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 나의 아침

모든 엄마는 똑같지만 나는 또 다른...

by 휴식

오늘도 어두컴컴한 신새벽에 눈을 떠서 한참을 일어나지 못하고 침대에 깬 채로 누워 있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휴대폰을 찾아 시각을 확인하니 am 5시 40분. 알람은 am7시인데 항상 이 시간쯤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이왕 일찍 깼으니 머리로는 벌떡 일어나서 운동이라도 가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결국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렇게 잠에서 깨면 손에 잡힌 휴대폰으로 세상돌아가는 뉴스는 빠르게 넘기고, 읽기 쉬운 연예계 기사를 읽는다. 딱히 관심이 없으니 그조차도 길지 않은 시간이다. 자주 가던 맘카페에 등록된 글들을 읽고, 오늘 아침 메뉴는 뭘 하지? 싶어 검색도 해보고, 그러다보면 해가 뜨는 지 깜깜했던 방안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한다. 이제 진짜 몸이 일어날 시간이 됐다는 의미다.


부스럭거리며 몸을 일으켜 방에서 빠져나오기 전, 아직 곤히 잠든 딸아이를 한동안 바라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세상 보물이 세상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볼때 극강의 만족감이 든다. 이 순간만은 내가 이 아이를 위해서 태어난게 아닌가 싶은 과한 사랑이 샘솟는다. 아이가 조금 더 잘 수 있도록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오면 이제 본격적인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요즘 자주 듣는 유키구라모토의 연주곡을 유튜브에서 검색하여 틀어놓고, 빠르게 주방으로 향한다. 계속 누워있고 싶어하는 내 마음근육의 관성때문에 매일 듣는 이 피아노곡이 아니면 나의 몸은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아침메뉴는 계란간장비빔밥이다. 조리법은 간단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아침이다. 하지만 이것도 계란의 익힘정도와 간장, 참기름의 조합 여부에 따라 맛이 더 좋아질 수 있으니, 무조건 쉬운 메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아이는 계란노른자가 갓 다 익혀서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운 식감이 날때를 좋아한다. 흰강낭콩이 가득 들어간 현미밥에 계란후라이를 얹고, 저염도 간장 한스푼 반, 참기름 한바퀴 휙 두르고, 참깨소금을 3꼬집 뿌려 뜨거울때 슥슥 비벼서 약간 익은 배추김치를 곁들여 내면 아침 잠결에도 먹으면서 엄지척 하는 신나는 맛이다.


엄마들마다 자신의 육아에서 중요시 여기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육아에서 제일 공을 들이는 것은 아이의 식사다. 나는 육아를 잘하지 못하는 엄마 중의 한 사람이다. 참을성도 없고 감정의 기복이 커서 무던하게 아이를 대하지 못하고, 나의 감정의 변화에 따라 아이를 대하다 보니 아이가 심적으로 평온함을 느끼는 시간이 적었으리라... 작은 기쁨에도 크게 행복해 하는 것은 나의 장점이었으나, 작은 힘듦에도 쉽게 울고 심적으로 무너지는 엄마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마음은 자주 힘들었으리라...아이가 힘듦을 알고 있음에도 마흔 다섯 평생을 감정에 좌지우지하며 살아온 나의 성질도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그런 내가 엄마로서 아이에게 밥! 하나는 열심히 해줬다고 자부할 만큼, 나는 아이의 식사에 출근 전, 퇴근 후 내 남은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 덕분일까? 내 아이는 또래 주변 친구들에 비해, 다양한 식재료에 거부반응이 없고 새로운 음식에의 도전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매번 아이에게 "우선 한 입만 먹어보고 말해줘, 한 입을 먹어 본 후 너의 입맛에 맞지 않다면 안 먹어도 돼." 하며 꾸준하게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게 하는데 노력했고, 그 결과로 아이는 간식보다는 밥이 맛있다는 식이가 건강한 아이로 자라났다.


