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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28. 2023

어떻게 니 여친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맑음이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 같다. 당사자 입을 통해 듣진 않았으나 온 가족이 그 사실을 안다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니 아직은 생겼다가 아니라 생긴 것 같다라고 표현해야 맞을 듯하다. 카톡, 문자를 보내면 기본 삼일은 지난 후 답문을 하는 아이, 전화를 무음으로 해 놔서 급할 때 연락이 안 되는 일이 다반사였던 아이. 학급 단톡방에 카톡이 몇 백개가 쌓여도 클릭 한 번으로 쿨하게 날려버리는 아이. 오직 게임과 유튜브를 하기 위해 핸드폰을 가지고 다녔던 아이다. 우리 맑음이는.



그러던 녀석이 며칠 전부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질 않는다. 비밀번호도 엄마에게 오픈이었던 터라 내가 알고 있던 비번을 눌렀는데도 잠금 해제가 되지 않는다. 너 뭔가 있긴 있구나!     



“맑음이 너 핸드폰 비번 바뀌었더라~ 엄마가 확인해 보니 안 열리던데?”

“아, 그거, 기쁨이랑(둘째) 행복이가(셋째) 자꾸 내 핸드폰 비번을 알아내서 바꿨는데. 다시 알려줄게.”  


   

아무것도 숨길 게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비번을 알려주는 아이. 넌 몰랐겠지 밤마다 디지털 포렌식 버금가는 분석이 시작될 거란 사실을. 밤마다 아이가 깊게 잠들기를 기다려 도둑고양이 마냥 아이 방에 들어가 핸드폰을 집어 든다.

카톡도 한번 들어가 볼까? 하며 비번을 눌렀는데. 카톡 비번 역시 바뀌었다. 몇 번을 눌렀는데도 풀리지 않는다. 혹시...? 최근 계속 연락하고 있는 희망이 생일을 조심스레 눌러본다. 제발 이것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풀. 렸. 다. 그날 밤 그렇게 아들의 연애 사실을 확인사살하고 말았다. 이런. 또 다른 판도라의 상자가 남아있을 줄이야.     




둘째, 셋째 픽업을 해서 돌아오는 길. 맑음이의 발걸음이 멀리서 봐도 신이 잔뜩 나있다. 순간 엄마와 동생들을 발견하고는 멈칫하는 그 표정을 난 또 읽고 말았다. 어디 가냐는 최대한 무심한 척 묻는 나의 대답에 아들 역시 무심한 척 내일 있을 아침운동과 관련해서 친구랑 이야기 좀 하고 오겠다며 쿨하게 지나간다. 나 못지않게 수상함을 감지한 두 녀석.

“엄마, 이건 뭔가 수상해. 우리가 미행하고 올게.”

평소 같으면 추운데 어딜 가냐며 한소리 했을 텐데 자연스럽게 자동차의 잠긴 문을 오픈. 신이 나서 뛰어가는 기쁨이와 행복이. 아들아, 아직도 모르겠니? 1학년 동생도 너의 행동이 수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있단다 이 어설픈 녀석아. 미행의 결과는, 차마 내 입으로 말하고 싶지 않으니 상상에 맡긴다.     


출처: unsplash

슬초 오프모임이 있는 날. 아침 댓바람부터 친구들과 만나 운동을 하겠다며 나보다 먼저 나가는 아들. 서울 가는 엄마에게 안 가면 안 되냐고, 가지 말라고 붙잡는 두 녀석들과는 달리 엄마를 배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정 있는(본인의 연애가 그 무엇보다 우선이겠지) 큰 아들은 그렇게 쌩하니 나가버렸다. 아침에 나갔다 밤에 들어온 엄마는 아들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인데 굉장히 귀찮아하며 말도 이리저리 바뀐다. 아! 얘가 또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다른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는 것을 세뇌시키듯 이야기했었다. 거짓말을 할 때는 가차 없이 호되게 혼을 냈었고 아빠한테 엉덩이 스무 대를 맞은 적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다른 건 몰라도 진실하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엄하게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번에 무너져 내릴 줄이야.     

 아들과 어색한 관계로 며칠을 지냈고,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나는 아들방을 벌컥 열고 들어간다. 

“대화 좀 하게 나와!”     

엄마가 뭐 때문에 이렇게 화가 잔뜩 나 있는지 모르는 아들은 어안이 벙벙해 나오고, 그동안 너의 만행을 모두 알고 있었다 말하는 엄마 말에 또 한 번 표정이 흔들린다. 


“엄만 너와 희망이의 만남을 찬성하지 않아. 하지만 너의 의견이 그렇다니 존중해. 그런데 넌 아빠 엄마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어. 희망이에 대해 엄만 굉장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의 그 거짓말로 인해 희망이까지 미워지려고 해. 알겠니? 너의 거짓말은 너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걸.”     

한 시간가량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예전이라면 우리의 대화의 마무리는 엄마 미안해요, 아들아 엄마도 미안해하며 서로 안아주며 끝이 났는데. 이번엔 달랐다. 아들과 이야기하는 내내 나는 계속 아들의 마음과 기분을 살피며, 나도 모르게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 진심이 아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건지 확인하면서. 내 말을 고스란히 흡수해 주던 아들이 이제 본인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골라 듣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씁쓸하게 마무리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지만 평소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믿었고, ‘너를 믿고 있고 언제든 너의 편이 되어 줄 수 있어.’라는 씨앗을 충분히 뿌려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교만이었을까? 그 씨앗의 열매를 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한 걸까? 어쩌면 아이를 떠나보낼 준비가 덜 된 내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날갯짓은 잘할 수 있는지, 털은 고르게 잘 정돈되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준비과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나. 말로는 아이를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모습을 숨기고 있다 방심하는 틈에 툭툭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불안감에 휘둘리던 나. 나의 실수에는 더 인색했기에 뭐든지 다 잘 해내야 한다는 그 강박을 아이들 양육에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지 않으면 그동안 잘 쌓아왔던 아들과의 관계를 내가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아찔해진다. 아침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 오후에 집에 돌아오면 다시 부드러운 말을 건네보고 어제 못 했던 굿나잇 포옹을 오늘은 꼭 해줘야지.     



세 아이 모두 등교시킨 후 빨랫감을 정리하는데, 맑음이가 보인다. 뒷모습도 멋진 아들. 그런데..

야! 굳이 희망이 집 앞에서 기다렸다가 다정히 손잡고 학교를 가야겠니? 아. 역시 다짐을 실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아들이 변해가는 만큼, 부모도 달라져야 합니다.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소중한 내 아들에게 꽃길만 걷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제 아들에게 부담으로 다가가기 시작해요. 사춘기 아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위해 부모는 지금까지의 ‘해결사’ 역할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은경, 부모의 말 공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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