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여성적인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여성의 혁명

by 환경인문학수첩

1789년, 프랑스는 격변을 맞이한다.


파리에서는 혁명의 조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었다. 7년 전쟁(1756-1763)에서 패배한 후,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전쟁 손실을 메우기 위해 세금을 걷으려 하고, 이를 위해 삼부회(États généraux)에서 프랑스의 세 계급(귀족, 성직자, 평민)의 대표들을 소집한다. 그러나, 수면 아래서 들끓고 있던 불평등이 계급 회의에서 표면화되며, 평민들은 삼부회를 떠나 자신들만의 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를 선언한다. 바로 그 유명한 '테니스 코트 선언'(Jeu de Paume Oath)이다. 국민의회를 조직한 평민들은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Emmanuel Joseph Sieyès)가 '제3계급'이라고 부른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프랑스혁명

그 이후 1년 간 프랑스 사회는 마치 모든 것이 변할 것처럼 보였다. 국민의회가 조직된 후, 제3계급은 절대왕정의 상징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무기고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과거 루이 14세가 정치적 적들을 가두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사용했던 바스티유 감옥은 이제 혁명의 상징으로 바뀐다.


같은 해 10월, 루이 16세의 궁전이 있는 베르사유에서는 빵의 가격에 격분한 여성들이 행진을 벌인다. '10월 행진'으로 알려진 이 시위는 정치적 개혁을 요구하며 베르사유 궁전까지 행진해 국왕을 위협한 사건이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물러난 지 50년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정치적 변화를 이끄는 듯 보였다.


그러나, 상황은 여성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10월 행진에서 여성들이 프랑스혁명에 중추적 역할을 했음에도, 혁명의 결과는 여성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혁명이 잦아들고 난 후에 쓰인 '나폴레옹 법전'에서 여성들의 정치적, 사회적 권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혁명 중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작성한 여성 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는 '반혁명적'이라는 죄목으로 막시밀리안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어떻게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프랑스혁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프랑스혁명의 사상가들에게 '여성'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차이였을까, 아니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타도의 대상이었을까?


자연은 여성적인가?


우리는 종종 자연에 여성성을 부여하곤 한다. '어머니 자연'(Mother Nature)이라는 표현은 서구 문화권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개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이아는 제우스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 신들의 기원이 되는 태초의 어머니로, 대지 그 자체를 의인화한 존재였다. 곡식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 봄과 씨앗의 여신 페르세포네(Persephone) 역시 모두 여성이다.

곡식과 수확의 여신 데메테르


중세 시대에는 라틴어 'Natura'가 여성 명사였기 때문에 자연을 여성으로 의인화하는 전통이 더욱 굳어졌다. 12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드 릴(Alain de Lille)은 자연을 "창조의 여사제"로 묘사했고, 이런 전통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까지 이어졌다. 17세기 과학혁명 시기에는 프란시스 베이컨과 같은 철학자들이 자연을 "탐구하고 정복해야 할 여성"으로 비유하기도 했다. 즉, 자연을 여성화하는 것은 단순히 낭만적인 표현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형성된 서구 문화의 사고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자연을 여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만을 가질까? 현대에는 '어머니 자연'이 보호하고 양육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역사적으로 이 은유는 종종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자연이 여성적이라는 생각은 역으로 여성이 자연에 가깝다는, 즉 문명과 이성으로부터 멀다는 편견을 낳았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 당시의 '여성'


