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볼테르와 리스본 대지진
1755년, 리스본은 폐허였다.
새벽 4시, 리스본의 많은 주민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에 리스본의 거리는 대지진의 전조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대항해 시대의 수혜를 누리고 있었던 리스본은 그 당시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으며, 유럽과 중동 전역에서 온 큰 상인들의 공동체가 모여 있었다. 특히, 상업의 급격한 발달로 인한 인구 증가에 맞추기 위해 얼기설기 지어 놓은 주택 구조가 큰 실책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리스본의 많은 주민들이 잔해에 깔리고 만다. 자신의 목숨보다 부를 더 귀중히 여긴 많은 상인들도 같은 운명을 만났다. 지진에 의해 촉발된 화재는 가장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밀접하게 지어진 나머지 건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리스본 대지진은 당시 유럽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파괴적인 자연재해였다. 그렇기에, 리스본 대지진은 단숨에 당시 종교인, 지식인들의 중심 화제로 등극했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리스본 대지진이 일어난 날은 카톨릭교가 신성시하는 만성절(All Saint's Day)에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리스본은 그 시대에 가장 경건한 기독교 도시 중 하나였기에, 가톨릭교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던 질문은 하나였다. "만약 우리가 믿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도록 놔둘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비관적인 답을 내놓은 사람은 단연 볼테르(Voltaire, 1694-1778)였다. 볼테르는 당시 문학, 연극, 역사부터 과학을 비롯한 분야까지 온갖 저술 활동을 이어나가며 신랄한 논객으로 저명한 인사였다. 이런 볼테르는 리스본 지진을 통해 확인한 "악"의 존재가 신에 대해 비관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믿었다.
대지진 직후 그는 한 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말해보아라, 리스본의 애석한 참사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가장 지혜로운 법칙으로 다스려지는 세계에서
이에 어떤 숨겨진 의의가 있을지
라이프니츠는 내게 이야기해 주지 못할 것이다.
지속되는 장애와 절대 끝나지 않는 불행 속에서
우리의 헛된 쾌락과 고통이 뒤섞인다."
볼테르가 시에서 언급하는 철학자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당시 기독교 낙관주의 철학의 대표 격인 인물이다.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 사상은 아무리 세상에 악이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격언으로 대표된다. 그러나, 볼테르는 신이 존재한다면 과연 리스본 대지진과 같이 아무런 긍정적인 의의를 찾아볼 수 없는 "순수 악"의 존재를 어떻게 허용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즉, 볼테르는 대지진 당시의 상황이 기독교 교리에서 말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신"의 부재를 증명한다고 보았다.
볼테르는 이때부터 낙관주의에 대한 불신을 품은 것이 분명하다. 4년 후, 그는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판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캉디드는 지독한 낙관주의자로, 긴 소설에 걸쳐 전쟁, 종교 박해, 자연재해 등의 사고를 당하면서도 "우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에서 살고 있다"는 말만 곱씹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볼테르 특유의 신랄한 유머 섞인 비판으로, 의도적으로 답답한 화자를 통해 당시 낙관주의 사상의 대표격인 라이프니츠의 격언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소설 "캉디드"의 마지막에서 볼테르의 대답을 엿볼 수 있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낙관주의자 판글로스는 비관주의자 마르틴을 만난 뒤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마르틴: "이것이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면, 다른 세계는 도대체 어떻단 말인가?"
(중략)
캉디드: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합니다."
악의 문제에 대한 볼테르의 결론은 놀랍게도 소박하다. 바로 악을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거대한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 우리의 앞에 놓인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한다. 계몽주의 이성의 수호자로서 당시 유럽의 각종 비이성적인 전통과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다니던 그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다.
"악"의 존재는 신을 부정하는가? 우리는 세상 속 악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볼테르의 악에 대한 태도는 소극적일지 모르나, 당시 모든 철학자가 볼테르와 같이 사유했던 것은 아니었다.
루소와 볼테르의 대립
1755년, 볼테르는 제네바의 한 별장에서 분노를 담은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한 제네바 출신의 음악가에 의해 출판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저자에게 보내려던 참이었다. 그 음악가는 전통적인 의미의 철학자도, 당시 학문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오래 머문 정계의 핵심 인사도 아니었지만, 그의 새로운 저서는 당시 유럽의 지식인들이 "진보"에 대해 생각하던 방식에 경종을 울렸다.
