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스무 살이었다.
거울을 볼 틈도 없던 여름날, 역대급 더위라는데 오한이 끼쳐서 긴 팔 긴 바지 옷을 정리해 넣을 수가 없었다. 그 시기에 주변에서 살이 너무 빠진 거 같은데 괜찮냐는 질문이 많았다. 으레 하는 칭찬인 줄 알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엄마가 어디 아픈 건 아니냐고 묻자 뭔가 달라진 건가 했다. 샤워할 때 보니 허벅지에 살이 다 터있었다. 단기간에 살이 많이 빠지면 생길 수 있다는데, 정말 못생긴 다리였다. 나도 스무 살 여자애였다. 울 시간도 힘도 없었다. 기숙사 샤워실에서 잠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뜨고는 다시 오늘 외우고 자야 할 영어단어들을 떠올렸다.
서울 중심지로 학원을 옮겼다. 그 편이 조금 더 저렴했다. 기숙학원에서 학사로 짐을 옮기고 후다닥 공부에 집중했다. 묘하게 사람들이 쳐다보는 거 같아서 내가 자의식 과잉으로 정신병에 걸린 거 같았다. 학사에는 누군가 따라오는 것만 같았다. 따라오는 사람이 진짜로 있다는 걸 눈치채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서울 남자애들은 눈이 어떻게 된 건지 촌에서 온 핼쑥하게 마른 여자애를 좋아했다. 뭐지? 이유 없는 호의가 부담스러웠다. 물을 마시려고 하면 휴게실로 따라왔고, 복사기를 쓰려고 기다리면 같이 줄을 섰고,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학사로 따라왔다. 멀리 있는 딸을 걱정하게 만들 말 같은 건 해주고 싶지 않아서 부모님보다 오빠와 더 자주 전화하던 그 시기에, 오빠에게도 말 못 할 일이 생겨버렸다. 비웃거나, 실탄이 든 총을 들고 탈영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 같았다. 사실은 얼마 되지 않는 일병 월급을 쪼개어서 밥은 굶고 다니지 말라고 쥐어주는 오빠가 하고 싶어서 시켜놨더니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는 짓이냐고 사나운 목소리로 화낼까 봐 무서웠던 거 같다. 집이 그리 부유하지 않은 애라고 서슴없이 막말을 하던 기숙학원 선생님 이야기에 노발대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빼입고 데리러 갈 테니 그런 걸로 속상해하지 말라고 다그치던 목소리로 혼내면 어떡하나, 많이 무서웠던 거 같다.
못생겼다는 말이 너무 듣고 싶어져서 엄마에게 깍쟁이 서울 남정네들도 별거 없다고, 까무잡잡한 시골촌뜨기한테 대시를 한다며 농담을 빙자한 하소연을 했다. 나도 스무 살 청춘인데, 예쁘게 꾸미고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내 마음도 모르고 사투리 쓰는 저 파란 후드티 여자애 진짜 조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한다고 수군대는 철없는 놈들을 콱 쥐어박고 싶다고. 엄마는 와하하 웃으면서 초췌한 그 모습에 반하다니 그 애들 어찌 보면 진국이네 그랬다.
"엌ㅋㅋㅋㅋ 그러고 보니 그러네 ㅋㅋㅋㅋ 오빠가 들으면 웃지도 않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할 걸"
"흠~? 윤이가 너 엄청 자랑했다던데~ 선임들이 여동생 있냐고 물어서 예쁜 애 하나 있다고 했대~ 공부 잘해서 학교에서 1등 한다고 했더니 다들 그 뒤론 암 말 안 했대~"
충격이었다. 나는 예쁜 여자애였다. 오랜 병마와 입시 준비로 가득 찐 살에 묻혀서 내 부모님이 나를 낳으셨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두 분은 선남선녀시고, 오빠도 좁은 동네에서 이름 날린 미소년인데, 나만 까만 알감자인 것도 말이 안 됐다. 그렇다. 나는 예뻤다...
나도 외모에 관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충격이 컸다. 내가? 아니라고 하기엔 하루종일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남학생들을 몰고 다녔다. 선생님들도 내 이름을 아셨다. 도와주시길 바랐지만 도와준다 하는 것도 웃겼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데, 철없이 마음이 들떴다. 엄마아빠는 멀리서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고생하고 계신데, 내 마음은 하늘 위에 있었다. 죄책감과 설렘이 뒤죽박죽 되어 많은 시간을 날려먹었다. 선배들도 나에게 이런 경우에 대비할 조언은 해주지 않았다. 내가 한심해서 미칠 것 같았다. 수능은 코앞에 다가왔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나는 역류성식도염에 걸려 거식증 환자처럼 겍겍거렸다. 과민성대장염이 악화돼서 죽도 삼켜낼 수 없었다. 버썩 마른 손으로 약값을 세고 있었다. 내가 어리고 철없어서 엄마, 아빠가 고생이었다. 스스로가 역겨워서 토기가 밀려왔다. 아파서 공부가 힘들었고, 공부가 힘들어서 아팠다. 수능 성적은 솔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