프랑스혁명 이전의 철학자들 역시 자연이 여성적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와는 달리, 이들은 자연과 여성을 연관 지음으로써 여성을 찬양하기보단 억압하고자 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의 대표 저서인 <백과전서>를 공동 편찬한 드니 디드로(Deni Diderot)가 대표적이다. 디드로는 여성이 자연에 국한된 존재이기에 문명을 받아들인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믿었다. 그의 저서 <여성에 대하여>(Sur les Femmes)에서 그는 여성이 오직 신체적이고 생물학적인 성별에 의해 정의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이 '끔찍한 경련을 겪는 장기를 지니고 있기에 그에 의해 지배받고 온갖 환상에 시달린다'라고 적는다. 그리하여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더 감정적이며, 그렇기에 이성적인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21세기의 우리는 디드로의 주장에 어폐가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여성은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다. 다시 말해, 여성은 감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이성적인, 혹은 때에 따라 다른 면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과 다르지 않다. 디드로의 주장의 가장 큰 허점은 여성과 남성에게 다른 잣대를 들이민다는 것이다. 남성 역시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디드로는 이를 남성의 '기관' 혹은 다른 생물학적 요인과 연결 짓지 않는다. 즉, 디드로는 오직 여성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이 그들의 '자연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남성들에게 디드로의 주장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여성은 그들에게 스스로 고유한 존재가 아닌, '남성보다 모자란 인간'일뿐이었다. 디드로는 여성들이 '성찰과 원칙이 부족'하기 때문에 문명의 발달과 발전된 도덕 원칙의 수혜를 볼 수 없다고 믿었다. 디드로가 편찬한 <백과전서>의 '남성'(man) 항목을 보면 '인류'(humankind)라고 정의된 반면, '여성'(woman)의 항목은 '여성적인 인간'(female man)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렇기에, 디드로에게 '모자란 인간'이었던 여성들이 남성의 감독을 받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이 교육도 받지 못한 것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히 불공평한 비교였다. 그러나 '지성'의 유무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계몽주의 철학자들에게 이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드니 디데로


루소와 여성 불평등


여기서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랑스혁명 후반기의 정신적 지주, 장 자크 루소이다. 인간 불평등의 철학자인 루소라면 여성 불평등에 대해서도 혁명적인 결론을 내렸을까?


놀랍게도, 루소 역시 여성 차별의 문제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에밀>에서 루소는 이렇게 말한다.


"남성과 여성은, 그 성질과 기질에서 모두, 동등하지 않고 동등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 같은 교육을 받아서도 안 된다."

장 자크 루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인간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인간 사회의 불평등이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인 문명의 폐해라고 주장하며, 이를 바로잡을 공화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런데도,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결론을 내세운 것이다.


루소가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연이 '여성적'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당시 철학자들은 '문명화된 인간'을 남성에 가깝다고 여겼고, 여성은 자연 상태의 '야만인'에 가깝다고 여겼다. 특히 루소는 '문명'을 남성적인 미덕이라고 이야기하며, 여성성은 그로부터 남성을 현혹한다고 언급한다.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자연상태의 고결한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유약하고, 소심하며, 비굴해지고,' 연약하고 '여성적인' (effeminate) 삶을 살게 된다고 말한다. 즉, 루소의 인간 불평등에서의 '인간'은 철저히 남성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근대 맨스플레이닝의 탄생


이런 생각은 루소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18세기 유럽 남성 사회에는 이런 풍조의 영향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교를 하는 '품행 지침서'(Conduct Books)의 장르가 유행하기도 했다. 이 책들은 이상적인 여성의 의무를 나열하면서 어떻게 좋은 부인과 어머니가 될 수 있는지 '맨스플레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임스 포다이스(James Fordyce)의 책 《젊은 여성들에게 주는 설교》(Sermons to Young Women)가 그 대표적인 예다.


포다이스는 책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여성의 자연적인 의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온유함'이야말로 '여성의 가장 적절한 성취이자 우수한 미덕'이었다. 그래서 '더 나은 여성'은 '고난을 보거나 듣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시기의 작가 존 그레고리 역시 비슷한 내용의 품행 지침서를 내놓았다. 그의 저서 《아버지가 딸들에게 남기는 유산》에서는 여성은 '자연적으로 순종적'이며, 남성의 '눈에 존중받고 상냥하게 보일 수 있는 미덕과 성취'를 가꾸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들에 의하면, 문명화된 남성은 이런 자연적인 충동과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여성은 자연적 충동에 얽매인 존재였다. 남성은 자연에 국한되지 않지만, 여성은 그러하다는 이율배반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포다이스와 그레고리의 품행 지침서는 18세기 서유럽 국가들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와 같은 여성에 대한 생각은 프랑스혁명의 논의장에서도 여전히 이어져, 혁명 정부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제임스 포다이스


