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에서 뭐 입지?
여행을 좋아하지만 짐 싸는 건 싫어한다. 필요한 것들 챙겨야 한다.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자주 여행하다 보니, 출발 하루 전에 빠르고 간단하게 짐 챙기는 요령도 생겼다. 빠트리는 게 있어도 현지에서 해결한 경험 많아서 이제는 크게 스트레스 받지는 않는다. 크루즈여행은 다르다. 더 세심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 크루즈 내에서 정하는 드레스코드에 따라 옷을 맞춰 입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크루즈여행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연안 도시를 잇는 7일간의 서부지중해 일정이었다. 주변에 크루즈여행을 해 본 사람들도 없고 관련 자료도 찾기 힘들어서 사전 지식 없이 준비하고 짐을 싸야 했다. 학부 전공 시절 교과서에서 보았던 크루즈의 사진들, 영화 속 크루즈 파티를 떠올리며 드레스와 한복 한 벌씩 챙겼다.
크루즈 승선 첫날, 같이 갔던 친구와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무슨 종교 단체에서 온 사람들처럼 흰옷을 맞춰 입은 듯했다. 배 안은 온통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며칠이 지나고서야 흰옷을 입고 있던 그들이 좋교 단체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크루즈를 타게 되면 매일 방으로 다음날의 정보를 담은 신문이 배달된다. 신문의 첫면에는 보통, 목쩍지의 날씨, 시차, 정박 시간 등이 적혀있다. 해 뜨는 시간, 해 지는 시간도 있다. 매일 다른 곳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바다 한 가운데서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묘미이기도 하다. 신문 첫 면에 있는 중요한 정보 하나가 바로 그날의 ‘드레스코드’이다. 기재된 내용에 따라 저녁 식사에 맞추어 입으면 된다. 많은 사람이 흰옷을 입고 있던 그날의 드레스코드는 ‘화이트’였던 것이다. 크루즈 일상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매일 다른 복장 콘셉트’ 자체를 알지 못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크루즈여행 갈 때면 반드시 흰옷을 챙긴다. 선사마다, 일정마다 드레스코드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화이트 의상을 챙겨 가면 일정 중에 한 번은 꼭 입게 된다. 그 외에도 ‘엘레강스’, 또는 ‘블랙타이’ 자주 입는다. 한복을 가져가서 입었을 때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한복의 화려한 문양과 색을 보고 반해서 줄까지 서서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였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전 세계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대. 배 안에서 ‘한류열풍’을 실감하기도 했다.
‘블랙 타이’는 격식을 차려서 입으라는 신호다. 여성의 경우, 검은색의 이브닝드레스, 남성의 경우 턱시도를 준비하면 된다. 이날은 선사의 모든 직원이 업무별로 정해져 있는 유니폼을 모두 갖춰 입고 나와 함께 파티를 즐긴다. 멋진 드레스를 차려입은 날, 정복을 입고 있는 선장과 사진 촬영도 놓치지 않는다. 저녁마다 드레스를 챙겨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캐주얼로 정해지는 날도 있다. 면바지에 셔츠 정도 편하게 입어도 된다.
두 시간 넘는 코스요리의 식사시간. 드레스와 턱시도 차려입고 격식 갖춰 식사하는 것도 보통 일 아니다. 무리할 필요 없다. 각자의 취향과 선택일 뿐. 편안한 복장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하지만,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해 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 보는 것’ 아니겠는가. 낯섦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법 배우는 것도 여행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불편하고 번거롭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이왕이면 멋지게 차려입고 그 시간에 푹 빠져 보면 어떨까. 함께 크루즈를 타고 서로 어울리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 속에, 나도 함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