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이사하는 광경들을 많이 목격한다. 이삿짐을 실은 트럭,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새 동네를 기웃거리는 낯선 얼굴들. 봄과 이사는 왜인지 늘 함께 있었다.
나도 어렸을 적 참 이사를 많이 다녔다.
집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작은 마당이 있는 단칸방 집이다. 철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그마한 마당이 있었고, 마당을 가로질러 작은 옆문으로 들어가면 방 하나가 우리 집이었다. 그 옆에는 교회가 있었고, 나는 그곳의 유치원을 다녔다. 맞은편 길 건너에는 유난히 커 보이던 2층 집이 있었는데, 어린 눈에는 마치 큰 성처럼 느껴졌다.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면 커다란 공터가 있었다. 그곳은 나의 놀이터였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뛰어다니고,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곳. 그 공터 뒤쪽 골목길 맨 끝에는 또 다른 우리 집이 있었다
건축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부지런히 집을 짓고 허물고 다시 세우셨다
어느 집은 잠시 살다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주택이 지어졌고, 우리는 잠깐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가 집이 완공되면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단독주택에서 또 다른 집으로, 조금 더 큰 다세대 주택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아파트로.
이사할 때마다 집은 조금씩 커졌고, 우리 가족의 살림도 조금씩 늘어났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버지의 땀과 어머니의 고단함이 있었다.
엄마는 말씀하셨었다. "이사 다니는 게 지긋지긋하다"라고
그 시절, 지금처럼 이삿짐센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짐을 손으로 싸고, 손수레나 작은 트럭에 실어 날랐을 것이다. 어린 자식들을 챙겨가며 짐을 싸고, 풀고, 정리하는 일들. 새 집에 도착해서도 끝나지 않는 노동. 살림을 펴고, 아이들을 씻기고, 밥을 해야 하는 일상. 그 고단함이 얼마나 컸을까.
남의 집 문간방에서 시작해서, 방 하나씩 늘려가며,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을 갖기까지. 그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을까. 무일푼으로 낯선 서울에 올라온 그들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이기며 살아냈을까. 나는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았기에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그 짐작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봄이면 이사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의 짐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가구와 살림살이만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들, 그곳에서 겪었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의 기대와 불안이 함께 실려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더 나은 곳으로 가는 것이고,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짐을 싸고 풀며
삶을 이어간다는 점에서는 같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도, 그렇게 한 걸음씩 옮겨온 자리다. 이 집도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또 다른 봄이 오면, 또 다른 이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삶의 한 부분이다.
오늘도 거리에서 이삿짐 트럭을 마주한다. 저 짐들 사이 어딘가에도 누군가의 눈물 어린 성실함과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꾹꾹 눌러 담겨 있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