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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r 22. 2024

살았다! 그런데... 이게 맞나?

2월 초부터 약 한 달간은 내가 일 년 동안 올리브영에 얼마나 충성할 수 있을지, 매일 아침 꽃단장을 할 기회가 주어질지가 결정되는 시기다. 비루한 계약직의 목숨.

하루 두 번, 공무원들이 출근했을 시간인 10시 그리고 퇴근 전인 4시. 꼬박꼬박 교육청 홈페이지를 들락거린다. 새로운 공고가 나왔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나왔나.     





작년까지 기초학력협력강사로 일을 했었다. 아이들 시간표에 맞춰 짧으면 하루 2시간 길면 5시간까지,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옆에서 챙기고 도와주는 일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 역시도 나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고 경제적인 소득도 얻을 수 있는, 나에게 아주 꿀 같은 일자리다. 너무도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힘들게 하는 아이들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날 반겨주었고 잘 따라주는 아이들도 많아 일하면서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학교라는 곳이 모든 아이들에게 같은 감정(긍정적으로)을 느끼는 곳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아이들은 본인의 일을 착착 알아서 잘하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고 선생님께 예쁨 받고 사랑받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이 있기도 하니까. 의도하지 않았고 원치 않았던 학습결손이 생겨 본학년 진도를 따라가기 힘든 아이들, 친구들과의 관계 맺는 것이 익숙지 않아 본인도 모르게 트러블메이커가 되어 있는 아이들, 자신감 부족으로 친구들과 지내는 것보다 혼자 지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도 있는 참으로 다양한 모습의 아이들로 채워진 20평 남짓한 공간. 누구나 사랑받기 원하고 관심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이들이라고 다를 건 없다. 담임선생님께 관심받고 싶으나 그러지 못한 아이들에게도 비빌언덕은 필요한 법. 그럴 때마다 나를 찾아주는 아이들을 보며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내가 잘난 사람도 아니고 기껏해야 계약직 강사 나부랭이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자리가 되어줄 수 있어서, 칭찬과 위로가 고플 때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수 있어서.     

협력강사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주시는 담임선생님을 만날 때, 오히려 나에게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고 예의를 차려 말씀해 주시는 선생님을 만날 때는 나 역시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본인의 수업을 누군가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학부모 공개수업을 일 년 내내 진행하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고 그렇기에 아이들과 정이 들었을 때 이별을 고해야 하는 직업. 그래도 이렇게나마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다. 올 해도 좋은 아이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교육청 홈페이지를 들락날락거리는데...     



이상하다. 작년에 그렇게 쏟아졌던 공고가 3월이 됐는데 하나도 올라오지 않는다. 뭔가 불안하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쫄린다. 코로나 이후로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이 너무 많아져 한시적으로 생긴 일자리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제 교육청에 이 사업은 없어지는 건가.

늘봄학교가 올 해부터 전국적으로 시행된다더니 늘봄학교 강사 뽑는 공고만 족족 올라온다. 하지만 난 중등교원 자격증이라 자격미달. 기초학력 예산이 늘봄학교 쪽으로 쏠린다는 카더라 소식도 족족 들리더니 정말 내가 돌아갈 곳은 없는 것인가.     

그렇게 2월 한 달이 다 지나 3월이 되었고,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교육청 홈페이지를 드나드는데, 한줄기 빛이 되어 내 눈에 들어온 공고 하나. 작년에 일했던 학교 딱 한 군데만 공고가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 망설일 이유도 여유도 없이 순식간에 서류준비를 마친다.

이 직업은 계약서 도장을 찍을 때까지 확실한 것은 없기에, 일했던 곳이라고 나에게 주어지는 베네핏은 없다는 것을 몇 번의 쓰디쓴 경험을 통해 확실히 인지하고 있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원서를 제출하고 나오는데 기분이 씁쓸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하라고 할 때, 공부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좀 할걸. 연애하느라, 놀러 다니느라, 개인적인 아픔이 있다는 이유로, 이 핑계 저 핑계 대느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것 같아 한숨만 나온다. 자소서 쓰는 일도, 면접 준비하는 것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1년마다 마주하는 그 일들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하루가 어찌나 길게 느껴지는지. 발표 예정 시간을 넘겨서도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며 올해는 글렀구나, 올 한 해는 나를 돌아보고 나의 내면에 좀 더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곤 했는데 진짜 나를 돌아만 봐야 하나보다 하는 마음에 포기하고 있는데.

“띠링”     

살.았.다. 올해도 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다행이다. 올리브영에서 당당하게 돈 쓸 수 있겠다. 아침마다 전신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돌 수 있겠다.  아침마다 꽃단장을 하고 나갈 곳이 생겨서 마냥 기뻤다. 이때까진 몰랐다. 열심히 뜀박질할 준비를 해야했음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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