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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꽤 호감이 있었다. 무심한 말투와 달리 배려하는 행동들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친구로 만났다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의 나쁜 습관이 눈에 보였고 그건 내가 감당하기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한 계절을 함께 보내기도 전에 인연을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이후로 그는 끊임없이 전화를 했고 메시지를 남겼다. 주로 새벽이었다. 술김에 했겠지, 한두 번 겪어온 일이 아니므로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도 그는 계속 무례한 연락을 반복했다. 물론 그의 번호를 차단하긴 했지만, 차단된 번호도 부재중으로 흔적을 남긴다. 결국, 한 번만 더 연락하면 스토킹으로 신고하겠노라 협박하고 말았다. 그게 통했는지 얼마간 연락이 없었다. 잊어버리고 소설에 매진하고 있을 즈음 그의 연락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휴대폰까지 빌려서 전화를 해댔다. 역시 새벽이었다.
아무래도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그가 우리집을 알고 있고 한 동네에 산다는 게 떠올랐다. 번호가 사라지면 찾아올지도 몰랐다. 정말 짧았던 인연인데 이걸 끊지 못하는 그도 참 못났고, 부재중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나도 못마땅했다. 그 사람 덕분에 스토킹 법률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다.
스토킹으로 기소된 재판에서 이상한 판결이 있었다. 부재중 전화는 스토킹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멍청한 판결이었다. 공포란, 대상이 눈앞에 있을 때만 발현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가 대문 밖에서 들릴 때부터 우린 무서웠다. 명분 없이 학생들을 패던 선생님의 수업 종소리가 울릴 때부터 우린 벌벌 떨었다.
스토킹 대상이 된 게 처음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가 산골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것. 내가 사는 곳이 단독 주택이 아니라 빌라라는 것. 심지어 오래된 빌라라서 방음이 전혀 안 된다는 것 또한 다행이라 여겨지는 순간이 왔다. 악 쓰고 소리 지르는 건 자신 있었다.
그의 부재중 전화는 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지쳐가고 있거나 포기하고 있거나. 나는 그의 미련이 다할 때까지 참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취해도 내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부질없는 짓이라는 확신이 생길 때까지. 혹시나 집착의 대상이 다른 여자에게로 옮겨가는 것도 무섭다. 스토킹은 명백한 폭력이며 집착도 습관이다. 그러니, 너는 제발 혼자 살아라!
되돌아보면 누굴 탓하랴.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말아야 했다. 연결이 시작되는 순간, 연결되지 않을 권리까지 빼앗는 나쁜 인연도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인연과 나쁜 인연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 걸까.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이 있었다. ‘당신은 왜 쓰레기만 만날까.’ 꽤 자극적인 문구를 내세운 영상에서 대답을 들었다. ‘당신이 쓰레기만 골라서.’ 그래. 인생은 늘 단순하다. 자꾸만 나쁜 인연을 만난다고 생각된다면, 당신의 안목을 교정해야 한다. 안목이 좋아야 명품과 짝퉁을 구분한다. 내가 볼 때 이건 타고나긴 힘들다. 좋은 가정에서 자라서 자연스럽게 안목이 생긴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얻어 맞고 피 터지면서 겨우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과거를 들추자면, 나는 일명 상남자 스타일을 좋아했었다. 거칠고 야생마 같은!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나중에 심리학을 공부한 후에 알게 되었다. 그건 내 어릴 적 기억에서 온 방어기재였다. 나를 때리는 건 모두 남자. 그러니까 때리는 남자보다 더 힘이 센 남자를 만나야 해. 지금 생각하면 나는 얼마나 바보 같았나. 돌아온 건 더 강력해진 폭력이었으니까.
언제부턴가 나의 안목이 바뀌었다. 강하고 거친 남자는 거부하게 되었다. 그 시점은 자존감이 강해지고 나서였던 것 같다. 남자를 만나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일상적인 말투, 술 마신 후의 말투다. 그리고 내가 부재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일 때문이든 심리적 문제이든 내가 혼자이고 싶을 때 건드리지 않을 것. 그런 조건들이 맞지 않으면 가차없이 인연을 끊었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어야만 안정을 느끼는 사람은 불편하다. 어린 아이들이 분리불안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연애를 한다면 집착으로 이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스토킹의 전단계, 집착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은 연결에서 오는 것이지만, 각자 자신을 사랑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또한 존중해 주어야 한다. 나는 그게 연결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할 여유가 생긴다. 그것은 서로를 해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되기도 한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존중해주기 마련이다. 무해한 관계를 맺기 위해 필요한 건, 먼저 자신과 친해지는 것이라 믿는다. 자존감은 타인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기 전에 자신이 충분히 무해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있어야겠다. 나는 그것을 깊은 고독과 글쓰기에서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