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k-drama, k-food...
"k"만 붙이면 한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지금, 나처럼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분이라면 지난 15년 간 눈부시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소프트 파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인도의 어느 국제학교를 처음 다니게 된 것은 2013년 1월이었다.
물론 그때는 영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은 내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보지 못한, 동방의 미지의 나라였다.
"코리아"라고 하면 북한, 노스 코리아의 인지도가 더 높던 시절이었다. 내 친구들은 매번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냐고 물었고, 대충 알아들은 후에는 아, 그 미사일 쏘는 나라냐며 물었다.
길을 걷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옆을 쌩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보고는 "China!"라고 외치는 건 일상이었다. 난 중국인도 아니면 일본인도 아니라는 걸 납득시키는 게 꽤 힘든 일이었다.
잠깐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이제는 고등학생이 되어 2019년, 다시 인도로 갔을 때 난 비로소 국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친구들은 한국이 무슨 나라인지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드라마와 아이돌을 좋아한다며 이것저것 대화할 거리를 가지고 다가와 주었다. 나보다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해도 무방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근무하신 아빠는 늘 당신이 젋었을 때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좋아진 거라고 침이 마르도록 감탄하시는데, 나도 그 마음이 뭔지 조금이나마 공감한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다른 곳에서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가는 해외에서의 학교 생활, 특히 초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물론 아이들과 조금 친해지고 난 후에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소갯말 뒤에 구구절절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너무 감사하다.
고등학교 첫날, 옆에 앉은 인도인 친구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투바투의 곡을 들려주는 걸 보며 나도 한국 문화에 더 애정을 쏟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6년 겨울 첫 번째 인도 생활을 마무리하며 한국 아이돌들의 이름을 열심히 외우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 아이돌들을 갑자기 좋아하게 되었냐? 천만에. 난 종이와 펜을 가지고 시험 공부하듯 외웠다.
한국 아이돌 문화와는 영 동떨어진 4년을 만회하기 위함이었다.
나와 동생처럼 초등학교 고학년 - 중학교 1학년까지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 부모님의 걱정 1순위는 학교 생활 부적응이다.
중학교 2학년으로 전학 예정이었지만 초등학교 3학년 수준에 머물러 있는 한국어 실력을 가졌으며 한국의 중학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배우들에 완전히 무지한 나를 두고 엄마는 걱정이 앞섰다. 그 불안은 나에게로 전염되었다.
결국 나는 사물함에 핑크색 꽈배기처럼 생긴 어느 아이돌의 로고를 붙이고 다니던 같은 학년의 한국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름 아이돌 문화에 빠삭했던 그는 날 위해 가장 유명하다는 아이돌들과 각 가수의 필수 리스닝 곡들을 적어주었다.
그날 저녁 BTS, 트와이스, EXO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하며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한국어인가 영어인가... 영상이 너무 뻔쩍뻔쩍한걸!
어쨌든 왕따 당하지 않으려면 기본적인 문화적 소양을 갖추어야 하니 성실하게 각 아이돌 그룹의 이름과 대표곡, 멤버들의 이름을 외웠다. 대부분의 그룹에서 멤버들끼리 서로 다른 색으로 머리를 염색했기 망정이지, 영영 못 외울 뻔했다.
우리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난 전학을 가게 된 울산의 어느 중학교에서 잘 적응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굳이 k-pop을 공부하지 않아도 됐을 거라 생각한다. 친구들은 아이돌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는 걸 재미있어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여 가며 그들에게 영업(?) 당하는 걸 은근히 즐겼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다.
지금도 난 아이돌, 배우 등 연예계 소식에 통 관심이 없다. 길을 가다 주변의 매장에서 들려오는 한국 노래들을 듣는 거 외에 특별히 아이돌 노래를 찾아 듣지도 않는다. 나만의 문화 취향이 생기고 성인이 된 이후에 싱가포르에서 대학을 다니며 남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이때 외웠던 BTS 멤버들의 이름 정도는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마저 모르면 이상해 보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