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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Aug 30. 2023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4



갓 결혼했다는, 산책하면서 종종 만나는 동생이 마침 그 일로 고민 중이었다. 시어머니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결혼한 아들에게 물었고 그 아들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의 반응을 시어머니가 알게 되었고 그 뒤로 연락이 뜸하다고 했다. 거기서 끝이면 상관없는데, 아내는 남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얼굴은 괜찮은 게 아닌 남편 때문에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시어머니께 전화하라고. 내 경험을 알려주며 은유적으로 마음을 표현해 보라고 했다. 물론 시어머니의 성품에 따라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부모와 공유하는 것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그 부모가 내 부모가 아니라 다른 부모일 때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남편의 부모. 나는 새로운 가족이 된 사람들과 현관문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이 애초부터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이다. 남편으로서는 아내의 부모가 새로운 가족일 테니, 이쪽저쪽 저울질할 필요 없이 현관문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면 문제가 없다.      


예전에 엄마 집과 가까이 살 때, 엄마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외출 중이었고 엄마는 내 집 앞에 와 있으니 별수 없이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간 후 바로 비밀번호를 바꾸었다. 그 말을 하니 엄마는 생각보다 크게 서운해했다. 엄마가 남이냐, 엄마가 뭘 훔쳐가겠냐,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나는 엄마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개인이 누려야 할 권리가 있는 법. 그럴 때는 짜증 내거나 이해시키려고 하면 좋지 않다. 고민 끝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 섭섭한 거 알아. 근데, 엄마. 나는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 말을 엄마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말 때문에 엄마의 서운함이 진정된 건 분명했다. 싸우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시급한 건 상대방의 불편한 마음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 은유로 표현하는 것이 좋다. 은유적 표현을 쓰면 그것을 이해하거나 혹은 감동할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제법 분위기가 편한 쪽으로 흐른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의 의미는 간단하다. 내 집 비밀번호를 공유할 생각이 없다는 뜻. 만약에 그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했다면 엄마와 크게 싸우거나 엄마 마음을 더 상하게 했을 수도 있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오래전 서울 옥탑방에 살 때의 기억에서 발현된 말이기도 하다.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에는 불이 켜지지 않아서 어두웠다. 밤에 그 계단을 오르면서 여러 번 헛다리를 짚었고, 무릎이나 발목을 다치곤 했다. 어두워서 현관 열쇠 구멍을 맞추기도 힘들었다. 집은 깜깜했고 내 마음도 깜깜했다. 옥탑방이라도 집안에서 문을 열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나를 위해 미리 불을 밝혀줄 사람이 있었다면, 옥탑방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이었다.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내가 집에서만 작업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도 한몫한다. 내 책상 위에는 수많은 원고와 책이 있고 컴퓨터와 노트북에는 거의 모든 작품이 있다. 나에게 재산이라곤 그것밖에 없다. 창작물은 유출되면 저작권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 또한, 책상 위에 있는 달력을 보면 내 스케줄과 수입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내가 없을 때, 혹은 약속 없이 누군가 집에 오는 상황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저는 집이 직장이에요. 직장에 불쑥 찾아오지는 않잖아요.’ 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걸 보여주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기도 했다.     


며칠 뒤, 부부가 함께 산책을 나왔다. 다정해 보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말해주었다. 시어머니께 한 말을.      


 “어머니 오시는 날이면 문을 열고 환대하는 며느리가 되고 싶어요.”      


현명한 그녀는 내가 알려준 말에서 ‘환대’라는 단어를 덧붙이면서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시어머니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고 한다. 온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예쁘게 말하는 상대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어머니는 점점 익숙해질 것이고 받아들일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말하는 아내를 보고 남편이 반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데서 성과가 났으니 나쁘지 않았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말을 돌려서 해야 하느냐고 투덜댈지도 모른다. 그래, 피곤한 일이지. 그래도 어쩌겠는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성의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현관문 비밀번호를 사수하기 위해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을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하나다.

내 집이 아니라면 문을 열어줄 때만 들어가도록 하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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