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경에 한사랑 보육원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어가 사정을 설명하니 원장님이 나오셨고, 흔쾌히 자료를 공개해 주었다.
“배달이 기억나죠. 작년 여름에 생부모를 찾으러 왔었는데 자료가 많지 않아서 힘들었거든요. 처음 아기를 발견했을 때 메모에 남긴 이름이랑 생년월일을 보고 당연히 어머니 정보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찾는 데 더 어려웠지요.그래도 방송국 사람들이 수완은 좋더라고요. 기어이 찾아내는 거 보면. 간신히 생부를 찾았는데 김이순 씨가 자기에겐 아들이 없다고 해서 또 시간을 허비했었대요. 결국 유전자 검사를 했댔나? 여하튼 발뺌할 수 없는 과학적인 증거로 둘이 부자 관계임이 밝혀졌는데, 이번엔 배달이 생모가 누구인지 김이순 씨가 전혀 감도 못 잡았다네요. 그래서 생모를 찾는 건 불가능해졌지요. 그게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안부가 궁금해서 배달이에게 가끔 연락했었는데, 올가을 이후로는 연락이 안 되고 있고요.”
원장님이 해 준 말은 대부분 입양기관에서 들었던 정보다.
“김이순 씨에 대해 더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연락 좀 주시겠어요?”
나는 정길이의 명함을 내밀었다. 이 명함을 이렇게 또 사용해 버렸으니 당분간 고모네 집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
“참, 김이순 씨에게 딸이 있다고 들었어요. 장례식 때 누나를 봤다고 했던 것 같아요.”
“장례식을 어디서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장례식장은 잘 모르겠고, 김이순 씨가 살던 곳은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이었어요.”
원장님이 돋보기를 빼며 말을 이어갔다.
“생모는 찾기 힘들 것 같아요. 엄마 쪽에서 배달이를 찾지 않는 한.”
“근데 왜 이름을 배달이라고 지으셨어요?”
“아. 네. 저는 이름 없이 들어온아이에게는 좀 특이한 이름을지어주곤 합니다. 아이들이 많아서 돌림자를 쓰거나 평범한 이름을 지어주면 같은 이름이 여러 명이 될 때도 있고, 헷갈려서 기억도 잘 안 나고 해서요. 이렇게 해두면 부모들이 아이들을 찾으려 할 때도움도 되고. 근데 배달이는 생부가 지어준 이름으로 개명을 했다더라고요.”
“영진이란 이름을 생부가 지어주셨어요?”
“네. 이름이 배달이 뭐냐고 역정을 내셨대요. 당신도 이름 때문에 놀림받고 고생했다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영진이란 이름을 골라 주셨다네요.”
영진이란 이름을 고른 이유가 진영인 아니었다.
갑자기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행위가 어쩌면 쓸데없는 망상일 뿐, 유배달과 진영이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몸속에서 째깍대던 시한폭탄이 제거된 기분이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무언가가 빠져나간 자리에 피로감이 차올랐다.
유배달이 거짓말 한 이유와 나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유가 무엇이든 그는 이미 떠나 버리지 않았는가. 누가 무슨 이유로 그를 보냈건, 그는 우리를 크게 괴롭히지 않고 떠났다. 그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냥 모르는 척 덮어도 되지 않을까. 수면 부족 때문인지 모든 것이 다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현관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고모는 어제와 똑같은 표정, 그러니까 꽤나 황당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집으로 와서 지내라는 말은 다 인사치레였나 보다.
“저 그냥 갈까요?”
고모가 웃으면서 돌아서려는 내 팔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정길이는 아직 퇴근 안 했어요?”
“응. 왜?”
“정길이 핸드폰으로 올 연락이 있어서요.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 여기서 지내야 할 것 같아요. 고모만 괜찮으시다면.”
고모가 현관에서 지었던 표정과 또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생전 연락도 안 하고 살던 사이인데 여기가 어디라고 갑자기 들이닥쳐서 신세를 지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지, 나도 내가 신기하다. 프랑스가 나를 바꾼 건지, 나이가 나를 바꾼 건지, 무슨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 자신도 뭔가 나답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딱히 나쁘진 않다.
가방을 풀고 씻으려는 데 정길이에게 전화가 왔다.
