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제학교의 신명 나는 프롬파티

학교에서 프롬파티 안 해주면 우리가 자체적으로 연다

by 쭌쓰

국제학교를 다니는 졸업반 학생이라면, 하이틴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프롬 파티를 꿈꾼다.


내가 갈 대학이 정해졌든, 정해지지 않았든 졸업 시험이 끝나고 성인이 되었으며 정들었던 이들과의 작별을 앞두고 있자면 이 모든 것에 그저 하룻밤이라는 시시한 마침표는 너무 부족해 보이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나의 마음은, 연말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쌉쌀한 기분과 비슷한다. 한층 시원해진 공기가 내 마음의 먼지를 털어낸다. 그 밑에 드러나는 무언가는 발가벗겨져 부스스 떤다.


5월의 인도는 서늘한 초겨울 바람이 아닌 미간에 주름 잡히는 후덥지근한 온풍만 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의 끝자락에 와 있는 나와 반 친구들의 마음은 한 해의 나뭇잎을 우수수 떨군 나뭇가지처럼 어딘가 허전했다.


코로나 19가 아직 완전히 잠식되지 않았을 때라 학교 측에서는 프롬 파티는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우리들의 들뜬 마음에 대못이 박혔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다면 아까운 지금이 이대로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운동장에서 점심 도시락을 까먹으며 며칠 동안 토의한 결과, 친구 중 한 명이 이모로부터 자신의 집을 빌려 파티를 열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냈고 하나둘씩 음식과 술, 드레스 코드를 정하자 제법 그럴싸한 파티 계획이 세워졌다.


시간은 저녁 7시. 같이 다니던 여자애들 중 생일이 가장 빨랐던 친구가 운전면허증을 땄었기 때문에 아빠 차를 몰고 우리를 픽업 와 준다고 했다.


형형색색의 드레스를 갖춰 입고 마당이 있는 넓은 저택에 도착했다. 대문에 주차하고 조금 걸어 올라가자 왼쪽에는 정말 미국 영화에서 졸 만한, 2층짜리 주택이 등장했다. 나무판자로 되어 있는 발코니에 한편에 술과 레모네이드, 간식이 올려진 테이블이 있었다.


미리 와 있는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주스를 따라 들고 다니며 수다를 떨었다. 술을 좀 마셔 볼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의 눈치가 보여 술은 슬그머니 포기했다.


피자가 도착하고, 저녁 해가 땅 밑으로 파고들 때쯤 정원 한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시 우리는 보드카 한 박스를 사서 주스랑 섞어 마시거나 보드카를 그대로 작은 잔에 따라 마시는 샷(shot) 형태로 즐기고 있었는데, 샷을 한 번에 4잔을 마신 친구가 정원 한편으로 가더니 그대로 기절했던 것이었다. 아마 체격이 작은 친구라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듯했다.


어쨌든 우리는 단체로 당황했고, 한동안 흔들어 깨우는 게 소용이 없자 결국 덩치 있는 친구 한 명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기절한 애를 어깨에 들쳐 매고 거실 소파에 뉘어 놓았다.


다행히 물을 좀 먹이자 정신이 돌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파티가 끝날 때까지 소파에서 일어나지 못한 그 친구는 같이 술을 마시던 절친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친구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다. 하필 기절한 친구 부모님이 엄한 편에 속하셔서, 술을 마시다 기절하기까지 했다는 게 들통났다간 일주일 이상의 외출 금지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점점 술기운이 올라온 우리 학년 모범생 친구가 안경을 벗어던지고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 손에는 레몬을, 한 손으로는 겁나게 취해버린 그 친구의 머리를 받치며 깨끗한 버건디 색의 벤츠 바닥에 토사물을 쏟는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에 웃음만 짓던 추억이 생겼다. 그렇다. 운전 생 초보였던 친구가 끌고 온 아빠 차의 차종은 벤츠였다.


그날 저녁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정말 많이 웃고 떠들었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내 마음을 팔랑거리게 했던 감각만은 잊히지 않는다. 앞으로 다가올 입시의 불안감을 한동안은 꺼 둘 수 있어서 좋았다.


분위기에 취한 내가 혼자서 정원 가장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걷고 있을 때, 몇 미터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국인 친구 두 명이 서로 얘기하고 있었다.


서로 대화는 해 본 사이였지만 그다지 친하다는 느낌은 없어서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야, 가서 얘기해." 하는 목소리가 귀에 착, 붙었다.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했다. 얼마 전, 점심시간에 운동장 계단에서 밥을 먹으며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나랑 친했던 여자 친구 몇 명이랑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두 계단 밑에 몰려 앉아 있었고, 난 혼자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나랑 친한 친구가 갑자기 고개를 위로 돌리더니 나한테 대뜸, "넌 운이 좋은 것 같아."라고 했던 게 왜 그때 떠올랐을까. 아마 그 옆에 앉아 있던 한국인 친구가 어둑하게 그림 자까 깔린 정원 한가운데서 시시덕거리던 그 애랑 같은 인물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물어볼까, 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런다고 솔직히 얘기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그냥 둘을 스쳐 지나갔다. 못 들은 척했다.


몇 발자국 더 걸으니 까만 실크 원피스와 검은 정장으로 옷을 맞춰 입은 우리 학년 공식 커플이 뒤뜰로 이어지는 돌담길을 비틀거리며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친구들이 그 둘을 둘러싸고 놀렸다.


공식적인 행사가 아니었기에 화려한 조명이나 음악, 제대로 된 저녁은 없었지만 고등학교를 다니며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 준 밤이었다.


비록 내 인생은 2000년대의 미국 하이틴 영화 한 편이 아니지만

순간적인 로맨틱함에 젖어 볼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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