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광야의 철학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다. 아마 자연만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정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개념은 손에 꼽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자연은 공원이나 식물원과 같이 격리된 공간에 갇혀 있거나, 문명 바깥으로 한참 걸어 나가야 만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자연이라는 개념의 정의는 시대와 문화권마다 변화해 왔다. 그 중 근대 철학적 사고에 팽배한 자연에 대한 정의는 바로 "인간 문명이 아닌 것"으로써의 자연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개념이 바로 "광야"에 대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철학이다.
근대 이전의 기독교적 사고에서 광야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쓰이곤 했다. 1611년 저작된 킹 제임스 성경에서, 광야(Wilderness)는 넓고 황폐한, 인간의 생존에 적대적인 "황야"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된다. 광야는 그리스도가 40일 동안 사탄으로부터 고군분투했던 곳으로, 선량한 문명인들이 있어서는 안 될 곳이라는 것이 당시 기독교적 사고에서의 광야였다.
광야에 대한 이런 묘사는 초기 미국의 역사에서 많은 백인 정착민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플리머스 플랜테이션 식민지의 주지사였던 윌리엄 브래드퍼드(William Bradford)는 북미의 광야를 "야만인들의 땅"이라고 묘사했다.
청교도들이 특히 많이 넘어온 매사추세츠 식민지를 중심으로, 초기 미국인들은 그들의 종교적 임무가 광야와 그 안에 거주하는 "야인"과도 같은 원주민들을 문명화하는 데에 있다고 믿었다. 물론, 브래드퍼드가 "야인"이라고 간주한 원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말이다. 초기 근대 사회의 "광야"는 이처럼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이자 길들여야 할 대상이었다.
18세기 중반부터, 황야는 낭만적인 방향으로 전환을 겪는다. <왈든>(Walden)이라는 저서에서 정치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유명하게 "세계의 보존"이 곧 광야에 있다고 선언했다. 소로는 광야를 문명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장소로 정의하며 낭만화하게 된다. 즉, 소로의 광야는 도시 문명에 의해 타락한 개인의 정체성이 진정한 가치를 되찾고 발화할 수 있는 자연적인 장소였다. 소로에게 광야는 인간 문명의 폐해로부터 피난처 역할을 제공하는, 일종의 역사로부터의 도피처였다.
그런 즉 소로는 자신의 자연관을 실천하는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며칠 간 숲속에 들어가 살았으며, 현대 문명의 편리한 기술 대신 자연에서 직접 얻을 수 있는 물품들을 굳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연에서 산책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문명과 떨어진 광야를 마주한 인간만이 진정한 내면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음을 역설했다. 이런 행보 덕에 소로는 순식간에 유명해졌으며, 당시 상류층 지식인들 사이에서 소로의 사상은 유행처럼 번지게 된다. 인터넷도, 소셜 미디어도 없는 세상에서, 소로는 나름의 인플루언서였던 셈이다.
이런 소로의 자연관은 이후 그가 초월주의 움직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게 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초월주의는 미국에서 유행한 철학적, 문학적 움직임으로,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선한 본성을 되찾고 도시 문명의 타락에 대해 성찰할 것을 강조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소로와 비슷한 시기의 정치철학자 랄프 월도 에머슨이 있다. 에머슨은 그의 에세이 <자연>(Nature)을 출판하며, 광야야말로 인류가 신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곳임을 주장한다. 에머슨에게 자연은 개인들이 영적인 성찰을 통해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정신적인 공간이었다. 그렇게 초월주의가 휩쓸고 지나간 미국 사회에게 광야는 더 이상 두렵고 낯선 공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광야는 이때부터 미국인으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가장 확고히 해주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며, 이후 19세기 후반의 환경보전 운동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광야의 어두운 이면
그러나 소로의 철학은 양면이 존재한다. 소로의 광야가 마냥 낭만적인 면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인들이 정착하기 전 몇천 년 동안 북미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에게는, 자연은 소로가 말한 것처럼 텅 빈 "광야"가 아닌 보금자리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무엇보다, 소로가 낭만화한 "광야"는 결코 순결한 땅이 아니었다. 1830년, 미국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미국 영토에서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인디언 이주법>을 승인하게 된다. 이에 따라 체로키(Cherokee), 세미놀(Seminole) 부족들을 비롯한 원주민들은 강제로 본인들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고된 행군을 시작하게 된다. 애팔래치아산맥에서 미시시피강 너머까지 이어지는 이 긴 행군은 이후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이라고 불리며, 15,000명이 넘는 원주민들이 그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소로가 말하는 "광야"는 이런 피눈물의 역사를 통해 완성되었다.
오늘날의 기후위기 담론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때묻지 않은 자연'을 보호하자는 구호 아래, 정작 그 땅에서 수백 년간 살아온 원주민 공동체는 보이지 않는다. 2019년 아마존 산불 당시, 서구 언론은 '지구의 허파'가 불타고 있다며 비탄했지만, 정작 아마존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의 토지권과 자치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환경학자 로빈 월 키머러(Robin Wall Kimmerer)는 그의 저서 《Braiding Sweetgrass》(2013)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서구의 환경보호 운동은 종종 '순수한 자연'이라는 개념을 만들면서, 그 땅에서 지속가능하게 살아온 원주민들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말이다. 소로의 광야 개념이 원주민을 지운 것처럼, 현대의 기후위기 담론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소로에게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눈물의 길에서 떠나간 목숨의 책임은 소로보다는 앤드류 잭슨 대통령과 같이 '인디언 이주법'을 승인한 실무자들에게 있을 것이다.
애초에 철학이 그렇다. 세계 1차 대전에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앗아간 목숨에 대한 책임을 헤겔에게 물을 수 있을까? 진화론을 왜곡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 제국주의로 인한 죽음들에 다윈의 책임은 얼마나 될까? 철학과 현실 정치의 괴리는 생각보다 크기에, 철학자들에게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문제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은 과한 처사일지 모른다.
그러나, 철학을 읽는 독자로서 명심해야 할 것은 모든 역사적인 학살과 참사 뒤에는 항상 왜곡된 철학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철학의 힘은 숨겨져 있기에 무시무시하다. 소로의 "광야"와 "산책"에 관련된 철학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을 바로 떠올리기 어렵듯, 겉보기에는 좋은 철학적 사상도 뒤에 무엇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철학을 읽는 독자라면 어떤 개념이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비판적인 사고를 거쳐 명과 암, 공과 과를 가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소로의 "자연" 개념도 명암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듯 말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때묻지 않은 자연'이라는 낭만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자연은 텅 빈 광야가 아니다. 자연은 누군가의 집이다.
참고문헌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1854, 은행나무, 강승영 역.
Kimmerer, R.W. Braiding Sweetgrass: Indigenous Wisdom, Scientific Knowledge, and the Teachings of Plants. Minneapolis: Milkweed Editions,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