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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22. 2023

거리 두기를 시작합니다.

사춘기 아들을 대하는 자세

“얘들아 빨리 일어나 오늘 학예회 날이야.” 깨우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일어나고 서로서로 깨우는,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아침이다. 학예회 준비를 시작한 후로 우리의 식사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는 학예회준비에 관한 이야기였고, 지난 학예회에서 있었던 일까지 말하며 서로 웃기도 하고 눈을 흘기기도 하는, 세 아이 모두 조잘조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학예회. 세 아이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마지막 학예회고, 이번엔 특별히 1학기 전교 부회장이었던 큰아들이 사회를 본다니 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학예회가 될 듯하다.     

  학교 강당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이미 본인 무대에 맞는 의상을 갈아입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멋지고 자랑스러운 우리 맑음이는 사회자 무대에 멋진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나에게만 보이는 후광을 반짝이며. 엄마를 보며 쑥스럽게 웃는 그 미소까지 너무도 사랑스럽다. 그 모습을 하나라도 놓칠 새라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아들의 모습을 찍기 위해 조금 앞으로 다가갔는데. 다가오는 날 보더니 아들이 어디론가 간다. 어딜 가는 거지? 준비할 게 더 남았나? 학예회 시작하기 전에 멋진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아쉽다.     

다시 나타난 아들의 모습을 보자 또 쪼르르 아들에게로 다가간다. “맑음아, 여기 봐봐. 엄마 좀 봐줘.” 애처롭게 사정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멋쩍게 웃는 아들. 그러더니 또 친구들에게로 뛰어간다. 그 뒤를 또 쫓아가는 나. 짝사랑하는 사람 뒤만 졸졸 쫓아다니면 이런 기분일까. 아들, 이래 봬도 누가 쫓아다니면 다녔지 한 번도 엄마가 누구 뒤 쫓아다녀 본 적 없거든! 영광인 줄 알아 이것아.라는 소리 없는 외침만 날린다. 아들 친구들은 사진을 찍으려는 나를 향해 예쁘게 브이도 해주고, 꽃받침도 하며 한껏 포즈를 취하는데 우리 맑음이만 주저주저한다. ‘이 사진의 주인공은 너라고 너! 제발 눈 좀 제대로 뜨고, 카메라 좀 바라봐줘.’ 찍은 사진을 보니 죄다 눈감은 사진뿐이다.

 “엄마. 사진 좀 그만 찍어!” 

뭐라고? 내가 지금 무슨 소릴 들은 거지? 나한테 한 말이 맞나? 우리 아들이 한 말인가?

작년 학예회까지는, 아니 올해 체육대회까지만 해도 분명 나를 향해 달려와 환하게 웃어주던 아이였는데. 엄마가 핸드폰만 들면 여기 보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예쁜 포즈를 취해주었고 멋진 무대의상을 입고 환하게 웃어주는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엄마를 피해 도망 다니기 바쁘다. 1부 무대가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에 기쁨이(둘째)와 행복이(셋째)는 엄마를 찾아오기 바쁜데 맑음이는 숨바꼭질을 하듯 보이질 않는다.     



  

2학기 마지막 방과후 공개수업 날. 지난 학기에 기쁨이와 행복이 수업 참관을 하느라 맑음이의 수업은 보지 못했다.(한 학교에 세 명의 아이가 있으니 공개수업 같은 날엔 세 아이 모두 볼 수가 없다) 큰 아이를 너무 신경 쓰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함이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기에 이번에는 맑음이의 공개수업을 보러 갔는데 나를 보더니 또 멋쩍은 웃음을 짓는 아이. ‘아, 괜히 왔나? 엄마가 온 게 싫은가?’ 학예회 이후로 아이의 눈빛, 표정 하나하나가 다 신경 쓰이고 그냥 넘어가지질 않는다. 아직 수업 시작 안 했으니 그냥 가버릴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사투를 벌이는 중 수업은 시작되었고 열심히 집중한 아이의 모습을 보자 언제 고민했냐는 듯 내 마음은 또 아이의 모습에 집중하게 된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뒷모습을 살짝 찍으려는데, 고개를 더 숙인다. 그러더니 나에게만 들리게 뱉은 한 마디. 

“엄마! 사진 찍지 마!”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서럽고 서운하던지. 얼굴이나 제대로 보이면서 그런 말을 하던가. 사진첩엔 심령사진만 잔뜩 찍혀있구먼.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아 수업이 다 끝나기도 전에 조용히 나왔다.      




 “맑음아, 너도 나중에 사춘기 때 엄마랑 말도 잘 안 하고, 문도 쾅 닫고 들어가고 엄마 손도 잘 안 잡아주고 그럴 거야?” “엄마.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왜 이렇게 걱정해?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몇 년 전 아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따뜻한 눈빛과 해맑은 웃음으로 답해 주었던 아이. 어쩌면 나는 아이의 입을 통해 엄마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고백, 사춘기가 되더라도 엄마바라기를 해주겠다는 다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누구보다 착하고 순종적인 아이였고, 어떻게 해야 엄마가 행복해하고 기뻐하는지 알아주는 아들이었기에 그때를 그리워하며 여전히 그 시절의 모습을 요구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하지만 이미 몸으로 마음으로 나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이제는 아들과 거리 두기를 시작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닫는다. 아들이 좀 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들 옆에서 자꾸 확인하고 친밀해지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아이와 적당한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묻는 말에 또 틱틱대며 차갑게말을 한다. 아들아, 네가 뱉어낸 말로 겨울왕국 하나도 거뜬히 세우겠구나. 아들에게 쏟아 내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오르지만 오늘도 잘 자라며 꼭 안아주는 것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한다.     



반항하고 따지고 짜증 내고 퉁명스럽고 무관심한 아들의 태도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서로에게 너무 힘든 일일지요. 정도를 지나치는 행동을 보일 때 따끔하게 꾸중하되, 대부분 다정하고 무심한 거리를 유지하세요.             -사춘기 아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부모의 말공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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