의 소중함을 느끼며 그보다 소중한  물건들을 조심조심 담았다. 그리고 조금 일찍 숙소로 향했다.





내가 작은 가방은 산 이유는



생수, 선글라스, 선크림, 우산, 보조배터리, 치약 칫솔, 책 한 권, 이 어마어마한 것들을 수용한 가방은 폭 20cm가량의 크지 않은  가방이었다. 베트남 hue에서 좀 더 쾌적한 여행을 이어가기 위해  큰 마음 먹고 것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론 생수통 하나, 카메라 하나, 스마트폰 하나 딱 그만큼의 물건만 몸에 지니고 여행하는 내 모습을 그리며 구매했다. 동남아의 상징 코끼리 문양이 새겨진 천으로 만든 가방, 가볍지만 가방의 본 기능에 충실한  대형 몰 Mall에서 적지 않은 금액으로 구매한 결코 조잡한 물건이 아니었다. 근데 사용한 지 한 달도 안 돼 탈이 났다. 나는 내가 생각한대로 내 여행을 이끌어나가는 데 실패했다.







내 가방이 포화상태가  이유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왜 수납할 공간도 얼마 안 되는 그 가방이 터지도록 물건들을 구겨 넣었던 걸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짐이 늘긴 했다. 이런 식이었다.

스콜의 영향으로 속수무책 비를 맞게 된 날이 있었고, 그런 날이 수차례 반복됐다. 그런 날들이 지난 후 나는 우산 챙기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또 내리쬐는 태양 때문에 곤란했던 날들이 있었고, 현지인보다 더 까맣게 탄 내 그을린 피부를 거울로 확인한 여러 날이 있었다.  내 피부와 눈을 보호해줄 선글라스와 선크림이 필요했다. 양치가 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고, 가방에 양치할 도구가 없어서 아쉬웠던 적이 있었다. 양치 도구가 추가됐다. 지갑을 잃어버릴 뻔한 일이 있었고 그때의 막막함이 강렬하게 각인된 순간이 있었다. 나의 비상금을 숨기고 있는 책을 늘 소지하고 있어야 했다. 카페에서 잠시 쉴 때, 소일거리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금방 방전되는 스마트폰을 위해 보조 배터리가 있어야 구글 지도를 볼 수 있었고, 보조 배터리 마저 제 기능을 못할 때를 대비해 충전기도 챙겨야 했다. 또 해외니까 어답터도 필요했다. 혹시나 모르는 그 혹시를 위해 나는 그렇게 내 가방을 혹사시켰고, 내 어깨를  짓눌렀다. 혹시의 늪에 빠져들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내 옷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는 여전히 내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애정 하는 옷도 있지만 애정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하지만 버리기엔 아쉬운 옷들도 다수였다. 나는 무엇을 위해 미련스럽게 그것들을 붙들고 있을까. 나는 왜 물건들에 둘러싸여 안락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 걸까. 소유가 더 이상 행복한 소유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물건을 처분하기로 했다





물건을 정리하기로 했다.  아니, 처분하기로 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었고, 반강압적으로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비행기를 타고 감히 여행을 떠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불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매스컴에 이름을 올린 지 석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 덕에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산 물건들과 함께할 시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시간은 안락과 거리가 멀었다.  그 불편함은 좋은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행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젤 먼저 인터넷에 헌옷 수거업체를 검색해봤다. 수거업체가 여럿 보였다. 상담을 받았다. 무료 수거 조건을 알아보니, 50리터짜리 봉투 4개 분량이라고 했다. 어마어마한 양에 놀랐고, 생각보다  많은 이용자 후기에 또 놀랐다. 1kg 당 고작 몇백 원이라는 거래 조건은 실망을 수반한 놀람 그 자체였다.  갖고 싶은 것을 고르고 사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 그 찰나와 같은 즐거움이 사라진 이후의 쇼핑은 그렇게 어두운 민낯을 보였다.  도무지 그 헐값에 내  소비의 결과물을 넘기고 싶지 않아중고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다는 커뮤니티에 내 물건들을 올리기로 했다. 그 중엔 홍콩에서 산 코치 Coach 가방도 포함됐다. 하루 만에 구매자가 생겼고, 그렇게 가방 하나를 내 방과 결별시켰다. 몇 년째 내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해먹, 아오자이 입은 여인이 새겨진 부채, 인도 전통의상 쿠르타... 중고거래를 통해 처지 곤란할 아이템들을 바라보며 당분간 여행이 어렵다면 일상이자 가장 많은 시간 머무는 내 공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를 생각해본다. 다른 말로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시간이라고 적어본다.




가난한 사람은 물건을 사고, 중산층은 집을 사고, 부자는 투자를 한다고 하는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소비는 무엇일까.

소비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확실한 건 지금 내 방을  메우고 있는 물건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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