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의 언니는 마흔 중반에 죽었다. 언니는 죽기 전까지 엄마와 연결되어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와 함께 살았고, 결혼하고 나서는 엄마와 같은 아파트에 살았다. 두 사람은 거의 매일 만났고, 하루에 몇 번이고 통화하면서 질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사이좋은 모녀, 착한 딸과 행복해 보이는 엄마였다.
언니는 언젠가부터 엄마와 느슨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듯했다. 엄마가 자신을 너무 의지한다는 사실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그런 말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죽었다. 정신을 차리고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즈음, 어쩌면 언니가 자기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언니는 죽는 날까지도 엄마와의 탯줄을 끊지 못했다.
세상 유일하게 의지했던 큰딸이 죽자, 엄마는 다른 탯줄을 찾으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일찌감치 탯줄을 끊고 독립해 살았기에 엄마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었다. 가엾은 엄마에게, 생애 처음 탯줄 없이 홀로 떠다니는 엄마에게 나는 다른 걸 주기로 했다. 엄마의 삶.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엄마의 삶.
가수의 꿈에 도전해 보라고 했더니 진짜 학원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장사의 경험을 살려 가게를 해보라고 했더니, 자금을 들먹이다가 돌보는 손녀들이 어려서 안 된단다.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다른 건 핑계일 뿐, 엄마는 손녀들과 탯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사십 년 넘게 연결되었던 딸이 죽음으로 탯줄을 끊어버리자, 그 딸이 남긴 자식들에게 끊어진 탯줄을 연결했다. 장모와 사위와 두 손녀가 한 가족이 된, 이상한 가정을 꾸리면서까지.
엄마의 탯줄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나는 되뇐다.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이 어디 그리 쉽겠냐고. 그렇게 이해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이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른다. 엄마는 해내야 한다. 탯줄을 완벽하게 끊어버리고 사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나는 스물아홉에 독립했지만, 젊다고 해서 독립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실제로 돈 백만 원 들고 독립했다가 탯줄을 끊은 삶의 무서운 펀치를 정통으로 맞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지 몰랐다. 시골에 살아도 마찬가지였다. 최소한의 생활비는 적지 않았다. 많이 울었고 자꾸 두려웠지만, 그래도 결국 살아는 지더라. 그 길로 그나마 느슨했던 엄마와의 탯줄을 끊어버렸다. 내 인생은 독립하기 전과 후로 나뉘었다. 독립한 후에야 진짜 내 삶이 시작되었다.
독립하고 싶어 하는 사촌 동생이 물었다. 어떻게 돈도 없이 독립할 생각을 했냐고. 서른이 훌쩍 넘은 그녀는 아직 부모님과 살고 있다. 함께 산다는 것보다 얹혀산다는 게 맞는 말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독립할 의지만 있다면 돈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옥탑이나 지하에서 시작해도 괜찮다고. 독립할 때 부모님 도움을 받는다면 그건 독립이 아니라고.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결국, 살아는 진다고.
엄마는 곧 손녀들의 육아를 마치게 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점이다. 중고생에게 할머니의 손길은 그다지 필수가 아니다. 바꿔 말하면, 손녀들에게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어야 한다. 엄마는 그 이후의 삶을 걱정하고 있다. 나는 엄마가 잘해낼 거라고 믿는다. 20대에 무려 딸을 셋이나 낳아서 키웠으니까. 그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이니까.
평생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던 엄마의 독립을 위해 나는 자주 응원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봐야 비로소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다. 겁먹을 것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엄마를 지킬 테니까. 탯줄을 깔끔하게 잘라버리라고,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번쯤 살아봐야 한다고 계속 잔소리를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