오늘날은 어떨까? 기후위기 담론에서 여성은 어떻게 재현되는가? 환경운동에서 여성은 여전히 '자연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생태여성주의(Ecofeminism) 학자인 발 플럼우드(Val Plumwood)는 1993년 저서 《Feminism and the Mastery of Nature》에서 이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플럼우드는 여성과 자연을 동일시하는 것이 때로는 여성 해방이 아닌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1970년대 초기 생태여성주의 운동의 일부는 '여성은 본질적으로 자연을 더 잘 이해한다'는 본질주의적 주장을 펼쳤고, 이는 여성을 다시 돌봄 노동의 영역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구체적인 사례도 존재한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발표된 유엔여성기구(UN Women)의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 적응 프로젝트에서 여성들은 주로 '지역사회 돌봄자'나 '전통 지식의 보유자'로 위치 지어졌고,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을 '자연과 가까운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정치적 목소리를 약화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기후정의 연구자인 크리스틴 맥그레고르(Christine MacGregor)는 2020년 논문 "Gender and Climate Change"에서 개발도상국의 기후 적응 프로그램을 분석했다. 그 결과 많은 프로그램들이 여성을 '취약한 피해자'이자 '자연스러운 돌봄 제공자'로 프레임화하면서, 여성들에게 추가적인 무급 노동(물 관리, 가정 에너지 절약, 가족 건강 돌봄)을 부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18세기 품행 지침서가 여성에게 '자연스러운 의무'를 부과했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한국의 사례도 있다. 환경부가 2019년 발표한 '1회용품 줄이기 캠페인'의 홍보 영상을 보면, 주부와 어머니가 주요 타깃으로 등장한다. 분리수거를 하고, 장바구니를 들고,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을 하는 주체는 대부분 여성으로 재현되었다. 반면 기업의 플라스틱 생산이나 정부의 환경 정책 결정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런 논리는 18세기 품행 지침서와 놀랍도록 닮아있다. 여성을 자연과 연결 짓는 것이 항상 여성을 억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논리가 여성을 다시 '돌봄'과 '희생'의 역할로 제한할 때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책임은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에게 있다. 여성을 자연의 수호자로 낭만화하는 순간, 우리는 18세기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이러한 18세기의 여성상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여성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영국 출생의 작가로, 소설과 역사책을 비롯한 다양한 저작 활동을 펼치며 당대 여성들 중에서 드물게 왕성한 출판 활동을 했다. 그는 《프랑켄슈타인》으로 유명한 작가 메리 셸리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프랑스혁명이 테니스 코트 선언과 함께 시작된 후,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의 상황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1790년, 그는 《인간의 권리 옹호》(Vindication of the Rights of Men)라는 책을 출판한다. 이 책에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인간 사회의 진보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불평등에 기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비슷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루소와 달리, 그는 프랑스혁명에서 여성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에 불만을 가졌다.


메리 울스턴크래프


그렇게 1792년, 울스턴크래프트는 인생의 역작 《여성의 권리 옹호》(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를 저술한다. 이 책은 앞서 출간된 《인간의 권리 옹호》와 함께 울스턴크래프트의 '두 번째 옹호'로 불리기도 한다.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


이 책에서 울스턴크래프트는 "성별이 없는 영혼"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영혼에 성별이 없다니, 무슨 뜻일까? 당시 울스턴크래프트를 포함한 많은 철학자들에게 '영혼'은 '자연'과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동물과 식물은 물리적인 존재일지언정, 인간과 같은 영혼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즉, 울스턴크래프트에게 '영혼'은 인간을 자연과 구분 짓는 결정적인 요소였다.


