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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씨 Apr 01. 2020

보이지 않는 밧줄

여행하면서 배운 3가지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게.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먼저 그대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결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어.


책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는 밧줄은 존재한다. 나에게도 분명 있었고, 지금도 있다. 하지만 그 밧줄이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여행이 한 몫했다고 믿는다.






나이는 변명거리가 아니다


나에게 가장 긴 여행은 2달 조금 넘는 기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여러 여행자를 만났다. 이렇게나 세계를 안방 드나들듯 여행 중인 젊은이가 많구나 감탄할 정도였는데, 더 놀라운 건 백발의 시니어들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자는 태국 빠이에서 만난 할머니였다. 그녀는 혼자 여행 중이었는데, 이유가 남달랐다. 남편은 일본을, 본인은 태국을 가고 싶어 해서 각자 여행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여행자들은 마치 입을 맞춘 듯 다 같이 Cool을 합창했는데, 나는 두 배로 더 크게 쿨을  외쳤다. 할머니와 온천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타이어 하나로  타이어 통과하기, 타이어 타고 구르기 등 일련의 놀이를 하며 조금 더 친밀해질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본 할머니는 이랬다. 백발의 머리를 염색으로 감추려고 하지 않고, 얼굴의 주름도 진한 화장으로 포장하려 하지 않고, 자칫 어른의 체신을 훼손할 수 있는 놀이 제안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젊은이들과 자연스럽게 동화할 수 있는, 내가 조금 더 살았으니 또는 살아보니 이렇더라 하는 일절의 말이 없는, 무엇보다 미소가 참 근사한 분이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본인의  잘 살아온 삶을 말과 행동, 그리고 온몸으로 보여줬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적어본다. 그리고 나는 할머니와의 만남 덕분에 그렇게 나이 들고 싶어 졌다. 

그나저나  배낭여행이 마치 이십 대의 전유물인양 떠든 사람은 대체 누굴까. 우린 실체도 없는 떠도는 말을  가볍게 흘려보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까.






위험하지 않을까?



여행하면서 위험했던 순간은 손에 꼽는데, 꼽아보면 이렇다. 우선, 오스트리아 Austria를 여행할 때 집시의 위협을 받았다. "도네이션 Donation" 하면서 장미꽃 한 송이를 건넸는데, 내가 얼떨결에 받은 게 문제였다. 받은 꽃을 다시 돌려주려는 나와 받은 건 더 이상 본인 소유가 아니라는 집시. 오고 가는 각자의 주장이 반복될수록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인상을 구기며 돈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다음엔 그녀의 일행이 가담했다. 20센티는 족히 돼 보이는

 날카로운 고드름 하나를 들고 날 보고 사악한 웃음을 짓는데....'설마 고드름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시트콤 같기도 한데 그 당시엔  처키를 닮은 그 집시가 내 몹쓸 상상력을 자극,  공포를 부추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융통성이 부족해, 무섭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경찰에 가자는 말만 반복했다. 그러다 그녀가 내 장갑 한 짝을 빼앗아갔다. 스마트폰 터치 기능이 되는 얼마 전 행사 갔다가 받아 온 공짜 장갑이었다. 어쩌지 하다가 한 짝은 쓸모가 없으니까 나머지 한 짝도 줘버렸다. 그 장갑을 받자마자 빛의 속도로 내 시야에서 사라진 집시 여인 두 명. 나는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사실 한국에선 가방에 장갑이 있어도 잘 안 끼는데, 유독 장갑이 아쉽던 여행이 된 건 영하 20도의 한파가 불어닥친 그 해 유럽의 날씨 때문일까. 아니면 내 것 아닌 걸 아쉬워하는 미련스러움일까. 어쨌든 친구님의 따뜻한 호의로 친구님의 장갑을 한 짝씩 나눠 끼며 집시 여인의 고드름을 이야기거리로 삼으며 동유럽의 추위를 제대로 경험하고 왔다. '무사히'  그 외에도 태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되기도 하고, 비행기 엔진 결함으로 공항에 발이 묶이기도 하고,  스마트폰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하고,  배앓이도 경험했지만

나는 지금도 또 다른 여행이 가고 싶은 걸 보면, 이런 것들은 내 여행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가 보다.







100세 시대, 노후 말고 즐거운 거 없을까?



낭쉐 가는 버스 안에서 슬로베니아라는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주인공과 같은 국적의  심리치료사 친구를 만났다. 창가에 앉은 내 옆에 그녀가  앉았고, 우린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여행의 외로움과 지루함을 다소 덜어낼 수 있었다. 소설에 대한 얘기가 개인적인 얘기로 이어졌다. 그녀는 100세 시대의 1년 정도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원한 건 1년 간 세계를 경험하는 것. 그렇게 내가 보름씩 체류하고 있는 곳을 1달의 일정으로 보내고 있다고 했다. 이순 할아버지가 인생은 80세부터라고 하셨지만, 그건 대배우 이순재 개인의 주장이지, 평범한 나는 100세 시대 하면 노후 자금부터

   떠 올 리 게 된다. 그런 이유로 80세까지 보장이 된 실비보험을 100세로 연장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 중인데, (아직도 결정을 못했다. 친구 말로는 80살 넘어 치료를 받는 거나 안 받는 거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서 암튼) 100살까지 산다면 적어도 1년 정도는 후회 없이 신나게 재미나게 보낼 궁리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명을 연장하고, 삶을 유지하게 하 경제력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는 건 무라카미 류가 말하지 않았나. 인생을 즐겁게 살지 않은 건 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던진 다음 질문은 배탈 난 적 없니?였다.

그 친구는 호듭갑 떨지 앓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지금까지 세 번 정도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런 경지에 오르기까지 고생했을 그녀가 짠했고, 대견스러웠다. 저녁 대신 스낵만 먹던 그녀에게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상상하려다 그만뒀다. 굳이 안 해도 될 걱정은 이제 좀 끊고 살기로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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