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매달린 여자 제2화

기록 속의 균열

by 우종진 변호사

기록을 읽는 데에는

기술이 필요하다.


검사가 쓴 공소장은

일종의 소설이다.

가장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이야기.

읽다 보면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공소장을 먼저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선입견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는 기록을 거꾸로 읽기 시작했다.

뒤에서부터.

감정서. 현장 사진. CCTV 목록. 압수물 목록.

그런 다음 진술서.

공소장은 제일 마지막에.


그렇게 읽다 보면

가끔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처음 눈에 띈 것은

모발 감정서였다.


수사기록 중간에

조용히 끼워져 있던 문서.

아무도 강조하지 않은 문서.


피해자 모발 검사 결과.

필로폰 양성반응.

모발 전 구간에서.


모발은 평균 한 달에 약 1cm 자란다.

나는 계산했다.

피해자는 이 사건 훨씬 전부터

이미 필로폰을 투약하고 있었다.


피해자는 수사기관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이 사건 이전에는 필로폰을 투약한 경험이 없다."


하지만 모발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문서 위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그다음 페이지를 넘기다가

또 하나에서 멈췄다.


"환각 가능성 배제 불가."


수사기록 한 귀퉁이에 작게 적혀 있던 문장.

아무도 밑줄 치지 않은 문장.


나는 한 장면을 떠올렸다.

창문과 창문 사이를 옮겨 다니던 여자.

구조를 거부하며 저항하던 여자.

방 안에서 허공을 향해 손짓하던 여자.


피고인이 접견실에서 했던 말도 떠올랐다.

"그날 밤부터 이상했습니다.

계속 남편이 있다고 했습니다.

창문을 가리켰습니다.

화장실에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환각.

필로폰 투약 후 수면이 부족해지면

현실과 환상이 섞이기 시작한다.

없는 사람이 보이고.

없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공포는

매우 실제적이다.


그 여자에게는

그날 밤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피고인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가

이 사건의 핵심이었다.


피해자에 대해 더 찾아봤다.


수사기록 속 피해자는

단순한 "장애인 피해자"였다.

하지만 기록을 더 읽다 보니

다른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울에 살고 있었다.

남편이 있었다.

남편도 청각장애인이었다.


그리고 사건이 있기 며칠 전

남편과 크게 다퉜다고 했다.

나는 잠시 멈췄다.


서울에 남편을 두고

다투고 내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이미 아는 트랜스젠더를 만났다.


트랜스젠더.

수사기록을 더 보니 이 사람의 마약 전과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판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피해자를 이 자리까지 이끈 사람이 있다면

그건 피고인이 아니라

트랜스젠더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이 사건에서 증인도 피의자도 아니었다.

그냥 사라져 있었다.


법정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공백을 메모했다.


피고인 폰에 기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바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압수물 가환부 신청서.

압수된 물건을 일시적으로 돌려받는 절차였다.


법원의 허가가 떨어졌다.

나는 검찰청 증거보관실로 향했다.


증거보관실은

언제 봐도 비슷한 풍경이다.

형광등 불빛 아래 플라스틱 봉투들이 줄지어 놓여 있다.

누군가의 인생이 증거물 번호로 정리된 공간.


수사관이 투명한 봉투 하나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피고인 휴대전화입니다."


나는 봉투를 열었다.

차가운 플라스틱의 촉감.

화면에는 금이 조금 가 있었다.

오래된 기종이었다.

이걸 들고 도주하다 놓고 갔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전원을 켰다.

화면이 켜졌다.

나는 메시지 앱을 열었다.


대화창을 누르는 순간

수십 개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나는 숨을 멈췄다.


첫 메시지는 사건 며칠 전이었다.

피고인이 보낸 메시지.

"몇 칸? 두 분 다?"


"칸"은 필로폰의 단위였다.

"두 분"은 피해자와 트랜스젠더였다.

그들이 이미 함께 쓰고 있던 언어였다.


나는 계속 읽었다.

"지금은 안 서고 사정 안 되지만

그래도 너무 좋아서 괜찮아요.

누나들 처음 보지만 너무 좋고 행복해요."


잠시 뒤 메시지.

"어제 우리가 마지막 빵 터지고 자야 되는데 안 자잖아.

지금도 하나 하면 몸이 빵 터져."


그리고 분위기가 바뀌는 지점.


"어떻게 꺼내서 몇 칸씩 했는데?

나 잘 때 꺼내서 했냐고."


피고인이 보관하던 필로폰이 일부 사라진 것이었다.

그는 피해자를 추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메시지.

"너 상태 오고 환각 보이고,

옆에 없는데 나보고 저 사람 보내라고.

그때마다 내가 살짝 받아줬어.

우리 둘뿐이다. 나 눈 쳐다봐.

이러면 나를 보면 안아 줘."


나는 그 문장에서 손을 멈췄다.


"너 상태 오고 환각 보이고."


강간범이 피해자에게 이런 말을 쓰지 않는다.

이 문장은 누군가를 달래는 사람의 언어였다.

그녀의 환각을 알고 있는 사람.

그 공포를 곁에서 보던 사람.


계속 읽었다.


"4일 만에 이용당한 바보."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들.

"발기가 안 된다."

"그냥 애무만 하자."

"괜찮냐."

잠시 뒤 피해자의 답장.

"괜찮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창문 열지 마."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강간범이 이런 문자를 보낼까.


나는 휴대전화를 조심스럽게 봉투에 넣었다.


증거보관실 형광등 불빛이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오후였다.


이 사건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있었다.

수사 기록 속 이야기.

그리고 이 휴대전화 속 이야기.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달랐다.


나는 어느 쪽이 더 진실에 가까운지

이미 알고 있었다.

이제 문제는

그것을 법정에서 증명하는 일이었다.






- 본 작품은 상상력과 문학적 재구성을 바탕으로 창작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사건, 배경 등은 모두 소설적 표현을 위해 구성된 것이며, 실제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의 유사성은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 이 작품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상황을 소재로 삼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실관계를 서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 또한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 행동, 직업, 관계, 사건의 경과 등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창작되거나 변형된 요소이며, 현실의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지칭하거나 재현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 독자분들은 본 작품을 사실 기록이 아닌 문학 작품으로서의 허구적 서사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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