식이가 건강한 아이는 병치레가 드문 아이로 긍정적으로 성장하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는 아이가 아프면, 아이가 아파서 어쩌지가 아니라, 아이가 또 아프다고 하면 회사에 눈치가 보이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머릿속을 스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이가 3살때 코로나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했고, 그 과정에서 보육기관들이 예고없이 문을 닫아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었다. 적어도 아빠라도 있었다면 남편과 내가 반반 휴가나 돌봄혜택을 써가며 버텼을텐데 남편의 회사는 타지역이라 주말에만 만날 수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한 보육기관 휴원은 직장생활과 육아로 지칠때로 지친 나를 무너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부터 내 눈꺼풀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려대는 조절 불가한 불수의근이 되어버렸다. 모든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나이지 못하는 시간들이 계속 될때도 아이만은 자기의 몫을 조용히 하고 있었다. 아이는 작았지만 건강했고 밝았고 즐거웠다. 그리고 몸은 작았지만 그 속은 엄마나 아빠의 것보다 훨씬 크고 넓었다. 보육기관의 친구들이 독감이나 수족구, 열병 유행으로 죄다 아파서 등원을 못할 때도 우리 아이만 살아남아 등원을 할수 있었다. 아이가 잔병치레가 많지 않은 것!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 혼자 잘 버텨준 건강한 아이 덕에 나는 그 힘든 시기를 휴직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나 멍한 상태로 습관적으로 화장실에서 갔다 나오면 기존의 습관대로 양치와 세수를 하도록 재차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과정이 아침 일상 중 가장 불안한 시간이다. 루틴대로 빠르게 학교갈 준비가 되지 않고 내가 반복해서 "양치해, 밥 먹어, 옷은 안 입니?" 를 말하다보면 짜증이 스물스물 기어올라와 그 끝은 결국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고 화를 내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의 느긋함에 대한 짜증 정도만 낸다면 "그건 모든 집의 아침 모습이야" 라고 치부하고 약간의 반성만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짜증은 그간 아이에게 불만이었던 행동에 대한 날이 선 평가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육아로 인해 저평가되고 눈치볼 수 밖에 없는 내 회사생활에 대한 분노로까지 이어져 아이에게 냅다 화를 퍼붓기 시작한다. 내가 그간 받은 힘듦과 상처를 아이 너도 똑같이 받길 바라는 사람처럼... 그 순간 나는 과연 내가 이 아이의 엄마가 맞는가? 험한 세상으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고 차가운 시선으로부터 아이를 따뜻하게 감싸오던 엄마는 그 자리에 없다. 아이의 눈에는 나를 사랑해주는 엄마가 아니, 나를 상처주기 위해 못된 말을 하는 무서운 괴물같은 어른이 큰 소리를 지르고 있을 뿐이다.


아침준비시간이 촉박해서 아이를 재촉하고 혼을 내기 시작했는데, 그쯤되면 이미 늦은 학교시간은 안중에도 없고 나의 화풀이와 아이에게 고함지르기에만 집중하게 된다. 무엇에 그리 화가 났을까? 주객이 전도한 상황에서 결국 울음을 터트린 아이의 옷가지를 챙겨 입히며 지각이라 서둘러 등떠밀듯 엘리베이터에 아이를 태워 내려보낸다. 작은 두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 주르륵 흐리는 모습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보이면, 그제서야 집 나갔던 정신이 돌아와 내가 또 무슨 패악을 떨었는지 멀어졌던 현실에 닥치는 기분이 든다.

바닥을 치는 기분을 뒤로 하고 이제 회사갈 준비를 할 시간이다. 내 준비 시간은 오로지 단 10분! 눈에 띄는 옷을 대충 걸쳐입고, 집을 대충 둘러보고 매일 들고 다니는 초록가방의 위치를 챙긴다. 운이 좋아 로션바르기를 까먹지 않은 날은 얼굴 땡김이 덜하다. 매일 샤워 후 바로 로션을 바르면 될 일인데, 매번 그 간단한 일을 까먹는다. 아 맞다씨도 아니고 매일 "아! 맞다." 하는 놓치는 일들이 생긴다. 제일 자주 놓치는 일은 집 안 전등끄기이다. 퇴근 후 현관을 들어서는데 평소보다 거실에 환한 기운이 느껴져 보면 방마다 환하게 전등이 켜져있다. 그런 낭비는 왜그렇게 아깝게 느껴질까? 차라리 난방이었다면 집이라도 따뜻할 텐데... 라고 자책하며 다음에는 절대 안 까먹어야지 한다. 아마 내일 또 전등끄기를 놓치고 출근할지 모르지만. 오늘은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이렇게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향하면 짧지만 감정이 혹독하게 요동쳤던 아침준비가 끝난다.

차량에 타서 시동을 걸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아이에게 사과문자 보내기!


"딸! 미안해. 엄마가 화내고 나쁜 말해서... 너가 잘못한 거 아니고, 엄마가 짜증이 나서 너한테 화를 낸거야. 용서해줘, 사랑해."


오늘의 아침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