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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모아 Sep 09. 2024

[20화] 민우 이야기 - 가족, 그 아이러니

<연재소설> 비밀의 부부

갑자기 들이닥친 날 보며 둘째 고모는 놀라면서도 반가워했다.


갈수록 아버지를 빼닮는다며,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네 아빠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하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몇 해 전 고모부가 돌아가신 후 부쩍 늙어버린 고모가 낯설다. 이미 저녁을 먹었다 했는데도 저녁상을 다시 차려주는 바람에 두 번째 저녁을 먹게 되었다. 자꾸 손가락으로 생선 가시를 발라 밥 위에 얹어 주는 것도 난감하다. 쓰지도 않을 젓가락은 왜 손에 쥐고 있는지.


“생선 싫어하는 거 알면서.”


두어 번 억지로 먹다가 생선을 옆으로 거둬 냈다. 고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보리 굴비를 다시 밥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가 이런 느낌일까? 옆에 앉아 있던 사촌 동생이 고모에게 눈을 흘기며 자기한테도 이렇게 좀 해 보라고 핀잔을 주었다.


"누구 엄만지 모르겠군. 진짜."


"너는 내가 이렇게 주면 성질내잖아!"


고모가 맞받아치자 사촌 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일이 있어서 네 명함 좀 썼어. 그렇게 알아."


"이 당당함은 뭐야?"


"혹시 입양기관에서 연락 오면 대충 알겠다 하고 끊어. 그리고 나한테 알려주면 돼."


사촌 동생이 다시 자리에 앉으며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놔. 내 명함. 이렇게 자꾸 도용할 거야?"


“오자마자 요양병원에는 왜 간 거야?”


고모의 말에 병실에서 나던 지린내가 떠올라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옮긴 거예요?”


“의식도 거의 없는데 비싼 곳에 있을 필요가 뭐가 있냐고···”


“큰고모가?”


고모는 대답 없이 생선 가시만 추렸다.


“어머니 재산이 어느 정도 인지 내가 아는데 병원비가 문제라고?”


“그냥 고모가 결정한 거지. 네 엄마는 지금 뭘 주장하고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니까.”


“원상 복귀해 줘요.”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원상 복귀를 해?”


“돈이 문제라면 내가 낼게요.”


고모와 사촌 동생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왜? 둘의 눈빛이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학대로 오랜 기간 상담 치료를 받아야 했던 내 어린 시절 이야기는 우리 집안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 큰고모에게 전화 걸었다.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서로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웬 아들 행세야? 너 돈 많은가 보다?


-없어요. 그래도 이건 아니죠.


-너 혹시 네 엄마 유산 바라고 이러는 거냐? 아니면 집 리모델링 해 준 거 때문에 그래?


리모델링이라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너도 니 엄마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그 집을 왜 허물고 다시 짓겠어? 거기를 그대로 남기고 죽는 게 찜찜해서 다 때려 부수고 새 건물 올린 거야.


-새 건물을 올리다니요?


-너 아버지한테 유산으로 받은 집, 그거 니 엄마가 다 부수고 새로 지었잖아. 몰라?


아버지가 나한테 상속하신 집을 나에게 말도 없이 리모델링해 버렸다니. 어머니가 나를 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다. 이걸 어떻게 대처할까 머리가 복잡하긴 하지만. 


뜻밖의 소식에 놀라고 빈정 상해서 나도 그냥 평소의 나답게 대응할까 망설여진다. 어머니의 비참한 최후 보는 것, 그거야말로 내 소망 아니었던가.


-그런 건 모르겠고. 병원이나 원상 복귀해 줘요.


아무리 묵은 감정이 태산 같아도 죽음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상대로 싸우고 싶지는 않다.


-왜 쓸데없는 데 돈을 쓰냐? 어차피 의식도 거의 없어서 아무것도 몰라. 그냥 죽는 날만 기다리며 진통제만 맞고 있는데 비싼 병실이랑 개인 간병인이 뭐가 필요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더 그러면 안 되지!


