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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모아 Sep 08. 2024

[19화] 민우 이야기 - 놈의 뒤를 쫓다

<연재소설> 비밀의 부부

“다녀올게.”


화가 나서 충동적으로 가방을 쌌지만, 말없이 떠날 수는 없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던 진영이가 문을 나서는 내게 다가와 팔을 잡았다.


“돌아올 거지?”


울 것 같은 목소리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얼굴을 보면 못 떠날 것 같아 진영이의 손을 말없이 떼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따라 나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진영이는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을 것이다.


바람이 무척 찬 겨울밤이다.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샤를 드골 공항행 막차 표를 구매하고 기차에 간신히 올랐다.


자리에 앉아 한국에 가자마자 할 일과 후속적으로 할 일을 써 내려갔다. 예상밖의 경우를 대비하여 여러 가지 대안도 마련해 두었다.


유배달의 뒤를 캐려면 그의 입양을 담당했던 기관을 찾아가야 한다. 지갑 깊숙이 지니고 있던 명함을 꺼내 보았다. 첫 소설을 쓸 때 사용했던 사촌 동생의 명함이다. 우리 어머니가 이사장이었던, 이름만 대면 알만한 아동복지재단의 명함이다. 이걸 들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유배달의 입양을 맡았던 복지기관으로 갈 계획이다.


기차에 오른 지 30분 만에 파리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제일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후 이튿날 밤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내내 진영이에게 연락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안 하기로 마음먹고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오후 4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만 내려놓고 바로 유배달의 입양을 맡았던 복지기관으로 향했다. 


기관 입구에서 만난 직원에게 준비해 둔 명함을 보여주며 업무협조를 요청하러 왔다고 말했다.


전화로 말씀드린 대로 이곳을 통해 프랑스로 입양됐던 아이가 작년에 우리 아동복지재단에서 근무하며 생부를 찾았는데 생모는 못 찾고 프랑스로 돌아갔습니다. 낙담한 그 친구를 위해 복지재단 차원에서 대신 생모를 찾아 주고 싶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녀는 나를 작은 회의실로 안내했고, 잠시 후 한 남자 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들어왔다. 친절한 미소를 띤 남자는 몇 마디 인사말을 건넨 후 노트북을 열었다.


“찾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신댔죠?”


나는 유배달의 이름과 작년 여름에 생부를 찾았다는 , 그리고 이곳에서 번역 자원봉사도 했었다는 사실을 차분히 설명했다.


“아. 배달 씨 기억납니다.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요. 근데, 지금은 개명하셨다죠?”


“네, 맞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진 씨가 있었던 보육원에도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아버님도 좀 뵙고 기억나는 게 더 있으신지 묻고···”


“아버님이요?”


친절하던 남자가 갑자기 컴퓨터에서 시선을 떼어 나를 보더니 내가 건넨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님을 뵙고 싶다는 말에 놀라는 걸 보니 만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했다. 순간 유배달이 올여름에 한국에 왔던 이유가 생부가 위독해서였다는 말이 기억이 났다.


“찾아뵙고 묻고 싶은데, 이젠 그럴 수 없으니 보육원이라도 가보고 싶어서요.”


“아. 네.”


그는 다시 컴퓨터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았다.


지금도 영진 씨는 낳아 준 어머니를 찾고 싶어 합니다. 다만 프랑스에 살면서 찾는 건 한계가 있으니 맘을 접은 거죠. 그래서 저희가 대신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영진 씨한테는 우선 말하지 않고요. 이번에도 못 찾으면 상처가 클 테니까요.”


남자는 내 선의에 감동했고, 나를 전적으로 믿기 시작했다.


“네. 이해합니다. 생모를 찾으려면 생부의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데, 올여름에 돌아가셨으니 더욱 찾기가 힘들어졌죠. 생모 쪽에서 영진 씨를 찾으려고 시도하지 않는 한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방송국 사람들도 결국 못 찾았으니까요.”


“방송국이요?”


놀라는 나를 보며 남자 직원이 다시 의심스럽게 나를 살핀다.


“모르셨어요?”