"형, 숙모님은 다시 예전 병원으로 옮겨 드렸어. 근데 형 출국이 언제라고 했지? 숙모 상태가 많이 안 좋아. 갔다가 금방 다시 나와야 할 수도 있어.”
상태가 악화돼서 돌아가신다 한들 내가 왜 다시 나와야 하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건 정길이가 해 줄 수 있는 대답이 아닐 것이다. 말없이 듣고만 있으니 정길이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기분이 어떨지 아는데··· 그래도 숙모가 돌아가시면 형이 상주니까 하는 말이야.”
내가 상주가 되어 장례식 내내 조문객을 맞아야 한다면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 자리를 지켜야 하나... 출국일을 앞당겨 어서 떠나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 고생 많았다. 고마워.”
나는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몸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고모가 차려준 저녁상 앞에서도 내내 머리가 복잡했다.
“맛이 없냐?”
“맛있어요. 저 때문에 힘드시죠? 앞으로는 먹고 들어 올게요.”
“요새 네 덕에 식사시간이 재미나고 좋아.”
누군가가 나를 위해 이렇게 많은 반찬과 새로 지은 밥을 정성스레 차려 준 적이 있었나?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세상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는데 몇 번의 밥상으로 혼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남남처럼 살던 사람 둘이, 식사 시간을 기다리며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문득 집에 혼자 남겨진 진영이가 떠올랐다. 잠시 미안한 마음이 들다가 그녀 주위를 포위하고 있을 세 녀석들이 떠올랐고 다시 전혀 미안하지 않아 졌다.
“대구는 언제 갈 거야? 할아버지 목 빠지신다.”
“다시는 눈에 띄지 말라고 하셨는데 가도 되나 몰라.”
“아이 안 낳으려고 프랑스로 가버리니 화나서 그러신 거지. 부쩍 늙으셨어.”
“······”
“널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잖아. 너 보면 깜짝 놀라실 거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줄 알고.”
고모는 또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아버지는 어쩜 이렇게 모든 가족들에게 사랑받았던 걸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사람인데.
“왜 생모에 대해 한 번도 안 물어봐?”
이런 질문을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고모를 보니 배려심 없는 건 집안 내력인 듯하다.
“하나도 버거워.”
더 이상의 복잡함은 사절이다.
그땐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이런 말. 이제 와 널 만날 수는 없다, 다시는 나를 찾지 말아라, 이런 말. 그 어떤 말이든 쉽게 넘길 수 있는 말은 없다.
엄마와 나의 시간은 엄마가 내 손을 놓은 그날 끝났다. 유효기간이 다한 인연은 일회성의 만남만 허락할 뿐,지속적인 관계로 유지될 수는 없기에 끝난 인연에 연연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천륜이라도 말이다.
유배달이 떠올랐다. 그는 생부를 만나서 행복했을까. 찾은 후 오히려 마음이복잡하지는 않았을까. 그는 용기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절박했던 걸까.
“김이순 씨에 대해 알아봤어요?”
“응. 여기저기 다 물어봤는데 그런 이름의 남자는 아는 사람이 없던데?”
“건물 세입자들 중에도 없어요? 누구든 원한 가질만한 사람으로···”
“원···한이라니?”
놀라 동그래진 눈이 깜빡거리며 나를 응시한다.
“말이 잘못 나왔네.”
“뭔데 그래? 응?”
“아니라니까.”
나는 대답을 채근하는 고모에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며 밥을 급히 넘겼다. 내가 자리를 뜨지 않는 한 이 대화는 끝이 안 날 것이다.
시계를 보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나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깜빡했다고, 많이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고 주무시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면 막상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기는 프랑스나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영업을 종료하려는 백화점에 들어가 조카 혜린이의 선물을 사서 처형네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전화했지만 선영이 누나는 받지 않았다.
날이 추워 아파트 앞 상가로 들어갔다. 곳곳에 트리 장식이 있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인 걸 깜빡하고 있었다.
진영이에게 전화할까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그렇게 뿌리치고 나왔으면서 크리스마스라고 전화하는 건 좀 웃긴 일 같았다.
커피라도 한잔하려고 돌아다니는 데 분식집 스탠드에 서서 떡볶이를 먹는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조카 혜린이었다.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 밖에서 군것질하는 아이가 내 조카라니... 핸드폰을 보느라 내가 옆에 다가서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분식집 아줌마가 혜린이 옆에 바싹 붙어 서는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묵 하나 주세요.”
