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를 위한 청년 인문학 편지
온 세상이 난리다.
관악구의 내 작은 단칸방 바깥에는 기록적인 폭염이 내리쬔다. 단칸방의 절반을 차지한 침대 머리맡에 둔 핸드폰에서는 재난경보문자가 계속 윙윙댄다.
평생 이어질 듯한 이 지옥 같은 땡볕은 한껏 내리쬐다 가도, 어느 날에는 거짓말 같이 비로 변하기 시작해 어느덧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폭우가 된다. 싱가포르에 사는 친구는 이를 '스콜'이라 불렀다. 그쪽에서는 이런 일이 꽤나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몰라도, 서울은 이런 날씨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서울에게 스콜은 자연재해다. 스콜이 한 번 오면, 내 단칸방이 있는 관악구 같은 지역은 홍수가 난 것처럼 침수되고 만다. 얼마 전에는 비로 인해 사람이 죽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책임을 지는 이는 없다.
과학자들은 이야기한다. 기후위기를 되돌리기 위한 1.5°C 문턱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이다. 유엔에서 주관하는 과학자들의 모임인 IPCC가 보고서를 발표하면 모두가 일시적으로 주목한다. COP28과 같이 UN이 주최하는 기후회의가 열릴 때에는, 세계 정상들이 국가 대사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하지만 그뿐이다. 과학자도, 국가 원수도 아닌 우리가 개인으로서 기후위기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평소에 얼마나 느끼는가?
당장 나부터 그렇다. 에어컨을 틀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내 단칸방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종이 빨대가 꽂힌 텀블러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며 더위를 식히는 것이 최소한의 낙이다. 플라스틱을 쓰지 않을 것, 분리수거를 할 것 등의 규칙을 지키려고 하면서도,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통이 결국 뒤섞여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낀다. 어디에서 들은 것 같다. 억만장자가 타는 전용기의 비행 단 한 번이, 한 가정이 평생 분리수거로 줄일 수 있는 탄소배출량을 아득히 상회한다고. 떠나가는 쓰레기차를 본 뒤 잠시 생각에 빠진 채 자취방으로 올라온다.
그런 와중 내 앞에 놓인 종이빨대를 본다. 내 의지로 가져온 빨대는 아니다. 그저 카페에 텀블러를 맡기니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함께 꽂혀서 딸려온 불청객일 뿐. 잠깐 다녀온 사이 종이 빨대는 눅눅해져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어이가 없다. 빨대의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대체 빨대이긴 한 건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입을 대고 마실 수 있는데 왜 빨대를 꽂아서 주는가? 약간 짜증이 섞인 손짓으로 눅눅한 종이빨대, 아니 빨대 종이를 뽑아내다 버린다.
나는 한국에서 소위 말하는 '문과'다.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온종일 문학가와 철학자들의 문헌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내 일이다. 셰익스피어와 오웰을 읽고, 소크라테스와 칸트와 함께 사유하며 과거에 대해 배우는 것은 재미있지만, 불타고 있는 바깥의 현실을 보면 이 모든 것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한 번쯤은 찾아온다. 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한국에서 인문학도는 종이빨대와 같은 존재다. 중요하지는 않지만 구색을 맞추기 위해 따라오는 것, 차디찬 취업시장에서 쉽게 뭉그러지고 형체를 잃는 것, 그리고 모두가 그 존재의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언가라는 뜻이다.
인문학을 공부해서는 기후 과학자도, 국가를 대표하는 기후 대사도 될 수 없다. 그런 일을 꿈꾼다면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을 배우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내가 과연 이 대위기의 시대에, 인간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을 하고 있어도 될까? 인문학은 기후위기 시대에 과연 쓸모없는 학문일까?
이 책은 위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는 않는다. 아마 대답을 기대하고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라면 이 책의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쯤 대답보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들을 가진 채 책장을 덮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저 들려줄 뿐이다. 자연에 대한 생각을 바탕으로 대담한 정치사상을 펼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동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자연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보여준다. 스스로 나름의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인문학을 통해 그 위기를 해결해 나갔는지 말이다.
루소는 불평등이 자연적이지 않기에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울스턴크래프트는 영혼에 성별이 없기에 여성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레오폴드는 자연에 대해 윤리적으로 사고해야 생태계가 존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모두 당대에는 쓸모없어 보이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들이 세상을 바꾸었다.
기후위기는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자들은 이미 답을 내놓았다. 문제는 인간이 그 답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이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무엇이 공정한가? 어떻게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은 모두 인문학의 질문이다.
아마 이 책이 출판된 뒤에도 눅눅한 종이 빨대는 쓸모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당신이라면 책장을 덮은 뒤 이 기후위기의 시대에 인문학이, 그리고 당신이 쓸모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갔으면 한다.
이 책이 당신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임정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