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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낯선 생일파티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그 중간 어딘가에 끼여 있는 한국엄마

by 초턴의 하루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친구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참석했다.

딸아이가 즐겁게 학교를 다닌 영향도 있었고, 반 자체가 생일파티를 다 하는 분위기여서(난 아직도 버티고 있다.)

이번 달만 초대장을 3개나 받아왔다.


물론 엄마로서 기특하긴 하다. 파티 초대장은 곧 원활한 교우 관계의 증거라고 할 수 있으니, 이 먼 타국 땅에서 파란 눈, 노란 머리를 가진 아이들과

티키타카가 되는 딸이 대견하긴 하지만 파티 당일 2시간 넘게 부모자리에 앉아 있을 생각을 하면 가기 전부터 답답함이 밀려온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처음 초대장을 받았을 때는 마치 내가 초대받은 거처럼 정말 기쁘고, 기대되었다.

폴란드에서 아이들 생일 파티는 어떤 분위기일까? 엄마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대화에 끼려면 영어를 잘해야겠지? 그래서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되었다.


처음 생일 파티에 갔을 때, 다들 영어로 나에게 인사해 주었다. 안녕. 네가 새로 온 아이 엄마구나. 반가워. 그리고 끝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자신들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흠…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나는 옆 자리에 앉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쳐다만 봤다.

결국 파티가 무르익어 갈 즈음엔 나의 자리는 인도엄마아빠, 일본엄마아빠 옆으로 옮겨갔고, 거기서 그나마 영어로 대화하며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모든 파티들도 마찬가지였다. 폴란드 엄마들은 항상 만나면 영어로 반갑게 인사해 주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내가 하는 질문에 친절하게 영어로 답도 해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그래서 생일파티를 가면 자연스럽게 나 같은 외국인 엄마들과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됐고, 더 친해지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내가 폴란드 현지학교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국제학교에 보내는 건데, 그럼 이런 자리에서 영어 좀 써주면 안 되는 거니?

나보다 영어를 더 잘 구사하는 그들이었기에 무시받는 기분도 들고 속상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 를 재밌게 보고 있었는데, 에밀리 프랑스 직장동료 루크가 에밀리한테 했던 말이 나한테 깨달음을 주었다.


You live in Paris, but you don’t even speak french. That is arrogant.

너는 파리에 살지만 프랑스어를 쓰지 않아. 바로 그게 오만한 거야.


폴란드어를 배우려는 의지나 노력도 없으면서 그저 영어 안 써준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폴란드인들이 폴란드어 쓰는 건 당연한 건데.

그때부터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도 했다.

(루크의 저 말에 에밀리는… 그건 오만한 게 아니고 무지한 거야…라고 주눅 들어서 대답했다. 딱 내 마음이었다.)


요즘은 생일 파티를 가면 나만 유일한 한국엄마, 삼 분의 이는 폴란드, 삼분의 일은 우크라이나 부모들이다.

폴란드부모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으면, 언제나 그랬듯 그들은 폴란드어로 대화한다.

이제는 관찰자처럼 재밌게 구경한다. 와 폴란드말은 참 빠르구나, 와 진짜 빠르다. 어? 알레라는 말을 많이 쓰네? 있다 무슨 뜻인지 물어봐야지.

내 나름대로 방법을 터득한 것 같다. (알레는 그런데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

그래도 우크라이나 부모들은 자신들 모국어로 이야기하다가도 내가 오면 영어로 바꿔준다.

나도 모국어를 쓰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걸 잘 알기에, 그들의 배려가 고맙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도 살아야 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들 사이에 슬며시 끼인다.


이렇듯 나는 폴란드 생일파티에 나름대로 적응한 것 같지만, 또 막상 가면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다.

이번 주 토요일 또 생일파티가 있는데… 또 어떤 경험을 하고 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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