“일터라 그런지 자세한 얘기는 안 하고, 아버님을 어렵사리 찾았다고만 들었습니다.”


“아. 방송에 관해 얘기하는 걸 꺼렸으니 말 안 했겠네요. 영진 씨는 생부모를 찾는 방송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간신히 생부만 찾게 된 거였어요. 결국 방송은 못 나갔지만.”


“방송이 취소되었나요?”


“영진 씨 부분만 안 나갔어요. 생부가 극구 반대했거든요. 사실 영진 씨는 방송으로 아버지 얼굴이 나가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어요. 근데 결국 포기했지요. 아버지 뜻에 따른다고. 담당 피디는 영진 씨 분량은 부모님 찾는 과정만 보여주고 결국 못 찾은 거로 방송 마무리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영진 씨가 자기도 모자이크 처리 안 해주면 방송 나가는 거 싫다고 했어요. 피디가 백번 양보해서 모자이크 처리해 준다 했는데 다시 말 바꿔서 방송 자체를 완강히 거부했고요. 그걸로 피디랑 싸우고 저희도 가운데서 아주 골치 아팠어요. 결국 방송도 안 나가고 생모도 못 찾고···”


방송에 나가는 걸 알고 지원했을 텐데,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까.


마음이 바뀐 건 생부를 만난 후였으니 생부에게 특별한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사연은 어쩌면 나와도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만난 지 1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상심이 컸을 거예요. 근데 가장 이상한 건 영진 씨가 갑자기 프랑스로 휙 가버린 거예요. 아버지 만난 김에 한국에서 살 거라고 취직까지 했었는데 말이죠. 방송이랑 생모 찾는 문제로 아버지랑 결국 사이가 틀어진 건지··· 혹시 영진 씨가 퇴사할 때 프랑스로 돌아가려는 이유를 말하던가요?”


사실 저도 그게 궁금해서 왔습니다, 말할 뻔했다.


“아니요. 저흰 그냥 생부모님 찾으면서 한국 생활에 지쳤나 보다, 이제 우리가 좀 도와주자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찾아온 거고요.”


“그렇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생모를 찾을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이네요. 그래도 기왕 시작한 거 한번 해 보려고 하는데 저희가 영진 씨 아버님 성함이나 보육원 등에 대해 아는 정보가 거

의 없습니다.”


“아버님 성함은 김이순 씨예요.”


유배달의 아버지가 김 씨라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 이름이 이순인 것도 신기했다. 이름을 특이하게 짓는 것이 그 집안 내력인가.


“김이순이요? 유이순이 아니고요?”


“네, 영진 씨가 있었던 보육원 원장님 성이 유 씨 일 거예요. 출생신고를 해야 하니까 원장선생님 성을 많이 따서 짓거든요. 보육원 앞에 버려질 때 김이순이란 이름과 생년월일, 아기 생년월일만 적혀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김이순이란 이름이 어머니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찾고 보니 아버님이었고요. 저희가 아는 정보는 이것뿐입니다. 우선 보육원 이름이랑 전화번호, 주소 적어 드릴게요.”


한사랑 보육원.


나는 남자가 적어 준 메모를 받아 들고 입양기관을 나섰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유배달과 나의 연관 고리를 찾으려면 김이순이란 남자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다. 유배달은 작년 여름에 생부를 찾은 후 한국에서 살 기회를 포기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내게 접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김이순. 혹시 어머니랑 연관된 사람인가.


유배달이 아버지를 찾기 위해 복지기관과 입양기관을 찾아다녔을 테니 아동복지재단의 이사장인 어머니를 알게 됐을 수도 있고 도움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나의 암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란 말인가? 돈이고 가족이고 다 내놓고 떠났으니 결국 어머니가 이긴 건데 나에게서 뭘 더 뺏으려는 걸까. 내가 한 것처럼 서서히 내 피를 말리려는 건가···


핸드폰 전원을 켰다. 혹시나 했지만 진영이는 안부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았다. 거실 CCTV로 그녀의 모습을 보려는데 카메라마저도 꺼져 있었다.


