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도 정착기
가게 앞 빼곡히 아기자기한 화분들이 줄지어진 도래샘사랑방. 이곳이 자리 잡은 곳은 영도 안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 신선동이다.
도래샘사랑방은 공화순 선생님이 운영하는 마을 커뮤니티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글을 가르치고 문화 강좌를 열고 합창대화에 나가는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곳이다. 선생님은 오랫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운영했고 은퇴했다. 은퇴 후 자유로운 삶이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아무도 찾지 않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상실감이 두려웠다고 한다. 치열한 고민 끝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 그리고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후 영도에 혼자 남겨진 어르신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열었다.
고립된 노인은 쉽게 병이 든다. 병이 들면 돌봐줄 여력이 없는 자식들에 의해 요양원으로 옮겨진다. 옮겨지면 이내 사망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보살핌이 있었다면 그렇게 빨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을 것을 알기에 선생님은 그 모든 장면이 너무도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래도 요양원으로 옮겨지는 노인들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가족이 없는 노인들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사라져 갔다.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은 역사책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한다. 그 책 한 권이 허망하고 쓸쓸히 잊히지 않도록 누군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세상으로 끄집어내야만 했는데, 그것이 젊은이들은 다 빠져나가고 빈 집과 노인들만 남은 마을, 심한 경사로 교통마저 불편한 이곳 신선동에 도래샘 사랑방이 자리 잡은 이유이다. 스스로 쓸모없는 존재라 생각해 위축되어 있던 노인들도 이런 프로그램들을 통해 격려와 응원을 얻고 성취감을 가지면서 금세 생기를 가지고 달라진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공 선생님은 그 속에서 오히려 스스로의 쓸모를 찾게 되어 충만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의미 있고 좋은 일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사실 가장 궁금한 것은 운영기금이었다. 이런 시설들은 보통 지원금으로 굴러가니까, 동네마다 다 있는 경로당조차 그렇게 운영되니까, 얼마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가장 궁금해하던 나는 이내 부끄러워졌다.
이 사랑방은 사비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일도 돈을 받고 또는 돈을 받기 위해 운영되기 시작하면 어딘가 변질되고 부작용이 생겼다고 한다. 돈에는 대가를 치르어야 하기 때문이다. 도래샘사랑방의 의도를 훼손하고 싶지 않은 공 선생님은 조금씩 주변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여력이 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자유인으로서 자유롭게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사비로 사람들의 끼니를 챙기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꾸려가고 소풍도, 여행도 가는 게 가능한 일인가 놀라는 젊은이들에게 훗날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선 젊을 때! 꼭! 치열하게 일하고 많이 벌어놓아야 한다고 전했다. 수줍은 얼굴로 조근조근 말했지만 그 말의 무게가 단호하고 강렬했다.
병이 생기며 은퇴 아닌 은퇴를 한 후 남은 생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해 온 한 사람으로서 이 만남은 영도에서의 만남 중 가장 깊게 꽂힌 기억이 되었다.
덧, 도래샘을 방문한 후 시를 쓰는 주석과 싱어송 라이터 눈썹의 합작으로 귀여운 노래가 탄생했다.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은 주석님은 안타깝게도 할아버지가 되겠지만 아주 귀여운 할아버지가 될 것 같다.
나에게도 할머니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주 순한 얼굴을 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제목: 할머니가 될래요
작사: 주석, 눈썹
작곡:눈썹
코러스: 뭉
https://m.youtube.com/watch?si=OjkcUWaBG8-WlbQE&v=VNqaepLaaKw&feature=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