그렇다면 영혼에 성별이 없다는 것은, 성별 간의 도덕적 불평등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연적인 성별은 존재한다고 보았다. 여성과 남성 간의 신체 구조 차이, 힘, 평균적인 신체 능력의 차이 등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자연적인 성별에서 오는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윤리와 미덕 같은 인간의 영혼 단계에서는 성별 구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평균적인 남성이 여성보다 힘이 세거나 체구가 크다고 해서 그것이 남성이 여성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던 남성 철학자들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었다. 디드로의 예에서 보았듯이, 18세기의 남성 철학자들은 여성의 '자연적' 모습을 근거로 여성이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설파했다. 여성의 힘이 약하고 감정적이라는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보다 도덕적으로 저열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논리가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남성 역시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지만, 남성 철학자들은 이를 남성의 도덕성에 연결시키지 않았다. 즉, 울스턴크래프트는 '성별 없는 영혼'을 말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당시 유럽 사회의 이중 잣대를 거부한 것이다.


"우리는... 결코 여성이 도덕적인 존재인지에 대해 의심의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는 여성이 남성과 야만인 사이의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렇게 영혼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자연스러운 개념이라는 인식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남성과 여성 간의 자연적인 차이가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없다면, 사회에 존재하는 성별 불평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울스턴크래프트의 대답은 간단했다. 성별 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다. 체격, 체력, 생식기관 등의 자연적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도덕적 우월성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성별 불평등은 결국 인간이 만든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그는 지적한다. 그리고 이 불평등은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인간에 의해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울스턴크래프트와 여성의 '혁명'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의 풍습(manners)에서의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교육의 평등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여성들에게 교육하는 방식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포다이스와 그레고리의 '품행 지침서'에서 볼 수 있듯, 당시 여성들은 '좋은 부인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들이 받는 교육은 가정적이거나 로맨틱한 감정과 풍습에 대한 것이 전부였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그러나 울스턴크래프트는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혼에는 성별이 없기 때문에, 영혼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교육에도 성별에 따른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여성들이 남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임을 역설했다.


여성의 "지성이 증명된다면... [남성이] 그들의 계발을 단순히 감각적인 만족을 위해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여성성'과 '남성성'은 얼마나 자연적인가? 또, 설령 자연적인 여성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을 정당화할 근거가 되는가? 울스턴크래프트는 '자연은 여성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에게 자연적이라는 것은 곧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생물학적 차이에 국한된 것이었다. 남성과 여성의 체격이나 신체 능력의 차이는 분명 자연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도덕적, 사회적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영혼'이라는 인간성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는 주장을 통해 당시 남성 중심 사회가 주장하던 성별의 본질적 차별을 무너뜨렸다. 그는 여성의 지성과 도덕성이 남성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육과 사회적 기회의 평등이 이뤄질 때 여성 또한 남성과 똑같이 인간적 존엄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주장은 여성들이 '자연적인 존재'로 규정된 것 자체가 남성 중심 사회의 산물임을 비판하며, 성별에 기반한 억압과 차별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단순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을 통해 당시 사회가 만들어낸 여성성과 남성성의 틀을 해체하고자 했다. 그에게 진정으로 자연스러운 것은, 모든 인간이 성별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의 철학은 성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 그리고 그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말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자, 자연은 과연 여성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하지 않다. 자연을 여성화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은유가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자연을 여성적이라고 말하면서, 동시에 여성을 자연에 가둬두었다. 남성은 문명과 이성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여성은 자연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자연과 여성의 연결은 여성 억압의 도구가 되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이 고리를 끊었다. 자연적 차이는 존재하지만, 그것이 도덕적 차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성도 남성도 모두 영혼을 가진 인간이며, 그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 따라서 교육받을 권리, 사회에 참여할 권리,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에도 성별이 없어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울스턴크래프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환경운동에서 여성을 '자연의 수호자'로 호명할 때, 우리는 과연 여성을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다시 한번 '돌봄'의 역할로 가두는가? 기후위기의 책임을 '어머니로서의 여성'에게 떠넘길 때, 우리는 18세기 품행 지침서의 논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다. 동시에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인간은 기후정의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울스턴크래프트가 여성을 자연에서 해방시켰듯이, 우리는 기후위기 담론을 성별 본질주의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자연은 여성적이지 않다.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이고, 인간은 성별과 무관하게 그저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