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구조
사무실 벽에는 수십 장의 종이가 붙어 있었다.
왼쪽에는 피해자 진술.
오른쪽에는 객관적 증거.
가운데에는 문자 메시지.
나는 한참 동안 그 벽을 바라봤다.
직원들은 이미 퇴근했고
사무실에는 나 혼자였다.
이런 사건은 혼자 정리해야 할 때가 있다.
혼자 생각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만든 이야기의 중심은 단순했다.
피해자는 처음 만난 남자에게 마약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도망치려다 창문에 매달린 채 발견되었다.
짧고 명확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그 단어가 붙는 순간
이야기는 더 강해진다.
반박하기 어려워진다.
반박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나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는 그 구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
CCTV 기록을 다시 펼쳤다.
호텔 복도 CCTV.
사건 발생 시점부터 구조 시점까지.
영상 속 복도는 조용했다.
새벽. 아침. 낮.
객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단 한 번도.
피해자는 여러 차례 도망치려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CCTV에는 그 흔적이 없었다.
다음은 감정서.
질내. 음성.
자궁경부. 음성.
외음부. 음성.
항문. 음성.
콘돔. 음성.
휴지. 음성.
피해자는 성관계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감정 결과는 그 말을 지지하지 않았다.
다만 성인용품에서는 달랐다.
두 사람의 흔적이 혼합 검출되었다.
강간보다 합의에 가까운 방향이었다.
그리고 영상들.
나는 영상을 하나씩 열었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물건을 던지고 있었다.
창문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면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다."
"진정해라."
"아무도 없다."
나는 영상을 멈췄다.
이 장면은 폭력의 장면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달래는 장면이었다.
환각 속에서 공포에 빠진 사람을
옆에서 붙잡고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피고인을 다시 만났다.
구금된 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피고인은 오늘도 지쳐 있었다.
하지만 내가 들어서자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 조금 보입니다."
"뭐가요."
"사건의 구조입니다."
나는 노트를 열었다.
"검찰은 당신이 피해자를 강제로 지배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증거는 그 이야기를 완전히 지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통제되지 않은 밤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약. 수면 부족. 환각. 공포.
그날 밤 그 방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 순서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피고인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제 삶이 끝난 것 같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말을 멈췄다.
구치소에 갇힌 사람들은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른다.
바깥세상은 계속 돌아가는데
자신의 시간만 멈춰 있다.
그 사람은 벌써 두 달째 그 시간 속에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이 나를 바라봤다.
"제가 계속하겠습니다."
변호인이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빈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다음은 법정이었다.
- 본 작품은 상상력과 문학적 재구성을 바탕으로 창작된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사건, 배경 등은 모두 소설적 표현을 위해 구성된 것이며, 실제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의 유사성은 의도된 것이 아닙니다. - 이 작품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상황을 소재로 삼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실관계를 서술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격, 행동, 직업, 관계, 사건의 경과 등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창작되거나 변형된 요소이며, 현실의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직접적으로 지칭하거나 재현하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독자분들은 본 작품을 사실 기록이 아닌 문학 작품으로서의 허구적 서사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