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시작과 동시에 끝난 기분이다. 딱히 무언가를 해내거나 이뤄낸 게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나 보다. 큰아이의 기말고사 준비로 긴장하며 보냈던 6월과는 달리 7월 초, 아이의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긴장도 탁 풀어진 듯했다.(내 시험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일하던 학교의 학사일정을 맞추다 보니 예상보다 나의 1학기는 조금 더 일찍 마무리가 되었고 7월 한 달을 통으로 쉴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다. 주어진 여유 앞에 나의 촘촘했던 계획들을 사르르 눈 녹듯 사라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빈 공간들을 다시 꾹꾹 눌러 채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늘 해왔던 루틴이나 제대로 지키자 싶은 생각에 풀어헤쳐진 미역처럼 그냥 흐느적흐느적 보냈던 7월.
7월에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필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책을 좋아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함께 무언가를 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정들을 미루거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필사를 하며 읽으니 한 문장 한 문장 더 꼭꼭 씹어 읽게 되었고, 내용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을 수 있었다.
한 달에 하나씩 뭔가를 배우고 싶다는 것이 나의 올해 계획이었는데 이번 달에는 비누공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시골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한 가지는 뭔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도시보다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시보다 수요자가 많지 않은 상황이라 조금만 부지런히 알아보고 움직이면 그만큼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은 듯하다.(있을 때 많이 누려야지)
전에 미싱을 배울 때도 그랬지만 이번 비누공예를 할 때도 배우는 그 시간만큼은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어서 참 좋다. 내 손길에만 집중할 수 있고 내 손길을 통해 나오는 결과물들에 집중하는 그 시간들이 참 좋다. 복잡했던 마음들이 차분해지고 엄마로서의 내가 아닌, 아내로서의 내가 아닌 그냥 ‘나’로서 존재하는 그 시간들이 참 좋다.
7월엔 아이들의 행사가 많았다. 막내아이의 태권도 심사가 두 번이나 있었고 둘째 아이의 바이올린 연주회도 있었다. 학교에서 물놀이를 세 번이나 가는 통에 옷장 깊숙한 곳에 있던 수영복을 찾아 혹 작아지지는 않았는지, 물놀이 슈즈의 상태는 안녕한지 미리 준비해야 하는 물놀이 용품은 없는지 챙겨야 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일을 쉬게 되면 마음의 안정과 육체의 평안함이 좀 있으려나 했는데 애 셋 딸린 엄마에게 안정, 평안함이라는 단어는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 없는 단어인가 보다.
딱히 뭘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건지 매 순간들이 바빴던 나날들. 숨 쉬는 것만으로도 축축 늘어지게 만드는 날씨 덕분에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7월이었다.
그런 7월을 버티게 해 준 것이 있으니 바로 성장메이트 상반기 모임이다. 6월 말부터 그날을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마치 시든 꽃에 부어지는 생명수 마냥, 타는 듯한 더위에 힘없이 늘어진 벼에게 부어지길 고대하는 단비 마냥 기다리고 기다렸던 그날.
그녀들을 만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나만큼이나 온 가족이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임인 성장메이트 모임에 무사히 참석할 수 있었고, 그녀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그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하반기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고 돌아왔다. 아무런 조건 없이 대가 없이 나눠주고 또 나눠주는 그녀들을 보며 나도 내가 가진 것들을 더 아낌없이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 그러기 위해 나 역시도 나눠줄 것들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람들. 8시간 넘게 떠들다 왔는데도 돌아서는 발걸음엔 아쉬움이 잔뜩 담겨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워지게 만드는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잘하고 있다 애정 담긴 마음을 부어주고 또 부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8월도 힘을 낼 수 있을 듯하다.
8월에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일정들이 많이 계획되어 있다.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야구관람도 하러 가기로 했고(비록 내가 응원하는 팀 경기는 아니지만) 소소한 여름휴가도 계획되어 있고, 무엇보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던 형식의 캠프 참여도 계획되어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동안 함께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해지지 않게 되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보내는 하루하루가 지금은 너무도 치열하지만 흘러가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고 그리워지는 순간이 되는구나를 조금씩 깨닫게 되는 요즘. 늘 그랬듯 특별하지 않지만 매일매일을 소중하게 나의 삶의 자리를 지키며 별 것 아닌 듯 하지만 별 것이 될 수 있는 나의 루틴들을 지키며 보내게 될 8월을 차분히 맞이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