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별 Nov 09. 2023

사춘기와 어른아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 하늘하늘 블라우스에 롱스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자, 필라테스, 요가를 즐겨할 것 같은 여자. 조신하고 얌전해 보이는 여성미가 넘쳐흐르는 여자. 나를 본 사람들이 느끼는 첫인상이다.( 아, 이런. 쓰고 보니 진짜 재수 없고 손발이 오글거린다.) 파워 I형인 나는 어딜 가나 조용히 있는다. 그래서인지 나를 차분하고 참한 여인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쉽게 입을 열면 안 된다. 환상이 깨질 수 있으니) 어렸을 때부터 반항다운 반항 한번 안 해보고 자랐고 K-장녀로서 내 할 일은 알아서, 딱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처지지도 않는,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의 나. 조용하고 온순하며 마음이 여린 사람. 그게 진짜 나의 모습인 줄 알고 살아왔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는. 아니, 사춘기 아들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큰소리 지르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엄마로서의 권위를 잃지 엄마 말이다. 요즘 엄마들이 그렇듯 나 역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려 노력하고 정서적인 교감을 많이 해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았다. 각종 육아서적, 교육서적을 사들이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이론이 실제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좋은 엄마 코스프레를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출처: Pixabay>

  이런 나를 무참히 무너뜨려준 건 바로, 사춘기 아들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 순종적이고 이유를 설명해 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용해 주던 아들. 그 아들이 사춘기라는 터널에 진입하고 나서부터는 “아니야. 왜? 싫은데”가 자동적으로 튀어나온다. 표정은 왜 또 그 모양인지, 얼굴을 다리미로 쫙쫙 펴주고 싶을 지경이다. 입은 댓 발 나오고 무슨 주문을 외우는 건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혼자 중얼중얼. 눈빛으론 이미 나를 백번도 넘게 잡아먹었다. 엄마의 말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는 프로그래밍이 되어버린 아들과 그 아이를 마주하는 나의 참모습에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다반사인 요즘이다. <엄마의 말하기 연습>이라는 책은 이제 더 이상 밑줄 그을 곳이 없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는데 왜 연습할 때는 되는데 실전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건지 원.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무차별적으로 날려버리고, 아이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치는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러다 한 번씩 상상이 현실이 되어 아이의 뒤통수로 날아드는 나의 손을 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 이제 놀랍지도 않다. 괴수처럼 악을 지르는 날도 있고, 아이의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집어던지기도 하며, 누가 보면 ’저 엄마 계모가 분명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법한 너무도 낯선 나의 모습. 13살 아이와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 어른아이.


 예전엔 엄마의 ‘쓰읍~!’하는 방울뱀 소리 한 번에 죄송해요를 외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나를 응시한다. 아, 저 표정. 너무 꼴 보기 싫다. 내 말에 무조건 NO를 외치고 딴지를 거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게 죽을 만큼 힘들다. 늘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아들,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려줬던 아들이라 더 힘들었나 보다. 엄마가 무슨 말만 하면 잔소리로 듣고 받아치는 아들의 모습은 정말,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뱃속으로 넣어버리고 싶었다. 악을 쓰고 갖은 협박을 해도 안되니 이제는 아들의 기를 꺾어버려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지금 밀리면 아마 앞으로는 더 밀릴지도 몰라. 초6밖에 안 된 녀석이 감히 엄마를 이기려고 들어? 내가 너를 반드시 꺾어버리리라.’     

  말도 안 되는 고성이 오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들과 싸울수록 내 자신이 너무 유치하다. 부끄러워진다. 스스로 ‘아 이 엄마 진짜 왜 이래? 아 진짜, 그 말은 좀 아니지 않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물러서면 지는 거 같으니까. 그 유치함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대며 방으로 들어간다. ‘아, 내가 또 말렸어. 저놈시끼한테 내가 또 말린 거야.’라는 자괴감과 함께. 하지만 아이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늘 나에게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했으니까 이번에도 아이가 먼저 다가올 거야. 그때까지 기다리자. 기다렸다가 쿨하고 멋지게 사과받아주는 엄마인 척 하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아들 녀석이 나에게 사과를 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하루를 넘기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 이틀까지는 버티는 아들을 보니 내가 더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내가 미안하다고 먼저 말할 수는 없다. 그러면 둘째 셋째를 이용하자!

2번과 3번에게 과한 친절을 베풀고 더 재미있게 놀아준다. 까르르 웃음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도록 나의 온몸을 불사 지른다. 그 모습을 물끄럼히 바라보는 큰아들. 그래 이제 다 왔어!

얘들아 더 크게 웃어. 더 신나게!    

 



아들이 나에게 다가온다. “엄마, 제가 죄송해요.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한테 버릇없이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저도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

“그래, 맑음이도 많이 속상했지? 맑음이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해서 엄마도 미안해. 하지만 다음부터는 우리 서로 한 번 더 생각하고 이야기해보자.”

온갖 고상한 미사여구를 마구마구 뱉어낸다. 엄마는 너의 잘못까지 모두 안아주고 보듬어 줄 수 있는 엄마란다, 이런 엄마는 세상에 또 없단다 라는 느낌을 팍팍 풍기며.     

오늘도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들어냈다. 내가 이겼다. 그런데 화장실 다녀와서 밑 안 닦은 이 기분은 뭘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먼저 숙이고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을 봤는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아, 오늘도 13살이 마흔 살 엄마에게 맞춰줬구나. 결국 오늘도 내가 졌. 다. (다행이다, 아들은 눈치채지 못해서)     

매거진의 이전글 열려버린 판도라의 상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