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중입니다_분주한 하루의 기록

by 정림올제

아침부터 정신없는 하루였다.


밀린 빨래를 돌리고 청소기를 밀었다. 아이들을 깨우고 나니 큰아이가 배구를 하다 안경 코를 부러뜨려왔다고 전날 저녁 이야기를 해서 안경점에 가야 했다. 렌즈는 교체하지 않을 거라 안경테만 주문했는데, 재고가 없어 3~4일을 기다려야 한단다. 한쪽 코가 떨어진 안경을 그동안 쓰고 다녀야 한다는 말에, 렌즈를 껴보고 싶어 했던 게 생각나 원데이 렌즈를 몇 개 샀다.


그 사이 남편은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사 와 명동 신세계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해결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방과 신발을 사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모아둔 상품권을 사용할 때가 온 것이다.


이것저것 메보고 신어 보고 고민했다. 쓰는 재미는 쏠쏠했다.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나와서는 남편이 가고 싶어 했던 명동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집에 와서는 작은아이에게 핸드폰을 선물해 주기로 해서 당근에서 폰을 구매하고 개통까지 마쳤다.

소비가 많았으니 저녁밥은 집에 있는 걸로 먹기로 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니 잠시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 산책이 필요했다.

혼자 밖으로 나왔다. 오늘 하루 동안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안경점, 신세계, 칼국수, 핸드폰 개통. 하나하나 떠올리니 꽤 많은 일을 했구나 싶었다.

신학기 준비가 완료되었다. 두 달의 방학이 이제는 한 주 남았다. 길고 길었던 시간이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언제 그 시간이 다 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말했다.


"금방 간다고 느껴지는 건 기억력이 떨어져 잊어버리는 날들이 많아서 그렇고, 시간이 안 간다고 느껴지는 건 특별한 일들이 없어서야."


그 말을 생각해 봤다. 그럼 이번 방학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금방 갔다고 느껴진다면 잊어버린 날들이 많았다는 뜻이고, 길었다고 느껴진다면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뜻일 텐데.

아마 둘 다인 것 같다. 어떤 날은 금방 지나갔고, 어떤 날은 길게 느껴졌다. 특별한 일도 있었고, 잊어버린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오늘 같은 날은 기억에 남을까, 잊힐까.

아침부터 정신없이 움직였고, 이것저것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특별히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일상적인 준비들. 신학기를 맞이하기 위한 소소한 장보기.

그런데도 오늘은 왠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가방과 신발을 고르던 시간, 명동 칼국수를 먹으며 나눈 대화, 작은아이가 핸드폰을 받고 기뻐하던 모습. 그런 장면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 이런 날들이 쌓여서 방학이 되고, 한 해가 되는 것 같다. 금방 지나간 날도, 길게 느껴진 날도 모두 합쳐져서 시간이 만들어진다. 특별한 날도, 평범한 날도 함께.


방학이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의 학교로 돌아갈 것이다.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아이. 새 가방을 메고, 새 신발을 신고 출발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오늘을 떠올릴 것 같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신학기를 준비했던 이 하루를.

혼자 산책을 나와 조용히 하루를 정리했던 이 시간을.


오늘도 잘 보냈다.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잘 보냈다. 내일은 조금 더 여유로운 하루가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천천히. 그리고 내일도.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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