나의 역정에 수화기 반대편이 조용해졌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고모와 사촌 동생도 적잖이 놀란 눈치다.


-원상 복귀 안 하면 더러운 우리 집안 이야기 다 공개할 거예요. 5대 독자가 대를 잇기 위해 밖에서 아들을 낳았고, 우리나라 최고의 아동복지재단 이사장이었던 그 부인은 혼외 자식을 지독하게 학대했었고, 이 모든 내용은 내 첫 소설에 그대로 나와 있다고요! 소설 속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고 학대당한 어린 시절을 담은 내 자서전이라고 까발릴 거라고요!


전화를 끊고도 한참 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훌쩍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고모가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사촌 동생도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이, 잔인하게 학대받는 장면들이, 그 세세한 디테일이, 실제 내 이야기였음을 처음 알게 되었을 테니 충격이 컸을 것이다.


알 수 없는 수치심에 온몸이 경직되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다, 창피할 것 없다, 아무리 맘속으로 되뇌어도 기분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긴 하지만 왜 여기서 이렇게 터뜨렸을까. 원치 않아도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 수 있고, 내가 터뜨릴 수도 있는 사실이긴 해도 이런 방식으로는 싫었다.


수치스러운 기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꼭꼭 숨겨두고 상담 치료 때조차 발설하지 않았던 그 이야기를 나는 출판했다. 그리고 그 책을 어머니 피 말리는 데 사용했다. 처음부터 말려 죽일 목적으로 쓴 건 아니었지만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쓰긴 했다.


목표를 달성했는데 이제 와서 내가 왜 이러는지, 이 모든 모순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오긴 할지 모르겠다.


집을 나서려는 데 사촌 동생이 끝내 붙잡았다. 그는 나를 억지로 자기 방으로 끌고 가더니 편한 옷을 내어 주고 방을 나갔다. 생전 없던 가족 간의 사랑이 홍수처럼 흘러넘치고 있다. 나는 이런 동정이 몹시 불편하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시차와 여독으로 심신이 피곤한데 잠을 못 자니 신경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

밖에서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누군가 노크했고, 사촌 동생이 들어왔다.


“안 마시는 거 알지만 한잔할래?”


벽 쪽으로 돌아누운 내 등 뒤로 캔맥주 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는 척 대답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형이 싫었어. 같은 손주인데 왜 할아버지 할머니는 형만 아낄까. 왜 좋은 모든 건 형이 다 차지해야 하나 속상했었어. 제일 많이 누리고 사는 사람이 만날 뭐가 저렇게 불만인지 가족들 앞에서는 잘 웃지도 않고 말도 없고, 거만하게 구는 꼴도 보기 싫었어. 그러다 형이 어른들 몰래 맘대로 혼인 신고해 버리고, 또 어느 날 갑자기 프랑스로 간다기에 철없는 것도 참 어지간하다, 관심만 받고 살아온 응석받이가 또 사고 친다고 생각했었어.”


“······”


“이렇게 미운데 형이 쓴 소설은 다 읽었어.”


갑자기 왜 이런 고백을 하는 걸까. 1년에 서너 번 볼까 말까 한 사이였는데.


“큰고모는 아무래도 마음을 바꿀 것 같지 않아.”


예상했던 결과다. 고모가 어떤 분인지 나도 알고, 그분도 나를 아니까. 고모는 이미 내가 한 말은 허풍뿐인 협박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나란 사람은 썩어 문드러진 자존심 때문에 결코 세상에 대고 내 치부를 드러내지 못할 것을 아는 것이다.


“형이 직접 숙모님을 옮기면 되는 데 왜 이러는지, 아들이 보호자 자격으로 병원을 옮기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닌데 왜 고모한테 원상 복귀해 달라는 걸까 생각해 봤어.”


