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이상한 나라의 K

<연재소설> 땡감이 영그는 시간

by 헤모아

“어서 오세요.”


벨을 누르려는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며 K가 나왔다.


설마 외시경으로 복도를 지켜보고 있었나? 환한 얼굴로 나를 반기는 K가 조금 섬찟하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는 신발을 털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온통 블랙과 퍼플 색으로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K가 거실 한 가운데 있는 커피 테이블 위에 내가 선물한 케이크를 내려놓았다. 청동으로 된 거대한 문어가 유리를 떠받치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테이블이다.


“이쪽에 앉으세요.”


그녀가 소파 위의 보라색 벨벳 쿠션을 치워 주었다.


“뭐 드실래요? 커피? 차?”


“저는 차로 하겠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자, K는 차를 가지러 주방으로 사라졌다.


고딕 스타일 검정 가죽 소파의 착좌감이 예상보다 더 단단했다. 왼쪽으로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목제 프레임 안락의자가 있다. 그 앞에는 웬 마네킹이 생뚱맞게 서 있는데, 마네킹에는 꽤 굵은 밧줄이 둘둘 감겨 있다. 그 옆으로 승마용 채찍과 가시 징이 달린 개 목줄 같은 초커(choker), 그리고 레이스 장식이 너풀대는 무도회 가면 등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아이템들이 널브러져 있다.


아이템을 구경하고 있을 때 K가 차를 들고 소파로 돌아왔다.


“실내장식이 참 독특해요. 고딕 양식으로 꾸미신 거죠?”


“네, 저랑 잘 어울리지요?”


“그렇네요. 고풍스럽고 세련됐어요.”


인테리어에 대한 칭찬을 마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어요, 내일부터 비가 계속 온다죠, 등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시간을 때우다 다시 어색한 침묵이 시작됐을 때 K가 루이의 학교생활에 관해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루이는 조금 산만해요. 그래서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다 이 학교로 옮긴 거예요. 학교 선생님들이 더는 못 참겠다고 루이를 내쫓았거든요. 하는 수 없이 가톨릭 사립 학교로 전학 온 거죠.”


“아, 네.”


강해 보이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고민됐으면 친하지도 않은 날 집에 초대해서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는 걸까.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일 뿐 그녀도 아들 걱정이 큰 엄마였다.


“근데 이 학교도 마찬가지네요. 공립이랑 별반 다르지 않아요.”


“왜요?”


“다음 주에 루이네 학년이 소풍 가는데 루이는 데려갈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정말요? 베로니카 선생님이요?”


CP(초등 1학년)를 담당하는 베로니카 선생님이 그럴 분이 아닌데 의아했다. 월반한 에디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할 때 성심성의껏 보듬어 주시고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친절한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굳이 비싼 등록금을 내는 사립을 택한 건 공립 학교와 다를 걸 기대했기 때문인데, 이런 연락을 받으니 참 허탈해요.”


뭐라 할 말이 없다. 내가 아는 베로니카 선생님은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헌신적인 훌륭한 분인데 왜 그러셨을까, 그분이 그렇게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속상하셨겠어요.”


“루이 문제로 학교에서 자꾸 연락이 오니까 일을 다시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맞아요. 저도 그맘때는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럼 지금은 일을 하시나요?”


“가끔 샴페인 투어 가이드도 하고, 번역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요? 테라스에서 그림 그리는 걸 봐서 직업이 화가인 줄 알았어요.”


“화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죠.”


우리 집 테라스의 울타리가 꽤 높은데 같은 1층에서 어떻게 내가 그림 그리는 걸 봤을까 의아하다.


K가 찻잔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자 아랫입술의 피어싱 장식구가 도자기에 닿아 달그락거렸다. 저걸 빼면 어떤 모양일까? 두꺼운 가죽에 구멍이 난 것처럼 동그랗게 구멍이 뽕 뚫려서 잇몸이 보일까?


“안 아프세요?”


“이거요?”


그녀가 피어싱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네.”


“궁금하시면 해 보실래요? 제가 뚫어드릴 수 있는데.”


“네?”


“걱정 마세요. 얇은 바늘로 뚫고, 점점 게이지가 큰 거로 늘려가는 거예요.”


