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학교와 집까지는 5킬로 정도 떨어진, 시골길이라 버스도 없고 오직 아빠 엄마 차를 타고 등하교를 해야 하는 곳에 살고 있는 우리. 방과 후에 학교 앞에서 대기했다가 학교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주고 피아노 치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이 나의 하루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 학교 앞에 그 흔한 분식집, 문구점 하나 없는 재미없는 시골 동네. 그 재미없는 동네에서 아이들의 유일한 참새 방앗간이 있는데, 바로 학교 앞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붕어빵 가게가 바로 그곳이다. 겨울이면 그곳에서 사 먹는 어묵꼬치 하나, 붕어빵 하나가 아이들에게 유일한 기쁨이며 낙인 아이들. 우리 아들은 늘 엄마가 피아노 학원까지 데려다 주기 때문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 붕어빵 가게까지 걸어가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고, 어느 날 아이는 친구들과 걸어서 피아노 학원까지 가면 안 되겠냐며 크지도 않은 눈을 반짝이며 애처로운 눈빛을 발사한다. 나도 아이 하교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 가 있는 것이 번거로울 때가 있기에 걱정되는 마음을 뒤로하고 허락한다. 일주일 용돈 2000원을 아이 손에 쥐어주며.
고작 2천 원에 아이는 세상을 다 얻었다. 연신 고마움을 표하며 엄마가 최고라고 외친다. 붕어빵 하나에 500원이니 2천 원이면 평일 5일 중 하루는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 그런데도 엄마가 최고라니. 500원만 더 얹어달라고 할 법도 한데, 오늘도 아이는 내 스승이 된다. 겨우 2천 원으로 우주를 선물한 듯 뿌듯해 마지않는 나란 엄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갖 생색을 내기에 여념이 없다.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수줍게 내민 아카페라의 바닐라라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가 바닐라라테잖아. 내가 붕어빵 집 앞에 훼미리마트에서 엄마 주려고 사 왔지.”
“이 커피가 얼만데?”
“1500원. 나한테 2000원 있으니까 나 붕어빵 하나 사 먹고 남은 돈으로 엄마 주려고 커피 사 온 거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커피 사주고 싶어서.”
나는 고작 2000원 주며 아이에게 생색이란 생색은 다 냈는데,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첫 용돈으로 엄마를 위해 커피를 사 왔다. 피아노 학원에서 누가 가져갈까 봐 피아노 치는 내내 커피를 지켰다가 가방에 고이고이 숨겨 집에 와 엄마에게 수줍게 내놓은 아들의 바닐라라테. 엄마는 별다방 커피를 좋아하는데, 그건 너무 비싸서 못 사 왔다며 다음번엔 용돈 모았다가 별다방 바닐라라테로 사다 주겠다는 말과 함께.
이런 아이였다. 작은 말, 행동 하나로 나에게 감동을 주는,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나의 보물, 나의 큰아들. 그랬던 아들이 변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아이가 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청소하는 것을 누구보다 재미있어하고 누구보다 꼼꼼하게 씻고, 엄마 말에 무조건 순종하던 아들이 씻으라는 말만 하면 도끼눈을 뜨며 “왜?”라고 묻고(씻는데 이유가 필요한가?) 책상은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어 뭐가 어디 있는지 본인조차 모르는 지경이 된. 예전의 깔끔하고 단정한 아들의 모습은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야 겨우 보이는 모습이 되었다.
평소처럼 나는 아이의 문제집을 채점해 주고 아들은 끙끙대며 오답을 풀어내는 중 내 눈에 들어온 아들의 책상. 책상 위에 아무렇게 막 꽂혀있는 노트들이 그날따라 왜 눈에 거슬린 건지. 아들은 왜 하필 그날따라 자기 책상이 아닌 식탁에서 오답을 풀어내고 있었던 건지. ‘내가 큰맘 먹고 너의 책상을 정리해 주마.’라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아무렇게나 꽂혀있는 책과 노트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이건 버릴 거, 이건 좀 더 쓸 수 있는 거.
그러던 중 발견한 아니, 발견하지 말았어야 할 노트 한 권. 너무도 평범한 노트라 아무 의심 없이 들춰 본 아들의 판도라의 상자.
‘아 진짜 짜증 나. 이게 어딜 봐서 m이야? 딱 봐도 u 지.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엄마는 분명 학교 다닐 때 공부 진짜 못 했을 거야. 아니 이 글씨가 대체 어떻다고 난리야 난리가. 우리 반 애들이 부러워. 우리 반 애들은 하루 종일 핸드폰 게임, 컴퓨터 게임만 한다는데 나는 왜 그렇게 못 하는데? 학교 친구들 중 공부 못해도 다 나보다 행복해 보여. 학교에서 공부하는 거, 영재교육원에서 공부하는 거 다 괜찮은데 집에서 엄마랑 공부하는 게 제일 싫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싫어!’
차마 아이 노트에 적혀있는 내용을 그대로 적을 수 없어 내 나름대로 순화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손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차마 아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어제까지 분명 ‘엄마 사랑해, 뽀뽀해 줘, 안아줘’ 했던 아이인데. 속으로는 이렇게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알고 있었던 아들의 모습이 진짜 모습이 아니었던 걸까? 아이의 비밀 일기장을 봤다는 것을 들키면 안 되기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야 했지만 유리멘털인 나는 그게 참 어려웠다. 며칠 동안 엄마의 기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눈치 백 단의 아들.
“엄마, 혹시 내 일기장 봤어? 그 일기장은 내가 예~~ 전에 쓴 거야. 날짜 보면 알겠지만 1월에 쓴 거잖아.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그랬는데 지금은 안 그래. 엄마랑 공부하는 것도 괜찮고. 영재교육원도 다닐 때는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 보니 괜찮았던 것 같아. 그리고 글씨 예쁘게 쓰려고 나도 노력하고 있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그리고 미안해.”
“엄마도 미안해. 너의 비밀 일기장을 발견했어도 보면 안 되는 거였는데. 보고 나서도 너한테 감정을 들키면 안 되는 거였는데 엄마가 너무 부족한 엄마라 엄마 감정을 숨기는 게 잘 안되더라. 그래도 너의 분노, 화를 글로 표현한 건 너무 잘했어. 나쁜 방향으로, 폭력적인 방향으로 드러내지 않고 글로 너의 감정을 다스리려고 했던 건 칭찬해 주고 싶어. 앞으로도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 글로 써봐. 대신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꽁꽁 잘 숨겨놔. 나중에 맑음이가 어른이 됐을 때 그 일기장을 보고 아, 내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웃으며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야. 만약 엄마가 맑음이 일기장을 또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면 그때는 엄마도 절대 보지 않을게.”
다음 날 아이의 책상에 꽂혀있던 일기장이 사라졌다. 내 마음에 거센 폭풍우를 몰아치게 했던 아이의 판도라의 상자. 그런데 사람 마음 참 이상도 하지. 막상 없어진 걸 확인하고 나니 궁금해진다. 무슨 일들로 날 잘근잘근 씹어놨을지. 다음번 판도라의 상자를 또 발견한다면, 보지 않기로 했지만 장담은 못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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