아줌마는 옆 눈으로 계속 나를 주시하며 종이컵에 어묵을 담아 주었다. 어묵을 혜린이 앞에 내미니 그제야 혜린이가 나를 보았다. 놀란 눈을 깜빡이던 혜린이 입이 반가운 곡선을 그렸다.
“어! 이모부?”
“4학년! 이 시간에 밖에서 군것질이나 하고. 이래도 돼?”
“나 밥 먹는 건데?”
“저녁식사였어? 그럼 먹고 싶은 거 더 시켜. 다 사줄게.”
“아니야. 배불러.”
나는 혜린이 가방을 대신 메고 혜린이와 집으로 향했다. 아이 등에 거북이 등껍질처럼 붙어 있던 가방은 예상보다 훨씬 무거웠다.
“자주 이렇게 먹어?”
“응. 엄마가 늦게 오는 날이 많아서.”
혜린이의 방학은 어떨지. 점심도 저녁도 이렇게 혼자 먹는 날이 많을 것이다. 옆 동에 살며 하루에 몇 번씩 오가던 이모가 갑자기 먼 나라로 떠나버린 후 얼마나 허전했을까. 어느 정도 예상했던 상황이지만 눈으로 직접 보니 깊은 후회가 밀려온다. 내 현실에 지쳐 도망가느라 미처 혜린이를 생각하지 못했다. 아빠 노릇을 하겠다 다짐했었는데...
“씩씩하네.”
“나 이제 혼자서도 다 잘해.”
혜린이가 스스로 대견한 듯 웃어 보였다.
“그럼 집에서 혼자 밥 차려 먹을 수 있어?”
“그럼! 당연하지!”
“나도 못 하는 걸 혜린이가 한다고?”
“이모부는 못 해?”
“못 하지.”
“왜?”
“안 해. 못 해. 하기도 싫고, 귀찮기도 하고.”
“그래도 해야지. 어른인데.”
잔소리하는 건 진영이를 똑 닮았다. 어른 흉내 내는 혜린이가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른도 아닌데 넌 어떻게 혼자서도 잘해?”
“해야 하니까 잘하게 됐지.”
곰곰이 생각하다 내놓은 아이의 대답은 나를 먹먹하게 했다.
한참 운을 뗐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맘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럼, 저녁밥은 앞으로 집에서 먹을까?”
“······ 왜?”
“밤에 혼자 돌아다니는 거 위험해.”
혜린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버텨내는 시간이 어떤지 나도 잘 안다. 심심해서 여기저기 장난 전화를 걸고. 온종일 TV를 틀고 혼잣말하고. 게임하다 지쳐 잠이들고. 뭘 해도 시간은 더디 가고 재미없는 일분일초. 잘 알면서 이것을 아이에게 제안하고 있다.
“싫어?”
“······ 안 싫어.”
“표정이 별론데?”
눈두덩이가 빨개진 혜린이가 입에 억지 미소를 담는다. 힘겹게 끌어올린 입꼬리가 떨리는 걸 보고 있자니 괜한 소리를 했나 후회가 된다.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화나면 화내도 돼. 나쁜 거 아니야.”
혜린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앞으로 걸어가 버린다. 멀리까지 뛰어가서 눈물을 닦고 온 혜린이가 천천히 뒤따라 걷던 내게로 달려와 팔을 잡아끈다.
“이모부,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
마트에 들어가자마자 혜린이는 다시 밝아졌다. 과자, 라면, 바나나 우유··· 밝은 표정으로 이것저것 카트에 담던 혜린이의 시선이 갑자기 한 군데에 고정되었다. 아빠와 장을 보는 또래 아이였다.
“이모부가 다시 옆 동에 살았으면 좋겠다.”
아이의 미소가 쓸쓸하다.
“그럼 지금처럼 핸드폰 많이 못 할 텐데? 나 잔소리 심하거든.”
“핸드폰 안 한다고 약속하면, 다시 옆 동으로 이사 올래?”
어떻게 대답해야 희망 고문 없이 상처도 안 줄 수 있을까.
떠오르는 말이 없어 그냥 웃으며 혜린이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나보다 더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난처해하는 날 보며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