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눈이 나빴다. 시력은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안경은 점점 두꺼워졌다. 성인이 되고는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끼기 시작했지만,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한 치 앞도 흐릿하게 보이는 그런 날들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라식 수술을 받았다.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었고, 하루 정도 눈을 쉬게 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선명한 세상이 보였다. 렌즈를 낄 필요도, 겨울에 안경에 김이 서려 고생할 필요도, 여름에 땀 때문에 안경 라인으로 얼룩이 생길 일도 없었다.
그렇게 의학 기술의 도움으로 20년간 밝고 선명한 세상을 살았다.
어느 순간, 흐릿하게 빛 번짐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무언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나이 들어서 노안이야." 그래, 그럴 수 있지. 책도 많이 보고 핸드폰으로 작업도 많이 하고, 나의 눈을 내가 요즘 너무 혹사시켰지. 그렇게 안경을 쓰고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볼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평소에 다닐 때 먼 거리에 있는 글씨가 흐릿한 듯 보이고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자동차 면허 갱신을 하러 갔을 때 시력이 확실히 떨어졌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는 안경점에 가서 안경을 맞췄다.
선명하게 보이는 글자, 건물들, 사람들의 표정. 안경을 쓰면 세상이 또렷해졌다. 가끔 안경을 쓰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때면 선명한 세상에서 흐릿한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한 느낌이 있다. 햇살이 비치면 눈부심이 있어 더욱 그렇다. '이러다 시력이 점점 더 나빠져서 안 보이는 건 아니야?' 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했다.
무언가를 선명하게 본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무언가를 흐릿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
세상을 살면서도 무언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고, 선명하게 생각하고 선명한 방법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흐릿하다.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 흐릿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헤매는 날들이 더 많다.
그런 생각들에 선명하고 깨끗하게 잘 보이는 안경을 씌워주면 고민도 방황도 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삶의 모든 선택이 선명하게 보이고, 어느 길이 정답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그렇게 모두가 선명하게 보인다면 세상 사는 게 재미있을까?
흐릿함 속에서 더듬거리며 길을 찾는 과정,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한 걸음씩 내딛는 시간들. 그게 결국 삶이 아닐까. 모든 게 선명하게 보이는 삶은 편하겠지만, 동시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삶일지도 모른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안경을 쓰고 걸을 때와 안경 없이 걸을 때의 풍경이 다르다. 안경을 쓰면 모든 게 또렷하다. 나뭇잎의 결, 건물의 선, 사람들의 표정까지. 하지만 안경 없이 걸으면 세상이 부드러워진다. 경계가 흐려지고, 색감이 번지고, 전체적인 분위기만 남는다.
어쩌면 삶도 그렇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때로는 선명하게 보고, 때로는 흐릿하게 보면서. 모든 것을 명확히 알려고 애쓰지 않고, 가끔은 불확실함 속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
요즘 나는 안경을 쓰고 벗기를 반복하며 산다. 필요할 때는 쓰고, 괜찮을 때는 벗는다. 선명함과 흐릿함 사이를 오가며 보내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로 항상 선명할 필요는 없다. 가끔은 흐릿한 채로 걸어도 괜찮다.
흐릿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때로는 더듬거리면서.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조금 더 선명해지는 순간이 오겠지.
오늘도 선명함과 흐릿함 사이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