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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Apr 04. 2024

아, 나도 울고싶다.

우당탕탕탕!

또 뛰쳐나간다. 바닥을 뒹굴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를 잡다 지친 나는, 결국 나가는 아이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쏘아 올려지는 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

팔목이 시큰거린다. 갓난쟁이를 키울 때 느꼈던 손목 통증을 느끼는 날이 다시 올 줄이야.     



 

첫 회의 때 1학년 부장선생님이 그러셨다.

“선생님이 모든 걸 다 해결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하다 하다 정 안되면 그냥 놓으세요.”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지 않게 하려고 해 주신 말이라는 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감사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주 큰 변화는 아닐지언정 6년 동안이나 다녀야 하는 학교가 아이에게 힘든 장소가 되지 않게, 첫 단추 끼우는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늘 학교에 오면 사인펜과 스케치북 또는 종합장에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 본인이 그린 그림이 마음이 드는지 혼자 웃을 때도 있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릴 때도 있다. 하지만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처럼 온전히 다 따라오지는 못 하더라도 그 시간에 맞는 교과서를 꺼내고, 할 수 있을 만큼은 수업에 동참하고 따라오길 바라시는 담임선생님은 3월 중순즈음부터는 스케치북과 사인펜을 꺼내놓지 못하게 하셨다. 아이의 엄청난 저항이 시작되었고 40분 내내 큰소리로 울고불고 떼를 쓰고... 그래도 담임선생님은 단호하게  아이에게 안 된다고 말씀하셨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아이는 수업 시간에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나의 말에도 10분 남짓 버티다 이내 수긍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쉬는 시간에 그리는 거야. 이따가 쉬는 시간, 중간놀이 시간에 다시 줄게.”

거센 폭풍우가 잠시나마 잦아든 것만 같았고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래, 이렇게 하나하나씩 배워가자.


     

사인펜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자 이제는 연필로 좍좍 마구잡이로 선을 긋기 시작한다. 교과서에도 책상에도, 학습지에도. 사인펜으로 그렸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그림을 이제는 연필로 손이 닿는 곳이면 마구잡이로 그리기 시작한다. 그때, 그냥 놔뒀어야 했던 걸까.

학습지에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하자 아이는 또다시 저항을 하기 시작한다. 본인의 욕구를 잘 참고 있었는데 내가 그 부분을 건드린 걸까. 처음보다 더 심하게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고 반 아이들의 마흔 개가 넘는 눈동자가 한 곳을 향해 모여든다. 그런 아이를 신경 쓰지 않고 침착하게 수업을 진행하시는 담임선생님과는 달리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함이 느껴진다.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 진정시킨 후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데 또 쏜살같이 튀어가는 아이. 그러더니 교실 뒷문을 잡고 내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때에 맞지 않는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 아, 수업 중이란다 아이야. 갑자기 나도 울고 싶어 진다.     


<출처: Pixabay>


500원짜리 동전 한 개를 넣으면 팡팡 쏘아 올려지는 실내야구연습장의 야구공이 된 듯한 아이. 행여 그 공이 다른 곳으로 튕겨져 나갈까 봐 열심히 공을 쫓는 나.

1학년 다른 반이 줄넘기를 하는 곳까지 뛰어가려는 아이를 부지런히 쫓아가 잡아보지만 또다시 드러눕는다. 다른 반 아이들에게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줄넘기를 하는 반 담임선생님까지도 그 아이와 나를 물끄럼히 쳐다보는 그 눈빛이, 싫었다.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며 뛰어가는 순간, 슬로우모션처럼 내 눈앞에 펼쳐지는 한 장면.     

 어라? 저기 똑같은 아이가 있네. 그런데 넌 안경을 쓰고 있구나. 나와 숨바꼭질을 벌이는 그 아이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그 반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아! 정말 똑 닮았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너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느 정도 학교생활이 가능하구나. 이 아이의 형을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어떻게 1교시가 끝났는지 모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오늘 처음으로, 내가 이 일을 일 년 간 할 수 있을까 라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더 서글픈 건,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방어기제가 발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드러눕는 아이의 팔을 잡았는데 그 행동이 반복되다 아이의 팔에 멍이라도 들면 어쩌지? 아이가 드러누울 때 머리를 보호한다고 내 손바닥을 머리게 갖다 대주기는 하지만 그 순간 타이밍이 안 맞아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러다 아이의 엄마가 오해를 하게 되면 어쩌지. 처음 아이에게 가졌던 나의 마음이 조금씩 두려움으로 바뀌며 뒤로 물러서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이 상황이 싫었다.  


   

또 한 가지는, 아이와의 관계, 상황에 대해 이렇다 말 한마디 해주지 않으시는 담임선생님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혹시 선생님이 불편 해하시는 건 아닐까. 나로 인해 아이가 만들어내는 소란이 선생님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선생님이 원하는 것을 내가 눈치채지 못해 놓치고 있는 것들은 없나. 나의 행동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고 눈치가 보이자 수업시간 내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방해만 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속상함이 자꾸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제 겨우 한 달 지났는데.     

집에 와 남편에게 이런저런 푸념 섞인 말을 늘어놓는다. 내 말에 깊은 공감을 해주다가, 갑자기 깊은 빡침도 한번 날려주다 마지막엔 이 한마디를 남긴다.     



“제일 힘든 아이가 당신에게 맡겨진 이유가 뭘까?....... 내일부터는 아대 차고 가.”     



(아,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럼 내가 더 이상 불평을 할 수가 없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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