그렇다. 해당 저자는 우리에게는 이미 근대 불평등의 철학자이자 프랑스 혁명의 정신적 지주로 익숙한 장 자크 루소이다. 루소는 <기원론>에서, 어떻게 인간이 평등하던 자연 상태로부터 타락하여 현재의 불평등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기원론>의 루소에게 인간의 역사는 점진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닌, 지금까지 서서히 퇴보해 온 것이었다.
볼테르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신랄한 어록으로부터 알 수 있듯이, 볼테르는 이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성과 과학은 인간의 삶을 진보시켰으면 시켰지, 결코 근대인을 태초의 인간보다 못난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되었다. 볼테르는 이런 불만을 가지고 루소의 <기원론>에 대한 답장을 준비한다.
"우리를 고작 바보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이렇게 대단한 지성이 낭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볼테르,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고.
리스본 대지진의 볼테르
이것이 볼테르와 루소 사이의 갈등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불과 몇 달 뒤, 대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을 때 두 철학자는 다시 마찰을 빚었다. 이번에 논쟁의 불씨가 된 것은 리스본 대지진과 같은 참사가 보여주는 "악"의 단면에 대한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볼테르는 리스본 대지진과 같은 거대 악 앞에서 체념한다. "우리는 우리의 밭을 갈아야 한다"는 결론은 결국 불가항력의 존재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었으니, 그에 대항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본인에게 주어진 바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밭"을 가는 것뿐이라는 볼테르의 체념을 담은 문장이다. 당시 이성의 수호자로서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대표 격인 볼테르가 내린 결론 치고는 상당히 비관적인 셈이다.
자연재해는 과연 자연스러운가?
반면, 루소는 리스본 대지진의 참상 앞에서도 이와 전혀 다른 결론을 내세운다. 루소는 리스본의 참사가 결코 "절대 악", 혹은 "신의 부재" 따위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루소의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소의 "자연"에 대한 정의를 이해해야 한다. 루소에 의하면, 리스본 대지진은 분명 피할 수 없는 자연재해였지만, 그로부터 발생한 인명피해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았다. 자연재해가 자연스럽지 않다니, 대체 무슨 뜻일까?
루소는 볼테르의 <리스본 참사에 대한 시>를 보고 다음과 같이 답장을 적는다.
"얼마나 많은 안타까운 사람들이 그저 자신의 옷, 서류,
그리고 돈을 챙기려다 죽음을 맞았는가?"
루소, <볼테르에게 보내는 편지>
여기에서, 루소는 대지진의 인명피해 중 큰 부분이 지진 그 자체가 아닌, 지진에 대피하는 방식의 미숙함에서 온 것을 꼬집는다. 실제로 지진이 강타한 새벽, 리스본의 상인들은 헐레벌떡 집 밖으로 뛰쳐나온 뒤 다시 재산을 챙기기 위해 뒤늦게 무너지는 집 안으로 뛰어들곤 했다. 이는 물론 더 많은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루소는 이렇게 인간이 만든 가치인 "돈" 때문에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피해가 가중되는 것을 보며, 대지진에서 발생한 "악"의 근원을 자연이 아닌 인간에게서 찾았다.
"2만 개나 되는 가구를 6, 7층 높이로 쌓아놓은 것은 결코 자연이 아니었다.
