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아빠 탓도 아님.
몸이 너무 좋지 않아서 점심시간에 집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토기가 밀려오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는 엄마, 아빠가 모처럼 집에 있으셨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웬만하면 집에 있는 비상약으로 버티자주의인 우리 집에서 내가 병원에 가야 할 거 같다는 말을 꺼냈었다. 약을 먹으면 나을 거 같았지만, 그냥 그날만큼은 병원에 꼭 가고 싶었다. 병원비는 비싸고, 우리 집은 사치를 부릴 형편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나는 작고 어린 중학생이었고 예민한 사춘기 여자애였다. 병원이 가고 싶었다. 남들 다 가는 병원에 나도 가고 싶었다. 난처해하는 부모님이 약을 먼저 먹어보자고 하셨지만, 병원 문턱에 발을 딛기만 해도 모든 증상이 다 가라앉을 거 같아서 병원에 나 혼자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끝끝내 부모님은 카드를 주지 않으셨고, 나는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병원비가 얼마인지도 모를 정도로 병원을 자주 가지 않던 나는 병원비가 한 십만 원 정도 하는 걸까 싶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창문으로 아빠가 부르는 게 들렸지만 무시하고 울면서 학교로 돌아왔다. 이를 악물고 오기로 버텨서 학원까지 다 마치고 집으로 가서 쓰러지듯이 잠을 잤다. 아마 그 당시에 소아과에서 감기몸살 진단과 약 처방은 우리 동네에서 7000원 정도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 가난이 부끄럽고 싫었다. 나도 하고 싶은 거 많고, 갖고 싶은 거 많은 청춘이었다.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게 싫었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내가 왜 손해 보고 살아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탓하기는 싫었다. 나 공부시키겠다고 쉴 새 없이 일하는 부모님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불쌍한 그들에게 내가 무슨 원망을 하랴. 나를 한계까지 내모는 상황은 못 견디게 싫었지만, 다행히 그들이 싫지는 않았다. 그저 안타까웠다.
씩씩거리며 분에 못이겨 울던 중학생 여자애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대학에 진학하여 짠순이 대학생이 되었다.
나는 부러우면 부럽다 말하고 돈이 없으면 돈이 없다 말했다. 처음엔 그 말 한 마디가 창피하고 어려워서 얼굴이 시뻘개지고 밤잠 설치기도 했다. 하지만 가난은 내 선택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라 그냥 내 얼굴이 내 얼굴인 것처럼 당연하게 가지고 태어난 나의 일부분이었다. 떼어낼 수도 없는 내 숙명이었다. 오래 걸렸지만, 나만 돈이 없는 것도 아니며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멋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내 가난을 극복할 거다. 극복하고 있다. 열심히 하면, 꾸준히 하면, 세상은 반드시 나에게 기회를 준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눈을 기르며 기다리면 된다. 내가 똥이면 똥파리가 꼬일 테고, 내가 꽃이라면 나비가 꼬일 것이다. 내 주변엔 나비가 많다. 따라서 나는 꽃이다. 나는 진짜 개멋진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