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소,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가?
1750년, 프랑스 사회는 엉망이었다.
바스쿠 다 가마(Vasco da Gama)가 포문을 연 16세기의 신항로 개척 이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들은 상업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와 달리, 프랑스의 경제는 아직 비교적 농업에 의존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프랑스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의 규모가 아닌 사회의 불평등에 있었다. 당시 프랑스 인구의 85퍼센트는 농민으로, 아직 산업화하지 않은 프랑스 경제의 한 주축을 담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특권과 자유는 상위 계층을 구성하는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치중되었다. 면세 특권을 가지고 있었던 성직자들, 그리고 지방 농촌에서 지주로서 기득권을 누리며 중앙집권화의 효율을 떨어뜨린 봉건 귀족들은 18세기 프랑스의 고질적인 문제로 등극한다.
당대의 사람들은 귀족과 평민 사이의 불평등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믿었다. 신이 정한 질서이며, 따라서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프랑스의 현실은 한 제네바 출신 시골뜨기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파리의 살롱에서 음악과 작곡을 즐기곤 했던 이 시골뜨기의 이름은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였다.
제네바 공화국에서 유년기를 보낸 루소는 프랑스에서 가정교사와 작곡가 등의 일을 하며 드니 디드로, 장 르 롱 달랑베르 등 추후에 '계몽주의 철학자'로 불리게 될 부류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서 입지를 쌓고 있었다. 이전까지 음악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던 루소는 1755년에 저술한 <인간 불평등 기원론>으로 본격적인 철학자로서의 사상을 펴기 시작한다.
루소가 판단하기에 프랑스의 문제는 인간 문명의 역사에서 기인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본래 디종 아카데미의 에세이 대회에 루소가 낸 원고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대회의 주제가 된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고, 자연법은 그것을 어떻게 허용하는가?"
"자연법"이라는 것은 자연 상태(인간 문명이 발달하기 이전 인간들의 상태)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원리로, 보편적으로 인간 사회에 적용되는 법칙을 의미한다.
루소에 의하면, 이 질문은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루소가 보기에 인간불평등은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를 정당화하는 '자연법' 같은 것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루소의 주장이었다.
여기서 루소가 말하는 '자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숲, 나무 따위의 환경을 일컫는 게 아니다. 루소의 자연상태는 문명이 생기기 전의,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상태의 인간을 가리켰다.
이런 루소의 자연 개념은 당시로서는 꽤나 혁명적이었다. 특히나, 루소의 자연상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없는 상태의 인간을 가정했다. 도덕도, 윤리도, 심지어는 신의 의도도 말이다.
루소의 시대 이전의 자연은 곧 신의 의도대로 흘러간다고 해석되었다. 대표적으로, 중세시대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를 비롯한 스콜라 학파는 자연의 모든 것에는 종교적인 목적이 있다고 믿었다. 음식은 먹기 위해 존재하고 강철은 도구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듯, 자연상태의 모든 것에는 신이 부여한 역할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스콜라 학파의 사상을 이어받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 사상을 바탕으로 계급의 존재를 정당화하였다. 왕은 왕으로, 귀족은 귀족으로 태어난 신의 의도가 있고, 평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그렇기에 자연적으로 그들과 불평등하다는 논리였다. 즉, 자연상태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개념은 중세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루소의 것과 가장 근접한 자연에 대한 해석은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를 비롯한 다른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것이다. 예컨대, 홉스는 자연법이 "인간이 스스로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이성으로 추론할 수 있는 법칙"이라고 설명했다. 홉스는 뒤이어 이런 자연법에 따라 어떻게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주권을 군주에게 넘겨야 하는지 그의 "리바이어던"에서 설명했다. 루소는 이런 자연법의 존재에 대해서는 홉스 같은 철학자들과 동의하였으나, 불평등에 있어서 그의 역할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루소가 보기에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은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루소는 두 가지 불평등을 언급한다. 자연적 불평등과 도덕적 불평등이 그것이다. 자연적 불평등은 자연이 부여한 물리적인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어떤 도덕적 가치도 지니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몸집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자연적으로 평등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몸집이 작다고 사람을 차별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이런 사람들 사이의 신장이나 신체 능력의 차이가 자연적 불평등의 예시이다.
루소는 이런 자연적 불평등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의 기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자연적 불평등은 부조리가 아닌 말 그대로 '차이'이기 때문이다. 반면, 도덕적 불평등은 자연 상태 이후 인간이 문명을 만들면서 생겨난 것으로, 부자와 빈자 간의 불평등, 계급 간의 불평등이 그 예시이다. 루소는 이렇게 사회에 존재하는 부조리는 어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정당화된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불평등에 기인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보자. 루소의 구분을 오늘날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2023년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상위 1퍼센트 부유층이 배출하는 탄소는 하위 50퍼센트가 배출하는 양의 두 배다. 그런데도 기후위기의 피해는 방글라데시의 농민, 태평양 섬나라 주민,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에게 먼저 찾아온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탄소배출 능력 차이는 자연적 차이인가, 아니면 역사가 만들어낸 도덕적 차이인가? 역사적으로 더 많이 배출한 국가가 더 적은 책임을 지는 현실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기후위기 피해가 가장 적게 배출한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루소라면 아마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 불평등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도덕적 불평등이며, 따라서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루소의 자연 상태에는 어떠한 사회적, 도덕적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루소는 이런 상태의 "고결한 야인"(Noble Savage)을 불평등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간 문명을 만든 "주변의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오' 하며 주장한 첫 번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즉, 루소가 보기에 프랑스 사회에 만연했던 계급 간의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는 어떤 자연의 질서에 의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었다.
루소는 묻는다.
누가 처음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라 말했는가?
우리 역시 물을 수 있다. 누가 처음 대기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치고 '나는 무한정 탄소를 배출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는가? 누가 화석연료 경제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 피해를 가장 약한 이들에게 떠넘기기로 결정했는가?
기후위기는 자연재해가 아니다. 그것은 루소가 말한 '도덕적 불평등'의 21세기 버전이다. 석유 기업 CEO의 전용기 한 번 비행이 일반 가정의 일 년치 탄소배출을 초과한다는 사실이 과연 자연스러운가?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는 개인에게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것이 공정한가?
그렇다면, 불평등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평등한 자연상태라는 개념은 불평등에 시달리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우리는 불평등에 대해 비관해야 하는가, 낙관해야 하는가?
루소의 대답은 명확했다. 불평등이 자연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바꿀 수 있다. 신이 정한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구조라면, 인간이 다시 만들 수 있다. 이 혁명적 사상은 34년 후 프랑스혁명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구조의 산물이고, 따라서 인간이 바꿀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구조의 변혁이다.
루소가 18세기 프랑스의 계급 불평등에 도전했다면, 21세기 우리는 기후 불평등에 도전해야 한다. 어떻게 도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다음 장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편지에서, 루소와 자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한 철학자 볼테르 사이의 논쟁을 살펴보며 펼쳐진다.
참고 문헌:
Jean Jacques-Rousseau, “Discourse on the Origin of Inequality” (1754).
Jean Jacques-Rousseau, “Discourse on the Sciences and the Arts” (1750).
Cassirer, E. “The Question of Jean-Jacques Rousseau”, New Haven, CT: Yale University Press, (1989), pp. 35-128.
Isaiah Berlin, “Against the Current: Essays in the History of Idea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9).
Jonathan Israel, Radical Enlightenment: Philosophy and the Making of Modernity 1650-1750, Oxford University Press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