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남겨 준 반려작물
나는 백신 미접종자이다. 도서관 출입을 못하게 되면서 맞아야 겠단 결심이 섰었는데 같은 질환을 가진 어린 친구들이 사망하거나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맘을 접었다. 미접종자는 코로나감염자와 접촉했을 때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도 열흘간의 격리를 해야한다. 매우 매우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인 중 코로나 감염자가 생겼고 나는 격리에 들어갔다. 애초에 내가 조심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나름 신나고 슬기로운 격리생활의 기록
격리 통보를 받고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집순이에겐 밖을 나가는 것 자체가 귀찮음 + 피곤함 + 불안감 그래서 밀려오는 짜증 등이 짬뽕되어 이래저래 소모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국가에서 인정해준 합법적인 감금상태라니. (셀프감금상태에서는 집구석에서 하루종일 뭐하냐, 밖에좀 나가라 등등의 잔소리를 들어야 함)
한 일
매일 청소를 해서 집이 깨끗해졌다. 세탁기 안, 배수구, 베란다 바닥 청소 및 타일 곰팡이 물때 제거, 페인트와 바니쉬 칠하기 등 잔잔바리 청소말고 평소 하지 않고 미뤄논 집안일을 해치웠다.
올해가 다가도록 뒤죽박죽 쌓아둔 공과금 및 보험, 가계부, 주식 및 부동산, 건강기록부 등 21년의 기록사항을 깔끔하게 엑셀표로 만들었다.
안 입는옷들도 정리했다.
지원내역
시에서 보내준 구호물품은 꽤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오뚜기 밥, 사골국, 진라면, 짜빠게띠, 마스크, 여러종류의 소독제, 체온계 등
격리 위로금으로 돈도 준다고 한다. 돈으로 준다니 매우 위로가 되긴한데… 여러가지로 코로나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아 받아도 마음이 무겁다.(사실 아직 못받음. 주는거 맞나?)
정신건강 센터에서도 확인차 한번씩 연락이 왔다. 마음 상태는 어떤지 혹시 많이 우울하진 않은지 등의 생사확인 및 안부전화였는데 이대로 죽은 후 아무도 모르게 방치되진 않겠구나싶어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함께하라며 대파 모종+ 흙 + 부직포화분으로 구성된 반려작물 키트도 보내주었다.
덧,
음란마귀가 붙은 처자가 키운 파는 이런 모양으로 자란다.
새로 생긴 대파들이 못된모양? 으로 자라지 않게 경견한 마음으로 키워야겠다.
곧고 바르게 자라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