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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y 03. 2024

그렇게 선생님이 떠났습니다.

    

“선생님 싸대기 때려버릴 거예요! 저 진짜 때릴 건데요.”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두 팔을 잡고 가만히 바라본다. ‘너 자꾸 그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라는 나의 마음의 소리가 들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쉽지만 씨알도 안 먹힌다. 아이는 발길질을 하고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쓴다. 초2밖에 되지 않았는데 뭘 그렇게 잘 먹은 건지 밀어도 밀리지 않는 흔들바위 마냥 버텨내는 아이를 당해내기가 쉽지 않다. 짧은 다리기에 망정이지 아마 아이가 쏟아내는 힘 그대로 맞았다면 전치 2주는 나왔을 법하다. 친구들이 보고 있는데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더욱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선생님을 이겨 먹으려는 아이.     




여느 때와 같은 수업이었다. 그날은 전통놀이를 배우는 시간으로 공기놀이를 한다고 하셨다. 초등학교 때(라떼는 국민학교였지만)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교실 뒤에 삼삼오오 모여 공기놀이를 했고, 그 모습을 본 담임 선생님께서는 공기대회를 열어주셨다. 당당히 3위 안에 들었던 내가 보기에 공깃돌을 던지고 받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신기하리만치 아이들은 던진 공기를 잡아내는 데 애를 먹는다. 별거 아닌 듯해 보여도 손과 눈의 협응이 이루어져야 하는 놀이인지라 연습이 필요한데 잘 될 때까지, 익숙해질 때까지 던지고 또 던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몇 번 하다 ‘아 몰라, 너무 어려워.’를 외치며 이내 포기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게 뭐라고 가만히 앉아서 던지고 잡기만 하면 되는 놀이인데도 아이들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히는데 그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처음엔 하나만 잡아보는 연습을 하다 하나씩 단계를 높여 마지막 5단계까지 도달한 아이들의 얼굴엔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행복한 미소가 퍼지고 그 미소에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진다.

21명의 아이들 모두가 그 성취감을 경험하면 참 좋으련만, 뜻대로 되지 않자 성질을 부리며 공깃돌을 던지는 아이들, 선생님이 뭐라고 하든지 말든지 신경도 안 쓰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아이, 공깃돌 하나로도 기발한 놀이방법을 생각해 내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교실 한 구석에서 “안돼, 하지 마.”라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린다. 자기만의 소리를 내며 분주하고 시끄러웠던 교실에 일순간 정적이 흐른다.



“저 이거 눈에 넣을 거예요, 넣을 수 있어요.”라며 플라스틱 재질의 공깃돌을 눈에 욱여넣으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 그런 아이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담임 선생님. 뜻대로 되지 않자 선생님을 발로 차고 꼬집고 깨물기까지 하는 아이. 반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자 갑자기 윗옷을 벗기까지 한다.

반 아이들로부터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아이를 인계받고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평소에 내 손을 꼭 잡고 싶어 하고 무슨 일을 하든 함께 해주길 원했던 아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달려간다.

“A야, 선생님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옷 잘 입고 나와.” 수분이 지나고 나온 아이를 가만히 살펴보는데 아직까지도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더니 나를 밀치고 뛰어나간다.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아이를 따라 함께 복도질주를 하는데, 너의 컴퍼스보다 내가 좀 많이 길거든. 얼마 못 가 잡힌 아이는 담임선생님께 했던 그대로 나에게 복사 붙여 넣기를 한다. 선생님의 싸대기를 때려버릴 거라는 외침과 함께.     

결국 아이는 상담실로 보내졌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3월에 비해 왜 그렇게 의욕이 없고 산송장 같았는지를. 아이들에게 말씀하실 때도 왜 그렇게 무기력하고 세상만사가 귀찮은 사람처럼 말씀하셨는지. 나야 일주일에 고작 3번만 그 아이를 만나면 되지만 담임선생님은 하루 짧으면 5시간 길면 7시간까지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기가 쪽쪽 빨리셨을지, 감히 나는 짐작도 할 수 없겠지.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아이들 지도하기가 참 어렵다고. 요즘은 마음도 정신도 아픈 아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그 말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요즘.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여자들에게 최고의 직업이라 불리던 때가 정말 있긴 했던 걸까 싶은 요즘의 학교의 모습. 하루 3~4시간만 아이들을 만나는 내가 감히 이렇게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게 섣부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아이들이 더 자유분방 해지고 자신만을 사랑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건 맞는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내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건 A인데, 정작 나에게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는 건 죄 없는 담임선생님이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반응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행동지침을 설명해 주시면서.     



딩동. 학교알리미가 울린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알림이 아니다. 다들 각자의 일을 처리하기도 바쁜 큰 학교 특성상 시간 강사에게까지 친절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건 너무 큰 사치라는 걸 터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 밥그릇은 내 스스로 챙겨야 하기에 일하고 있는 학교도 관심 학교로 등록해 놓았는데 그쪽의 알림이 울린다. 또 어디 체험학습이라도 가는 건가. 미리 말씀 좀 해주시지. 에잇, 그럼 이번달 급여액이 더 줄겠군. 하며 무심히 핸드폰을 들어 확인하는데, 2학년 담임을 뽑는 기간제공고가 올라왔다. 사건이 있고 난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두 달 동안의 기간제 선생님을 뽑는.

설마, 아닐 거야. 누구 아프신 분이 계셨나, 학교에 가면 알 수 있겠지라는 생각과 다르게 마음 한 켠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의 혹시는 역시나였고, 아이들은 나에게 달려와 “선생님, 우리 담임선생님 마음이 아파서 학교 못 나오신데요. A는 이제 2교시만 하고 엄마랑 집에 가서 공부한데요”라며 조잘조잘 이야기를 해 준다. 수업이 시작되는 종이 울리고 들어오신 선생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협력수업을 진행한다.     


출처:Pixabay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더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2학년이 먼저 무너졌네요.”라며 씁쓸한 얼굴로 말씀해 주시는 1학년 부장 선생님. 작년에도 근처 초등학교 1~2학년 담임선생님이 중간에 휴직하는 일이 많다는 말을 들을 때도 그 정도로 힘드신가 했고, 뉴스나 각종 미디어에서 보고 들을 때도 안타까운 마음만 있었지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그러면서 순간 정신이 번뜩 든다. 나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어떤가를 되짚어 본다. 선생님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내 자식이 귀한 것처럼 선생님도 누군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인데. 내가, 그리고 아이가 선생님께 무례하게 굴었던 적은 없는지 곰곰이 곱씹어 본다. 가장 중요한 건 기본예절이라며 수도 없이 반복하고 가르치고는 있지만 내 자식인데도 내 맘대로 되지 않음을 느낀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집에서와 학교에서의 모습이 다른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집에서 잘하니까, 내가 잘 가르쳤으니까 내 아이는 아무 문제없다고 교만하게 굴지는 않았는지를 다시금 돌아본다.

6월이 되면 환한 미소를 짓고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던 선생님을 볼 수 있을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은 야속한데 6월은 속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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