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코비 & 지아나 브라이언트를 기리며
미국 현지 시간으로 2월 24일은 LA 스테이플스 센터에서 코비와 지아나의 합동 추모식이 있는 날이다. (2번은 지아나의 백넘버였고, 24번은 코비의 백넘버였다.) 그 행사에 맞춰 코비를 추모하고자 이 글을 쓴다.
어떤 꿈은 때때로 실제로는 이루기 힘든 성질을 가진 것일지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그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우상을 만나는 상상이라던가..) 그러나 얼마 전 내 꿈 중 하나는 이제 더이상 이루고 싶어도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 전날 경기에서 르브론이 코비를 제치고 NBA 역대 누적 득점 3위에 올랐기 때문에 아침 5시 반에 와있는 친구의 ‘코비 ㅠㅠ’ 라는 카톡은 당연히 누적 득점 기록과 관련된 카톡인줄로만 알고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 중에 힘겹게 ‘아 르브론? ㅋㅋ’ 라고 답장을 겨우 하고선 다시 잠들었었다.
10시쯤 다시 일어나 겨우 정신을 차릴 때쯤 쌓여있는 카톡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하지만 확인은 하지 않고) 습관처럼 농구 커뮤니티에 들어간 순간 나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한 나 스스로를 이해시켜야만 했다. 아침 6시에 온 친구의 카톡을 포함해 쌓여있던 카톡은 내가 코비 팬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지인들이 나에게 보낸 것들이었다.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불과 얼마 전 1월 23일에는 농구 커뮤니티에서 코비의 2006년 1월 23일 81득점 경기의 14주년을 기념하는 글들이 올라왔었다. 또 불과 그 며칠 후에는 르브론이 코비의 누적 득점 3위 기록을 넘어섰다면서 코비의 이름이 다시 한번 회자되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더 현실감이 없었다.
코트 안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코비를 추모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서, 믿기지 않아서 슬프지 않았다. 그리곤 친구와의 약속이 있어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사람들이 올린 코비를 추모하는.. 혹은 추억하는 글들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그날 있던 NBA 경기에서 모든 팀이 8초, 24초 바이얼레이션을 통해 추모한 것, 트레이 영과 데빈 부커가 각각 24개 야투를 시도하고 합쳐서 24개 야투 성공, 득점 합계 81점이 된 우연, 어빙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기에 급작스럽게 불참한 점, 코비를 우상으로 밝혔던 야니스가 SNS 계정을 정지한 소식, '연금술사'의 저자로 유명한 파울로 코엘루가 코비와 함께 동화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으나 그를 추모하며 초안을 파기했다는 소식 등등
그 중에서도 참 기억에 남는 건 네명의 딸 중 코비와 함께 운명을 달리한 둘째 딸 지아나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나를 포함한 NBA 팬들은 코비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 섞인 상상을 하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미 키멜 라이브' 토크쇼에 출연한 코비가 풀어놨던 에피소드는 아주 짧았지만 그런 생각을 단숨에 깰만큼 강렬했고, 그래서 더 슬펐다.
실제로 지아나는 코비의 재능을 물려 받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제는 코비의 딸을 향한 환한 웃음도, 지아나가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가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지아나와 관련된 부분을 쓰는 지금이 제일 괴롭다.)
필자는 고민 없이, 낙천적인 삶의 태도를 지녔다. 원피스에 나오는 아오키지의 '한껏 해이해진 정의'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참 희한한게 코비의 플레이 스타일이며 삶과 농구에 대한 치열한 태도는 사실 나의 그것과는 정 반대의 대척점에 있었다. 사실 나는 오히려 존 스탁턴, 제이슨 키드, 스티브 내쉬, 크리스 폴 등과 같은 S급 포인트 가드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더 선호한다. 이런 내가 정 반대의 플레이 스타일의 코비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봐도 아이러니한데 어쩌면 오히려 나와 더 반대됐기 때문에 더 그에게 매료되고 존경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비의 별명인 블랙 맘바(Black Mamba)에서 따온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로 일컬어지는 지독할 정도의 극기(克己), 워크에틱(work-ethic), 삶과 농구에 대해 보여준 태도와 열정이 내게 코비를 단순한 스포츠 스타 이상으로 존경심,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내가 존경했던 남자 코비와 그의 딸 지아나
둘 모두 그곳에서 편히 쉬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