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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Nov 06. 2023

일단 시작합니다.

  나는 죽고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삶이 당연하듯 12년을 살아왔다. 나의 이름이 불리는 것보다 ‘맑음이 엄마’로 불리는 것이 익숙해진 삶.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육아에 조금씩 여유라는 녀석이 찾아들었고, 드디어 막내까지 초등학생이 되어 이제 제대로 된 자유부인 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막막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내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이었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좋아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몸은 전보다 편해졌는데, 공허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농촌생활 12년,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친구들은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팀장님, 과장님, 부장님이 되어있었고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나만 아직도 시간 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첫 직장에서 받은 교원증은 이미 빛이 바래 있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고 화장대 서랍에서 깨어날 때를 모른 채 깊은 잠을 자고 있다. 환한 빛을 내던 나의 20대의 모습을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빼곡히 적혀있던 나의 일상들

 파워 ‘ J’인 나를 대변해 주듯 빼곡했던 다이어리의 글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나씩 떠나가 여백의 미를 알려주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한 명, 한 명 늘어갈 때마다 나의 몸뚱이는 고장 난 내비게이션처럼 방향을 잃고 그 자리를 돌고 또 돌고 있었다. 아이들이 주는 웃음에 난 웃고 있는데, 분명 난 행복한데 밤만 되면 스멀스멀 밀려오는 허무함과 공허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머릿속에 자욱한 안개를 걷어내고 싶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내버려 둔 슬라임처럼 늘어져있는 나를 이제는 주워 담고 싶었다.      



  

  평소처럼 밀려오는 식곤증을 이기기 위해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스르르 눈이 감기려던 찰나, 무심한 듯 툭 하니 올라온 글 하나에 희미해지던 의식이 돌아왔다. 작년에도 ‘내가 무슨 글쓰기’라며 흘려보냈던 그 프로젝트가 다시 시작된다는 피드는 나의 마음에 일렁이는 파도가 되어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국어과니까 글을 잘 쓰겠네’라는 말로부터 늘 도망 다녔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고 아이들 글쓰기 과제 시킬 때마다 부족한 부분들을 조목조목 짚어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까지 쌓아 온 ‘국어 잘하는 엄마’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강료가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 돈이면 아이들 가을 옷 한 벌씩 더 사줄 수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서점나들이 몇 번을 더 할 수 있는데. 또다시 나에게 인색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다 재우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던 중 이 프로젝트 이야기를 슬쩍 흘렸고, 남편은 고민하지 말고 도전해 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어쩌면 나 말고 다른 이의 지지와 ‘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의 말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없다, 실패할까 봐 두렵다고 말은 하면서도 내 손은 이미 결제 비번을 누르고 있었다. 마감 20분 전 밤의 고요함을 깨고 울린 문자 한 통.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까 봐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있는 아이처럼 선생님의 강의를 놓칠세라 귀 기울여 듣고, 함께 시작한 동기 작가님들의 글을 일용한 양식 삼아 한 걸음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 마음에만 고이 담고 있던 이야기들이 한 줄 한 줄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내 가슴을 꽉 막고 있던 응어리들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고, 그 응어리들을 우악 거리며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예쁘게 꾸며주고 싶었다. 좁디좁은 공간에 갇혀 있게 해서 미안했다고, 이제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자는 말과 함께.     

 동기 작가님들의 SNS공간이 작가만의 공간으로 빠르게 단장하는 동안 나의 공간은 여전히 침묵 중이다. 나를 아는 이들에게 글을 보인다는 게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직은 내 글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원체 센스도 없고 재미도 없는 사람인지라 쓰는 글마다 궁서체의 옷만 입히고 있는데 각양각색 다채로운 옷을 입히는 동기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나에게만 예쁜 응어리들에게 미안할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주문처럼 외우며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린다. 어딜 가나 웃는 모습 하나라도 놓칠세라 아이들 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내가 아이들을 피해 감성사진을 찍고 있다. 관심사를 한참 동안 나에게 떠들어 대는 남편에게 반복적인 끄덕임을 해 대는 고양이 인형처럼 반응은 해주고 있으나 머릿속엔 내가 쓴 글을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빈틈이 없다. 아이들 반찬걱정으로 쥐어짜던 머리를 이제는 좀 더 재미있고 위트 있는 표현을 찾아내느라 안 그래도 없는 머리카락이 다 빠질 지경이다.     

 단톡방을 통해 들려오는 기쁜 소식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지하 39층까지 뚫고 내려간 나의 자존감이 더 깊은 곳을 향하려 만반의 준비를 마치려는 그때. “엄마 글 진짜 잘 쓴다, 엄마 이러다가 조앤롤링 같은 작가 되는 거 아니야?” 라며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나의 비타민들. 오늘도 은경 선생님의 마법을 읊조리며 글을 쓴다.      


앉아서 쓰기 시작하는 것이 시작이자 전부입니다. 쓰기 시작해야 무수한 글쓰기의 비법이 내 것이 되어 비로소 힘을 쓸 수 있게 됩니다. 복권 당첨을 바란다면 복권을 사야죠,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글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쓰세요.


-오후의 글쓰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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