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야만적인가?

스탠딩베어와 원주민 문제

by 환경인문학수첩

자연은 우리의 생각보다 정치적이다. 보통 우리는 무언가 당연하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한다. 예컨대 숲속에서 숨 쉬며 자연식을 섭취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도시 문명에서 GMO(유전자 변형 생물)가 들어간 가공식품을 섭취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그렇게 전자의 삶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후자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이렇듯 자연은 숲, 나무, 들판과 같은 물질이기 이전에 개념으로서 우리의 생각에 녹아 들어있다.


그러나 자연이 항상 긍정적이고 당연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정치적인 담론에서 자연은 간혹 부정적인 의미를 띄곤 한다. 정치적 진보를 이야기하곤 할 때, 인간이 만든 "문명"과 대비된 "자연"은 "야만"으로 변모한다. 문명은 신사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가는 지성인의 영역이지만, 자연 상태의 야만은 인간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추한 무언가가 되어있다. 그렇게, 우리는 비신사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를 두고 "야만"스럽고 "문명인"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연은 과연 야만적인가? 자연을 야만적으로, 문명을 신사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 100년 전, 이 시선의 반대편에 서 "야만"적인 자연의 편을 든 이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루터 스탠딩 베어다.


19세기 미국 사회와 아메리카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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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스탠딩 베어는 19세기 후반 미국 오갈라 라코타 족의 족장으로, 작가이자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그가 살던 시기 미국은 <홈스테드 법>(Homestead Act)과 같은 정부 지원 법안을 통해 서해안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e)으로 강제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유는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미국 서부의 땅이 원주민들이 소위 말하는 "야만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도록 두기에는 너무 귀중하다는 것이었다. 그 야만적인 방식은 물론, 주변 환경과 공존하며 자연을 두려워하고 경배하는 원주민들의 문화를 일컬었다. 그렇게, 1876년부터 제정된 인디언 보호구역 법(Indian Reserve Act)에 따라, 원주민들은 그들이 몇 세기 동안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수용소와도 같은 보호구역으로 이주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thomas_moore_conversion _cms.jpg 원주민 아동들은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우고자 '특수 학교'에 보내졌다.


원주민들에 대한 폭력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1880년대에는 원주민들의 문화를 말살시키려는 시도가 미국 정부 차원에서 실행되었다. 도스 법(Dawes Act)과 같은 정책들이 그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도스 법과 같은 법안들은 원주민들의 문화가 "원시적"이라는 이유로 말살시키고, 더 발전된 미국 주류 백인 사회의 문화를 가르쳐 더 나은 길로 원주민들을 인도하고자 했다. 이 시기 원주민 어린이들은 강제로 미국의 사립학교에 보내져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교육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삶의 터전을 잃고도 부족의 역사와 자긍심을 지키고자 하는 원주민 부족들에게는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왔다.



루터 스탠딩 베어

1868년에 태어난 루터 스탠딩 베어 역시 미국 사우스다코타 주에 있는 인디언 보호구역인 로즈버드 기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칼라일 인디언 산업학교"(Carlyle Indian Industrial School)라는 학교에 다닌 스탠딩 베어는 어릴 적부터 원주민으로서의 문화를 버리고 미국 주류 문화와 동화할 것을 강요받아 왔다. 즉, 스탠딩 베어는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보호구역에 격리되어 자라면서, 학교에서는 주류 미국 사회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사상교육을 듣고 자란 셈이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였는가?


1933년 스탠딩 베어는 "인디언이 미국에 의미하는 바"(What the Indian Means to America)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출판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글은 '인디언'이라는 정체성이 미국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하며, 당시 미국인들이 원주민 사회, 이주 정책, 그리고 무엇보다 자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에세이에서 스탠딩 베어는 미국의 백인들이 아직도 원주민들을 "자연에 속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에세이의 도입부에서, 스탠딩 베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숲, 평원, 푸에블로, 메사의 지역이든 간에 토지의 것이다... 그는 한때 야생의 해바라기처럼 자연스럽게 자랐다; 그는 버팔로가 자연에 속한 것과 똑같이 그에 속해 있다."


이처럼, 스탠딩 베어는 원주민 부족이 어떻게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지 설명한다. 이는 원주민 부족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에게도 해당하는 바였다. 스탠딩 베어의 세계관 아래에서는, 그 어떤 인간도 자연으로부터 완벽히 독립할 수도, 독립해서도 안 되었다. 모든 인간은 의식주의 모든 방면에서 자연에 의존하며 빚을 지기 때문이다.


스탠딩 베어가 보기에, 미국에서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독립하여 진보하였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오직 백인 사회 뿐이었다. 스탠딩 베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백인들이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백인들의] 문명의 과실은 분명 자극적이고 유혹적이지만, 동시에 역겨우며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보다, 문명의 역할이 자연을 고통스럽게 하고, 도난하고, 좌절시키는 것이라면, 과연 그를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즉, 스탠딩 베어는 미국의 진보와 문명이 자연과 그 원주민들을 향한 착취 위에 세워졌음을 꼬집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이 질문은 더욱 날카롭게 다가온다. 21세기 선진국들은 여전히 자연으로부터 독립했다고 믿는다. 기술과 자본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고, 탄소 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다고, 전기차와 태양광 패널로 문명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전기차의 리튬은 남미 원주민들의 땅에서 채굴되고, 그 태양광 패널의 희토류는 아프리카의 광산에서 온다. 2019년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는 리튬 채굴로 인해 원주민 공동체의 물 공급이 위협받았다. 스탠딩 베어가 100년 전에 본 것과 똑같은 구조다. 문명은 여전히 자연을,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착취하며 '진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인디언은 과연 미국에게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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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스탠딩 베어는 백인들이 원주민들을 "자연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로 배척하고 무시한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히려, 스탠딩 베어는 자연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그 안에서 공존하는 원주민들을 폭력으로써 몰아낸 백인들이 "인디언 문제"의 원인임을 되새긴다.


"최근의 "인디언 문제" 중 인디언들이 스스로 만든 문제는 단 하나도 없다. 오늘날 인디언들과 관련하여 존재하는 모든 문제는 백인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는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즉, 백인들에게 자연과 공존하여 살아가는 원주민들은 개발로 가는 길에 있는 후진적인 방해물, 즉 '문제'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말 미국 정치계 논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원주민 문제"는 원주민들 자신이 아닌, 그들을 바라보는 주류 백인 사회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스탠딩 베어는 20세기 초 미국의 정치적 상황을 겨냥해 글을 썼지만, 자연과 인종, 그리고 진보에 대한 그의 혜안은 21세기의 우리에게도 교훈을 남긴다. 무엇보다, 21세기의 우리들 역시 철학적, 정치적, 사회적 담론에서 '자연'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연스럽다. 부자연스럽다. 야만적이다. 문명인답다. 이와 같은 개념들에 대해 말할 때마다 우리는 자연에 특정한 정치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야만적이라고 부르고, 누군가의 삶의 방식을 비문명적이라고 치부할 때, 우리는 스탠딩 베어가 경고한 바로 그 폭력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과 공존하는 삶이 야만이 아니라 지혜일 수 있다는 것을, 문명이 항상 진보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오만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해당 단어들을 사용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무엇이 과연 '자연'스러운가?


참고문헌

Luther Standing Bear, What the Indian Means to America (1933).

보스톤 코리아, 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6. 기숙학교를 통한 인디언 동화정책

https://www.bostonkorea.com/news_test.php?mode=view&num=23897

한겨례, 폭력없는 대자연에서 배운다.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211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