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내가 사는 법 - 78세 엄마의 취업 소식. 은퇴

by 여행하는 술샘


78세 엄마가 좋은 소식 있다며 전화 왔다. 어린이집 하모니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10여 년 전부터 해 오고 있는 일인데, 올해는 계약이 안되어 대기자로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들에게 워낙 인기 있는 일자리라 대기자로 있다가 다시 계약되는 경우는 없는데 연락이 왔다며. 진심으로 축하드렸다.


일하는 시간이 노인정에서 화투 놀이하고 자식 자랑, 남편 흉보며 지내는 시간보다 훨씬 좋단다. 엄마의 전화 목소리에 설렘이 느껴졌다.



나의 부모님은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한 세대이다. 은행원으로 30년을 일하신 아버지, 주부로 평생을 살아온 엄마. 그저 열심히 직장 생활하고 나면 나라가 알아서 살 수 있게 해줄 알았다고 했다.


퇴직금과 국민연금으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IMF 때 명퇴하고 사업 벌였다가 손해 보았다. 결혼한 자식이 이혼하고 다시 돌아왔다. 손녀들을 함께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매해 노인 일자리 지원하고, 일하러 가시는 모습 보고 내가 더 넉넉하게 돈을 드리지 못해 그런가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올 초 계약이 안됐다며 아쉬워하는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나이도 있고, 오래 하셨으니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지요. 월급으로 받았던 돈이 아쉬워 그런가 싶어 내가 좀 더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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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전화 속 엄마의 목소리는 취업 면접 후 합격 결과 기다리는 20대와 다르지 않았다. 매일 출근할 곳이 생기고, 해야 할 일이 생긴 기쁨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엄마의 행복이었다.


몇 년 전 라디오에 나온 한 원로 배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늙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고, 일을 안 해서 늙는 거다." 내가 더 이상 사회에서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하는 순간 우리는 늙는다.



예전에 도쿄 여행 갔을 때 맥도널드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를 본 적 있다. 벌써 20년 전이니,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다 먹은 테이블 정리해 주고, 바닥을 닦아주는 서비스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안쓰럽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할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하며 행복해했을 것 같다.



일본에는 연세 지긋한 분들이 있는 카페나 바가 많다. 료칸 청소를 하며 숙식을 제공받고, 일하지 않는 시간에는 여행도 할 수 있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20년 전부터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처럼 한국도 이제 그런 현실이 되었다. 한국에도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인이 여전히 많다. 그들을 안전한 곳에 두고 보호만 할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더 많이 필요하다.



화장 곱게 하고, 아이들이 좋아할 옷으로 골라 차려입고 집을 나설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다. 엄마는 아직 큰소리로 잔소리도 하고 운전도 하신다. 기운이 펄펄 넘치는 할머니다. 하모니 선생님의 재계약은 일자리 이상의 의미이다. 덕분에 엄마의 건강 수명은 몇 년은 더 연장된 것 같다.


다음 주에는 부모님댁에 가서 엄마를 위한 축하 파티를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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