나는 펄쩍 뛰며 두 손을 공중에 휘적거렸다.


“아니요! 전 아픈 건 딱 질색이에요.”


그녀가 웃는 건지 찡그리는 건지 모르겠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과민한 건가? 어쩐지 아까부터 그녀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관찰하는 느낌이 든다.


“남편이 TV에 나오는 그 쉐프님이시죠?”


“아…. 네.”


“방송에 자주 나오시던데, 엄청 바쁘시겠어요.”


“그렇죠. 뭐.”


“사진보다 실물이 이뻐요. 그런 얘기 자주 듣죠?”


기욤을 이쁘다고 표현한 건가? 난데없는 말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K가 대답 없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한다.


“저요?”


미소를 띠며 고개를 가만히 끄떡이는 K가 조금 불편하다.


인기 있는 프랑스 요리사와 동양인 아내. 간혹 기욤 옆에 있는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고 레스토랑에서 찍은 사진이 인터넷 어딘가를 떠돌고 있으니 인사치레로 할 수 있는 말이긴 하지만, 지금 K를 보면 그냥 하는 말이라 하기엔 날 너무 탐구하는 눈빛이다.


나는 그녀의 질문에 딱히 답하고 싶지 않아 살짝 웃어 보이고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핼러윈용품을 판매하시나 봐요?”


“네? 핼러윈용품이요?”


K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휘황찬란한 안락의자 앞에 놓인 마네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저 물건들이 핼러윈 소품 아닌가요? 촬영하려고 준비하신 것 같아서요.”


K가 어이없는 듯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에디 엄마는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분이시네요!”


내가 뭐 대단한 코미디라도 한 양 큰소리로 깔깔대는데, 감정변화를 저렇게 극단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정말 처음 본다.


“한번 구경해 보실래요?”


나는 얼떨결에 K의 손에 이끌려 로프로 결박된 마네킹 쪽으로 다가갔다.


먼지떨이로 쓰기엔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깃털 막대기도 보였고, 넓적한 나무 패들도 있었는데, 패들에는 작은 하트와 별 모양의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별난 모양의 주걱도 있고….


“수갑도 있네요? 근데 이건 뭐에 쓰는 집게예요?”


내가 손가락으로 체인과 나사가 달린 검은색 집게를 가리키자 K가 다시 깔깔 웃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그녀의 웃음에 뭔가 다른 내막이 있는 게 아닌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왜 자꾸... 웃으실까….”


내가 혼잣말처럼 낮게 읊조리자, K는 체인으로 연결된 집게를 들어 자기 젖꼭지를 살짝 집고는 가슴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덕분에 유두에 매달린 까만 체인이 반짝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부위가 부위인지라 나는 ‘어머! 어머!’를 연신 외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뿐 아니라 다른 곳도 다 가능해요. 통증은 개인차가 있잖아요. 나사가 있어서 강도 조절도 되고 아주 유용해요.”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마네킹 주변에 펼쳐진 소품들을 찬찬히 다시 살펴보니 내가 생각했던 핼러윈 파티용품이 아니었다.


“아!”


당황해서 시뻘게진 내 얼굴을 보던 K가 승마용 채찍을 들어 허공을 찰싹찰싹 내리쳤다.


“놀라셨어요? 오시기 전에 치워두려 했는데 아침에 늦잠 자는 바람에 시간이 없었어요.”


사실일 리가 없다. 애초에 이 성인용품들은 계획하에 진열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지극히 사적인 물건들이 보란 듯 거실을 차지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녀는 내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물건들을 펼쳐 놓았을 것이다.


당황하는 날 지켜보며 천연덕스럽게 웃는 K. 그녀는 나의 성적 취향을 떠보는 동시에 은근히 자극하면서 그녀의 세상으로 초대하고 있다. 왜? 무료한 나날을 채워 줄 살아있는 장난감이 필요해서?


“하시는 일이 그럼...”


“네, 루이가 좀 컸으니 파리에 매장을 내려고 해요.”