나는 계속 자는 척했다. 왜 여기 이런 꼴로 누워있어야 하나, 친하지도 않은 저 아이가 쏟아내는 불편한 말들을 왜 들어줘야 하나 한탄스러웠다.


“입장 바꿔 생각해 봤어. 병원에서 환자와의 관계를 묻는다면 할 말이 없겠구나.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겠구나.”


캔을 우그러뜨리는 소리가 들렸다.


“형 신분증 가져간다.”


그는 책상 위에 둔 내 지갑을 집어 들었다.


“프랑스로 돌아가기 전에 돌려줄게.”


“······”


“병원 가서 처리하고 전화할게.”


문 닫는 소리와 함께 잠이 쏟아졌다. 시차를 이겨내는 장사는 없는가 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정길이는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고모는 나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생선은 없었다.


“정길이가 오늘 요양병원 간다더라.”


나는 대답 없이 밥을 먹으며 시계를 보았다. 벌써 9시 반이다.


“짐 여기로 가져와.”


“편히 삽시다.”


“왜? 여기가 불편해?”


“그럼 내가 여기가 편할까?”


“왜 안 편해? 고모 집인데?”


“됐습니다.”


고모가 밥 먹는 내 앞으로 아버지 젊은 시절 사진을 쑤욱 내밀었다. 곁눈으로 흘끗 봐도 나와 쌍둥이처럼 닮은 사람이 빛바랜 사진 속에 서 있다.


“신기하지?”


고모는 사진을 도로 가져가더니 나와 사진을 번갈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어쩜 이렇게 빠지는 곳 없이 잘생겼다니? 키도 크고. 신성일 보다 났지, 잘난 내 동생.”


고모는 사진에서 눈을 들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귀티는 아버지보다 네가 더 난다, 이렇게 살 애가 아닌데, 걔한테 넌 사실 좀 아깝다 등, 듣기 싫은 말을 연신 쏟아내셨다.


“아버지는 감당도 못 할 걸 왜 그랬지? 조선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밖에서 애를 낳아 오냐. 그것도 부모가 시켜서. 저질러놓고 감당 안 되니 자긴 만날 밖으로 돌고.”


“니 엄마한테 허락받고 한 거였어. 할아버지가 자식 없으면 한 푼도 없을 줄 알라니까 먼저 꼬리 내린 게 니 엄마였거든.”


“엄마는 누가 엄마야?”


듣는 것도 거북한 단어다. 엄마가 생모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훈육이 아니라 잔인한 학대였음을 알게 된 열 살 이후로 단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는 단어다. 그러니 이것만큼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병원을 옮기는 건 아들 행세도 뭣도 아니야. 그냥 그 사람이랑 똑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야. 싸우는 것도 상대가 될 때 하는 거지.”


내 말을 듣긴 한 건지 고모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목이 멘 목소리로 툭.


“착하다.”


고모의 단어 선택은 중요한 순간마다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고모의 눈매가 촉촉해졌다. 불편해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모가 팔을 잡았다.


“오늘 밤에 짐 들고 와.”


고모는 마흔 살이 다 되어가는 나를 중학생 대하듯 걱정하고 있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었어?”


나는 고모의 손을 떼어놓았다. 고모는 눈을 흘기며 내 등을 후려쳤다.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둬요. 한번 먹으러 갑시다.”


고모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가려다 문득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혹시 고모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김이순이라고 들어봤어요?”


“김이순? 그게 누구야?”


“내가 묻고 있구먼.”


“난 모르는 여잔데?”


“남자야. 혹시 우리 집에서 일했던 사람일까?”


“왜? 알아봐 줘?”


“네. 우리 집안이나 회사 일 봐주던 사람이나 건물 세입자 중에 김이순이란 사람이 있었나 알아봐 주심 좋겠어요.”


고모는 김이순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고, 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로 대충 말해줬고, 심각한 얼굴로 내 거짓말을 듣던 고모는 결국 눈을 흘기며 내 등짝을 다시 후려쳤다. 샤워하고 나오니 고모는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며 김이순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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