만약 이 위대한 도시의 가구들이 서로 떨어진 채 더 넓게 퍼져 살았다면,
우리는 이 참사를 피해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루소, <볼테르에게 보내는 편지>
더 나아가, 루소는 리스본 지진이 도시정부에 책임이 있는 **인재(人災)**라고 주장한다. 리스본은 유럽에서 대항해시대의 수혜를 가장 처음으로 누린 도시 중 하나로, 그 경제적 발전이 급격했던 만큼 건물이나 도로 역시 큰 설계 없이 급조된 면이 있었다. 특히, 당시에도 많은 불편을 자아내고 있었던 리스본의 좁은 골목에 얼기설기 설계된 고층 건물들은 화재나 지진과 같은 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본이 대도시가 된 이후에는 이런 어설픈 시설들의 관리가 도시정부에 의해 이루어져야 했으나, 안전보다 이윤을 중요시하던 리스본의 관료들과 상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루소의 논리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2024년 여름, 서울 강남구 한복판에 쏟아진 폭우는 지하차도와 반지하 주택을 침수시켰다. 기상청은 이를 '기록적인 폭우'라고 불렀다. 자연재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리스본의 상인들이 재산을 챙기려다 목숨을 잃었듯이, 서울의 반지하 주민들은 값싼 주거비 때문에 침수 위험 지역에 살 수밖에 없었다. 리스본의 도시계획이 이윤을 우선시했듯이, 서울의 개발 역시 배수 시스템보다 건축 속도를 중시했다. 리스본 대지진으로부터 2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연재해'라는 이름으로 인재를 은폐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은 어떨까? 허리케인, 산불, 홍수를 우리는 '자연재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강도를 키운 것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다. 재난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가장 적게 배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방글라데시의 해수면 상승, 아프리카의 가뭄, 태평양 섬나라의 침수. 이것을 자연재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루소라면 분명히 아니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런 즉, 루소는 볼테르와 달리 리스본 지진에 대해 낙관한다. 리스본 지진은 결코 인간이 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악이 아닌, 인간에 의한 악이었을 뿐이다. 역설적으로, 평소 신랄한 언변과 재치로 유럽의 부조리를 희화화하던 볼테르가 비관론을 제시하고, 가장 염세적인 계몽주의 저작인 <기원론>을 작성한 루소가 낙관론을 제시한 셈이다.
지진 이후의 루소와 <사회계약론>
리스본 지진 이후, 루소의 철학은 하나의 전환을 경험했다. 볼테르와의 논쟁에서 루소는 그가 <기원론>에서 역설한 인간 문명의 폐해에 불구하고도 낙관하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만 함을 깨달은 듯하다. 루소에게 "악"은 볼테르의 "악"과 같이 불가항력의 존재가 아닌, 인간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런 루소의 변화는 그가 7년 뒤 저술한 <사회계약론>에 그대로 나타난다. "악"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반대로 그것이 언제든지 정치적 개혁, 혹은 혁명과 같은 인간 행동에 의해 바로잡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루소는 인간이 과거로부터 문명과 제도를 건설하는 법을 배우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능력이 인간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 인간이 악의 부정적 효과를 방지할 방법으로 사회계약을 주장한다. 사회계약의 기원을 신이나 자연법에서 찾은 토머스 홉스나 존 로크와 같은 선대의 철학자들과 달리, 루소의 사회계약은 그 정당성을 인간의 "일반의지"에서 찾았다. 루소에 의하면 "일반의지"는 공동선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집단적 힘으로, 입법권력은 항상 일반의지를 반영해야 하며, 일반의지를 벗어난 주권적 힘의 행사는 위법하다고 주장하였다.
무엇보다, 루소는 통치자가 일반의지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렸을 때, 기존의 정치 질서를 공화주의 혁명으로 전복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선언한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정부는 시민들의 일반의지의 산물이기에, 그를 위반하는 정부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이 만든 악은 인간이 바꿀 수 있다. 불평등이 자연적이지 않다면 혁명으로 바꿀 수 있듯이, 재난이 인재라면 정치로 해결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자연재해'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볼테르처럼 체념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이 만든 구조의 산물로 본다면, 루소처럼 낙관하며 싸울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의 분리수거가 아니라 구조의 변혁이다. 그리고 27년 뒤 1789년, 루소가 죽은 뒤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 원칙을 어긴 정부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난다.
참고문헌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1762, 돋을새김, 권혁 역.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1759, 열린책들, 이봉지 역.
Voltaire (1756) “On the Lisbon disaster; or an Examination of the Axiom”.
Wootton, D. (ed.) (2000) Voltaire. Candide, or Optimism. Indianapolis, IN: Hackett Publishing, pp. 95-108.
Paice, E. (2008) Wrath of God: The Great Lisbon Earthquake. London: Quer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