나는 보육원으로 가려다 어머니가 누워있는 요양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이순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표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당장 확인하고 싶다.






병원에 도착해서 면회를 요청했을 때 어머니가 다른 병원으로 전원 된 걸 알게 되었다. 내가 사용하는 명함의 주인인 사촌 동생에게 전화 걸어 물어보니 새로운 요양병원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고모가 옆에 있었는지 수화기의 목소리가 갑자기 고모로 바뀌었다. 세 명의 고모 중 나를 가장 아껴주던 둘째 고모였다. 내가 대구 할아버지 댁에 살던 3년 동안 모든 학교 행사와 정신과 상담 치료에 엄마로 대동해 주셨던 분.


“한국 왔으면 할아버지부터 찾아봬야지, 이놈아!”


“몇 시간 전에 도착했어요.”


“근데 거길 뛰어간 거야?”


마땅히 할 말이 없다. 이건 누가 봐도 나답지 않은 행동이니까. 특히, 나와 어머니의 사이를 제일 잘 아는 고모에게는 더욱 이상해 보일 것이다.


“걔는 같이 왔어?”


진영이를 뭐라고 부를지 몰라 아직도 걔, 쟤, 하지만 우리 집안에서 진영이와 나를 이해해 준 것도 둘째 고모뿐이다.


“걔 아니고, 진영이요. 김진영.”


혼인신고 후 집안이 발칵 뒤집혔을 때 고모에게 진영이 얘기를 했었다. 예상도 하고, 각오도 했지만, 진영이를 떼어내기 위해 혈안이 된 어른들을 상대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고, 지원군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고모는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을 이제야 찾았다며 너를 (적어도 겉보기에) 평범한 중 2 남자애로 만들어 준 게 그 애였구나, 서울에서, 그것도 어머니랑 다시 살게 된 마당에 다시 웃기 시작한 이유가 뭔지 늘 궁금했었는데, 하며 신기해했었다. 그리고 고모는 첫사랑 타령하는 걸 보니 몇 년 못 가 헤어질 거야 라는 말로 가족 모두를 안심시킨 후 상황을 마무리해 주었다. 나는 고모에게 어떻게 그런 기상천외한 방법을 생각해 냈냐고 고맙다고 인사했고, 고모는 멋쩍어하며 서운해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라는 대답으로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출판사 일로 저만 잠시 나왔어요.”


“지금 어디에 있어? 이리로 와. 여기서 지내.”


고모는 집으로 오라고 끈질기게 권유했고, 나는 한사코 거절한 후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핸드폰으로 고모 집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시차로 인한 피로가 몰려왔다. 호텔로 돌아가 쉴까 망설이다 그냥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서울 외곽, 외진 곳에 있는 허름한 병원이었다.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아 발을 돌리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내가 못 견뎌하는 쿰쿰한 다락방 냄새.


소등된 복도는 어두웠고 멀리 안내 데스크에만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안내 데스크에 도착해서 환자 이름을 말했다. 직원은 컴퓨터로 이름을 확인하더니 내일 오전 9시 이후로 면회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환자 명단에 이름이 있다니. 이런 요양병원에 있을 사람이 아닌데...


분명히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먼 곳에서 급히 왔는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다. 직원은 갸우뚱하면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고, 통화를 마친 그녀는 환자 상태가 안 좋긴 해도 위독한 상황은 아니라며 병원에서 연락한 게 맞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없이 안내 데스크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서 있었던 건데, 무언의 시위로 받아들였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직원이 병실 호수를 알려주었다. 일에 착오가 있었던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말과 함께.


병실은 6인실이었다.


어두컴컴한 병실 앞에서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비릿한 살 냄새와 묵은 대소변 냄새. 이런 냄새를 접할 때면 나는 속수무책이 되어버린다. 묻어 둔 기억을 후벼 파는 건 늘 냄새다.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들어가지 못하고 병원을 나섰다.

왜 이곳으로 옮겨온 걸까?


나는 병원 앞에 서 있는 택시에 올라 기사에게 핸드폰에 적힌 주소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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