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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Dec 28. 2023

너 홀로 집에

“난 친구들이랑 약속 있어. 안 갈래.”     


기쁨이는 작년 성탄절이 너무 심심했다며, 이번에는 뭔가 재미있는 걸 해 보고 싶다고 진즉부터 성탄절 계획 세우기에 열을 올렸다. 늘 예배를 드려야 하기에 남들 가는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 하지만 예배 후 어딜 간다는 건 시간적 제약이 많기에 멀리는 가지 못하고, 요 며칠 쉬지 않고 내리는 눈 덕분에 이불 밖은 위험해를 외치고 있는 때에 어딜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난 안 가. 난 이미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어.” 선포하듯 외치는 큰아들 맑음이.      



12월 31일에도 친구들이랑 영화 보러 가기로 했다며 3주 전부터 얘기를 해 놓은 맑음이다. 도시권에 살았다면 일찍부터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러 다니는 재미를 알았을 테지만 대중교통을 편하게 이용할 수 없는 곳에 살기에 ‘그래, 이제 시작됐구나. 가서 즐기다 와라’하는 생각에 쿨하게 허락해 주었다. 영화관이 있는 곳까지 나가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버스 안에서 한 시간을 버려야 함을 알고 아이 아빠는 데려다주겠노라 약속도 해 놓은 상태.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를 알아버린 최근 한 달. 여자친구가 생긴 후인 듯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들러리일 뿐이라는 걸) 주말마다 아침 8시 반이면 운동이라는 명목하에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아침부터 나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주일 예배 드리고 난 뒤에도 자전거를 타고 오겠다며 나가서는 저녁이 다 되어 들어오는 아들. 자연스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었고, 나는 딸 하나, 아들 하나 엄마가 되었다.      


성탄절만큼은 가족 모두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맑음이에게 대화를 요청했다.

“맑음아. 23년 마지막 날에도 넌 친구들이랑 함께 하겠다고 해서 아빠 엄마가 허락해 줬잖아. 이번만큼은 가족이랑 함께 하면 안 될까? 맑음이가 커 갈수록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친구들이랑 함께 하는 시간들이 점점 많아질 텐데... 이번만큼은 가족이랑 같이 보내자.”

“왜? 난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밌어. 그리고 내가 어제 말했잖아. 친구들이랑 약속 있다고. 왜 내 의견을 존중해 주지 않아?”

“너 주말마다 맨날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았잖아. 쉬는 날 가족이랑 함께 한 적 최근에 없잖아. 그러니까 이번 성탄절만큼은 함께 하자. 우리 그날 엄청 늦게 들어올 것 같아서 그래”

“내가 혼자 집에 못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안 간다고!”     


<출처: Pixabay>

긴 대화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생각보다 강경했고, 더 이상 어르고 달래는 대화법은 통하지 않았다. 자꾸 품 안에서 떠나려고만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서운하기도 하고 속상한 이 마음을 아이는 이해할 수 없겠지. 자신의 의견을 들어주지 않음에 답답함만을 호소하는 아들을 보며 마음 한켠이 아리다. 이제 친구가 더 좋아지는 때라는 거 너무 잘 알겠고 이해도 하지만 너무 극으로만 가는 것 같은 모습에 서글퍼진다. 

이미 아들은 부모 품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데 나만 아직 아들을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건가 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조금 천천히 떠나가면 좋으련만, 뭐가 그리 급하다고.     



성탄절 오후. 큰아이만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 일부러 맑음이 들으라는 듯 뭐 하고 놀건지, 어떤 재미있는 게 있는지 신나게 떠들어 댔지만 맑음이는 마을 앞을 지키는 장승같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조금만 더 흔들면 “그냥 나도 같이 갈래.”를 외쳤던 아인데. 눈빛 하나,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는 아이를 보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밤 10시가 다 되어 집에 들어가 보니 아들은 대자로 뻗어 아주 편한 자세로 누워있다. 혼자 있어서 심심하다고 투덜댈 줄 알았는데. 웬걸. 동생들이 뭐 하고 놀았는지 조잘조잘 떠들어대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데도 심드렁한 표정.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누리지 못 함을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다녀온 짐을 정리하는데 여자친구와 주고받은 문자가 살짝 보인다.

‘아, 이제 전화 못 하겠다. 엄마가 왔다, 아쉽다, 보고 싶다 류의 내용이 찍혀있다. (참 나, 너 오늘 하루 종일 희망이랑 같이 있었잖니. 근데 또 보고 싶니? 아이고 그 사랑 참으로 절절하다 진짜)     



사춘기 아이들의 변화는 이리도 순식간에 일어나는 거였나. 아들의 성장에 나만 종종거리고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마음껏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내 아들에게 질척대는 엄마가 될 줄이야. 

이제는 아이를 둘러쌓고 있는 테두리를 넓혀주어야 함은 알겠는데, 과연 어느 선까지 허용을 해줘야 하는 걸까. 어느 선까지 아이의 의견을 수용하고 존중해 줘야 하는 걸까.      



오늘도 아들은 저녁밥만 먹고 방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문은 열어 두었구나. 저 문이 닫히는 날도, 곧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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