매장이라 함은 이런 종류의 성인용품을 파는 가게를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예전에 말한 ‘공연’이란 걸 하는 공간을 의미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용기는 없었다. 내가 관심을 보일수록 그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끌어들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나는 더는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고, 몇 마디 횡설수설하다가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 케이크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먹으며 이런 짓을 하는 저의가 뭘까, 내가 남들에게 말하면 어쩌려고 저럴까, 점잖아 보이던 K의 남편은 그녀의 은밀한 사업을 알까, 아니 남편이 혹시 기둥서방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등의 잡스러운 생각으로 정신이 산란했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아이 엄마가 굳이 이런 소품을 집에 소장하고 자랑스럽게 펼쳐 놓을 필요가 있을까, 엄마의 이런 행동 때문에 루이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이 집에 머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보시다시피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퉁퉁 부은 얼굴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 몰랐다. 늘 이런 식이다. 날 곤란하게 할 것 같은 것들은 종국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내가 원하고 아끼는 것들은 결과적으로 상처만 남기곤 한다.


“그래서 초대한 건데요?”


K가 비밀을 털어놓듯 내 쪽으로 몸을 숙이며 속삭였다.


“그래서... 라니요?”


K가 또다시 끈적한 눈빛으로 나를 구석구석 살핀다.


“이곳에서 사는 게 저처럼 허전하고 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내 이별에 대해 이미 아는 것 같은데….


아무리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려고 해도, 유명한 사람의 아내였던 것과 이 도시가 무척 좁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는 내가 꽤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유색인종이라는 것은 나의 자유를 잦은 빈도로 침범한다. 내가 잘나서 주목받는 게 아니기에 이런 상황이 더욱 불편하다.


그녀의 의도가 모조리 불순한 건 아닐 것이다.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하다.


“맞아요. 잘 보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허전함을 달랠 것 같지는 않네요.”


K는 대답이 없었다.


“지난번 놀이터에서 체벌하는 걸 봤어요. 그날은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아이를 그런 식으로 훈육하면 큰일 나요. 그리고 이런 물건들을 루이 가까이에 두는 것도 위험하고요.”


나는 고개를 돌려 마네킹을 바라보았다. 로프로 단단히 결박된 모양이 이제야 노골적으로 다가왔다. K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네요. 지배당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인 거죠?”


“사람 관계에서 ‘지배’라는 단어를 쓰다니 놀랍네요. K 씨와 더 이상 대화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오늘 초대 감사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어두컴컴한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그녀가 보였던 폭력성 때문인지 심장이 쿵쾅거렸다.


여주인공이 감금되는 불길한 영화 장면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까지 나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이 집에서 못 나가게 되지는 않을까, 모에카에게 오늘 여기에 온다고 말한 건 천운이다, 등의 생각을 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를 탈출하여 밖으로 나오니 해가 더없이 따사로웠다. 집주인의 배웅 없이 집을 나오는 기분은 더럽게 홀가분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볼썽사나운 호기심이 내 머리를 점령했기 때문인데, 이 호기심을 풀지 않고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컴퓨터를 열고 K가 진열해 둔 물건의 용도를 검색해 보았다.


마흔의 나이에 아직도 이렇게 모르는 게 많다니 새삼 놀라웠다. 이것저것 검색하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잠이 들긴 했지만 괜한 호기심 덕분에 꿈자리는 쉴 새 없이 뒤숭숭했고, 내 무의식에 잠재하는 상상의 스펙트럼이 이 정도로 무궁무진했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란 게 다행이었다.


꿈속에 등장한 K의 남편은 점잖아 보였던 현실의 차림새와는 달리 외설적이고 남사스러운 복장이었는데, 알몸으로 빨간 나비넥타이만 생뚱맞은 부위에 매고 있었다. 뭐가 괴로운 건지 절규하는 그의 앞으로 뾰족한 징이 박힌 목줄을 한 K가 나타났고, 황금 밧줄로 그를 단단히 포박하더니 철봉으로 끌고 가 매달고는 채찍과 나무 패들로 인정사정없이 후려쳤다. 앞뒤가 맞지 않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장면들이 꿈속을 내내 점령했다.


다음 날 아침 에디를 등교시키고 컴퓨터를 켰을 때, 전날 밤새 나와 함께 낯선 곳을 헤맸던 내 컴퓨터는 나처럼 과부하 상태가 되었는지 혼자 전원이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하며 생난리였다.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컴퓨터도 나도 몹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버린 것이다.

이전 03화[3화] 여자 말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