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다 보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공공 시스템과 편리함, 한국에 살 때 느꼈던 일상의 모든 것들이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돌이켜보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인도에 7년간 살았다고 하면 불편하지 않았냐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큰 그림을 보자면, 사람 사는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건 다 거기서 거기다. 작고 황당한 일상이 순간들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다.
1.
차 뒷좌석에 놔둔 해리포터 책이 녹아내렸다.
딸기 따기 체험으로 유명한 마블레쉬와르(Mahabaleshwar)에 놀러 갔었다. 당시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해리포터와 혼혈 왕자> (여섯 번째 책이다)가 약 3시간가량의 자동차 여행을 함께했다.
다 놀고 그늘에 세워 둔 차에 와 보니 자동차 내부가 후끈 달궈져 있었다. 분명 나갈 때는 나무 그늘에 주차했지만, 그새 햇빛의 각도가 달라져 차 뒷좌석을 이글이글 태우고 있었고, 뒷좌석에 있는 수납공간에 놓아두었던 내 해리포터 책은 녹아내리고 말았다.
책의 척추 부분의 접착제가 흘러내리는 걸 억지로 다시 붙여 놓으려 노력했으나, 책은 조각난 채로 엉성하게 다시 굳었다. 여전히 그 책은 우리 집 책장에 쳐 연하게 꽂혀져 있다.
2.
릭샤를 타고 집에 오면 콧구멍 속이 까맣다.
오토바이를 삼륜으로 개조하여 뒷좌석에 2명, 끼여 앉으면 3명까지 탈 수 있도록 한 교통수단이다.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고 도로 사정이 영 별로인 인도에서 릭샤는 저 련하면서도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필수 탈것이다.
릭샤는 창문으로 막혀 있지 않기 때문에, 양 옆으로 인도의 먼지 소용돌이가 내 기관지를 매 초마다 가격하는 느낌을 맛볼 수 있다. 릭샤를 탈 때는 마스크나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꼭 막아야 하는 이유다. 먼지로 뒤덮인 도로를 쌩쌩 달리다 보면 온몸에 먼지가 소복이 내려앉는다.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할 때 콧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쓱 씻어보면, 손가락이 까맣다. 인도와 먼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3.
설사 유발 음식이 왜인지 가장 맛있다.
인도에 가면 물을 조심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인도 생활이 조금 익숙해지고 마살라에 슬슬 맛들리기 시작하면, 길거리에 사 먹는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쩅쩅한 날 짤랑짤랑 종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사탕수수 손수레에서 갓 짜낸 사탕수수 주스를 마시거나, 간 얼음에 과일 맛의 형형색색 시럽을 부어 먹는다던가, 얇은 밀가루 공의 윗부분을 깨고 그 안에 향신료 물을 넣어 먹는 빠니 뿌리(pani puri)는 피곤한 하루의 한 줄기 도파민이 되어 준다.
하지만 인도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내 위장도 더 튼튼해지는 건 아니다. 이런 걸 먹고 나면 이틀 동안의 화장실에 살아야 한다. 그런데 맛있는 걸 어쩌겠는가.
4.
매달 수십 개의 생수 박스를 날라야 한다.
한국에서는 수돗물을 끓여 마시거나, 정수기를 설치하면 바로 식수를 받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수돗물의 석회 함량이 높아 절대 마실 수 없고, 정수기 역시 믿을 만한 정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수기는 설거지 용도로만 쓰고 모든 식수는 매달 크고 작은 생수통들을 주문해 마셨다.
5리터부터 200ml까지의 다양한 용량의 생수병들이 우리 집 앞으로 매달 배송되었고, 한 법 올 때마다 수십 개가 왔기 때문에 온 가족이 동원되어 그 박스들을 팬트리에 채워 넣어야 했다.
인도에서 가장 귀찮은 집안일은 물을 나르는 것이다. 좀 웃긴가?
5.
불법(?) 도축된 송아지 등짝을 받아본 일이 있다.
인도는 힌두교의 나라다. 물론 해외 식자재 마트에 가면 소고기를 팔지만, 그 종류가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양고기를 먹자니 양고기 특유의 향 때문에 요리가 제한적이다. 그래서 엄마는 어디서 갓 도축한 소고기를 싸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문을 했다.
배송 당일, 파란 봉투에 싸여 우리에게 온 소고기를 보고 우리는 일동 경악했다. 불법으로 도축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만큼 손질이 전혀 안 된 채로 온 것이다. 주방 카운터에 놓인 것은 고기라기보다는 살아있을 때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송아지의 오른쪽 등짝이었다.
그 커다란 고깃 덩이를 손질하며 엄마는 무섭다고 했다. 온 집안에 피비린내가 퍼졌다. 우리는 다시는 거기서 고기를 주문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