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숨을 몇 번 고르고 나니 8월이 지났다. 이번 아이들의 방학은 유독 짧게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방학계획을 세우기도 참 애매했다. 이미 7월부터 세워놓았던 계획들 덕분에(모두 놀러 가는 계획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 아이들의 학습계획은 세울 수가 없었고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어찌하리. 이런 상황을 이미 예견한 나의 8월 키워드는 ‘너그러움, 유연성’으로 정했고 긍정확언으로는 ‘나는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고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든다’로 정했다. 마음이 불안해질 때마다 키워드를 생각했고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려고 부단히 애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들에게도 학업으로 스트레스 주지 않고 나 역시도 내려놓음에 조금 더 내려놓음을 보태보는 8월을 보내보자 다짐했던 한 달. 그렇게 8월은 휘리릭 지나갔다.
8월 첫날부터 우리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벼르고 벼르던 야구 직관하기. 4월에 계획해 놓았었는데 예상치 못한 큰아들의 교통사고 덕분에 티켓값을 고스란히 날렸더랬다. 응원하는 팀의 원정경기라 정말 큰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다. 그 후로도 몇 번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티켓 예매는 하늘의 별따기였고 우리는 직관과 연이 없나 보다 포기하려던 순간. 차애팀의 원정경기가 열린다는 소식에 눈이 돌아버린 남편은 이번엔 기필코 예매에 성공하겠다는 남다른 각오로 피부과 진료를 기다리면서까지 노트북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예매창이 열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클릭질을 해댄 결과 예매에 성공! 그렇게 우리는 꿈에 그리던 직관을 다녀올 수 있었다. 딸아이는 야구에 야자도 모르는 아이라 과연 그 긴 경기를 참고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싶어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야구 응원의 매력에 빠져버렸고(엄밀히 말하면 야구가 아니라 응원의 매력에) 다음에도 또 가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치기까지 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야알못이지만 그래도 같이 다녀준다는 게 어딘가. 그것만으로도 성공, 대성공이다.
이번 여름휴가도 캐리비안베이였다. 짧은 여름방학 기간에 아이들의 만족도를 최상으로 높여주는 휴가 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었고 몇 년 동안 다니다 보니 이제는 자기들끼리 알아서 놀 곳을 찾아다닐 정도가 되어 내 몸도 조금은 편해졌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픈런해서 마감시간까지 아주 알차게 놀다 나왔고 ‘이만큼 놀았으면 됐다, 내년부턴 다른 곳을 찾아보자’며 쿨하게 안녕을 고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빵지순례하면 빠질 수 없는 성심당까지 들러 야무지게 먹고 빵과 샌드위치도 한아름 사 왔으니 이번 휴가는 가족 모두 만족 대 만족이었다. 해외여행도 아니고 특별한 곳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매년 갔던 곳에서 시간을 보냈는데도 가족 모두 만족하며 그 순간들을 즐기고 누릴 수 있었음이 참 감사하다.
8월에 가장 큰 수확은 아이들과 함께 ‘꿈마실캠프’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꿈마실은 목회자와 그 자녀들을 위한 공간이다. 해마다 여름, 겨울 아이들의 방학에 맞춰 열리는 캠프인데 타이밍이 맞지 않아 늘 놓쳤었다. 이번에 정말 감사하게도 예약시기를 맞출 수 있었고 아이들의 동의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했던 질문이 있다.
아이들이 만나는 아빠 엄마의 지인의 팔 할이 목회자였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방문하는 곳의 대부분이 교회였던 아이들.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아닌 부모님 때문에 마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목회자 자녀라는 어항에 갇혀버린 아이들. 그 어항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나도 모르게 의식하며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고 아이들도 그것이 너무도 당연해졌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 어항이 사실은 좁디좁은 어항이 아니라 아주 넓은 아쿠아리움이었다는 것을.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조금만 옆으로 눈을 돌리고 생각을 바꾸면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한 길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목회자 자녀라는 같은 상황이지만 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친구들, 형아 누나 언니 동생들의 모습을 함께 보고 싶었다. 남들은 알지 못하는, 하지만 PK(pastor kids)만이 아는 어려움이나 고민들을 함께 나누고 조언을 듣고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캠프에 참여했는데 완전 대성공이었다. 아빠 엄마가 말했을 때는 귓등으로 듣지도 않던 아이가 꾸준히 참여했던 또래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 뒤 아이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낯선 장소, 사람들을 너무 두려워하고 선뜻 나서지도 못하는 둘째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주고 이끌어 준 언니들 덕분에 ‘대문자 I에겐 이 공간이 너무 두렵다’는 딸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 캠프에도 꼭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는 진짜 두 손 높이 들고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어려움, 고민들을 함께 나누며 마음의 평안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들끼리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도 자진해서 참여해 보겠다는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이번 방학 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남지 않는 8월이었다.
캠프를 마치고 나니 두 팔 벌려 아이를 맞이하는 개학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아이의 방학도 나의 8월도 끝이 났다. 사실 앞으로 내달리고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불안한 마음이 치고 올라올 때가 많았다. ‘누구는 공부를 이거 이거하고 있더라, 지금 방학 때 이것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놓치면 나중에 너무 힘들 거다.’ 여러 가지 말들로 마음이 흔들리고 어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방학은 여러 가지로 우리 가정에 중요한 시기였고 어쩌면 아이들이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새로운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새로운 만남과 도전에 손을 내밀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상의 기준과 흐름에서 볼 땐 한 발자국 더디 내디딘 것 일수도 있으나 조금은 멀리 그리고 넓게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불안함은 멀리 던져버리기로 했다. 이제 9월이 되면 아이는 중간고사 준비로 정신없는 날들을 보내겠고 초등 아이 둘도 학사 일정에 맞춰 빠듯하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겠지. 앞으로 있을 바쁜 나날들을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에너지를 쌓은 8월이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