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

음세계가 온다

by Anand

난생처음 똥물을 뒤집어쓸 뻔했다. 나는 당시 8살이었던 이었는데, 꽤 오래된 일이었음에도 얼마나 아찔했는지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음언니가 4살 무렵이었다. 부모님은 웬만하면 두 분이 동시에 집을 잘 비우시지 않았다. 부모님은 아무리 내가 집에 있어도 동생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면 걱정이 되는 것 같았다.

피치 못한 일로 부모님이 집을 비운 어느 주말이었다. 피치 못한 일은 피치 못한 일을 낳는다. 음언니가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음언니는 엄청 조그마해서 일반 변기에서 용변을 보지 못했다. 아기가 쓰는 작은 변기에 앉아 볼일을 봤다. 부모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본 나는 그 변기를 가져와 음언니를 앉히고 용변을 보게 했다.

뒤처리가 문제였는데, 별로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듯 양손으로 음언니를 누여서 들어 올려 세면대에 물을 받아 놓고 씻기면 됐다. 어린아이가 하기 힘든 일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큰 편이었고, 반대로 음언니이는 4살이라기엔 엄청 작았다. 기껏해야 내 배꼽 정도에 왔으니 나는 음언니의 거의 두 배만 했다. 그런 만큼 음언니를 돌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컸다. 지금 음언니는 여전히 작지만, 옆으로 불었고, 나는 옆으로 불진 않았지만 위로 안 컸다. 음언니나 나나 둘 다 씁쓸한 성장기를 거쳤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지금이 더 버겁다.

음언니는 작고 나는 컸던, 합이 잘 맞는 그때는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별로 비위가 약하지 않았고, 늘 보던 일이라서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이걸 진짜 할 수 있을까?' 같은 설렘은 있었다. 어른의 일을 한 기분이랄까.

부모님이 돌아와서 대강 사태를 파악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잘조잘 말하면 멋이 없다고 생각했다. 눈치챈 엄마가 "응가했니?"라고 묻고 나서야 애써 덤덤한 척 "응 내가 치웠어"라고 했다. 속으로는 무척이나 흥분했지만 말이다. 차라리 그때 충분히 생색을 냈어야 했다. 덤덤한 척 멋진 척은 어디까지나 ‘척’ 일뿐이다. ‘척’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 형태는 대부분 좋은 모양새는 아니다. 잘난 척이라도 욕구는 그때그때 풀어야 하는 이유다. 억눌려 있다가는 예상치 못 한 형태로 튀어나온다.

며칠 뒤, 동생 용변 처리를 해냈다는 허세가 아직 영혼을 지배할 때였다. 당시에는 국가에서 장애인을 돌봐주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동생을 돌볼 사람을 고용해야 했다. 음언니는 낮에 잠도 많이 자고 활발히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그런 음언니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음언니는 불시에 경기를 하기 때문에 잠깐의 방심이 자칫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하루 종일 집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괜찮은 분들로 엄선해야 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엄선하려면 일단 지원자가 많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없고, 당장 부모님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대부분 지원하는 대로 몇 마디 형식적인 면접을 거치고는 집에 들어왔다.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고 회사를 나가던 그 시절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월수금, 화목토로 나누어 음언니를 돌봤다. 하필 내 허세 욕구불만이 아직 안 빠졌을 무렵, 그중에서도 괄괄하신 화목토 아주머니와 갈등을 빚게 됐다.

화목토 아주머니는 약간 다혈질이셨다. 몇 년 후엔 나도 다혈질이 되긴 했는데, 그때만 해도 난 상당히 온순하고 세상 물정을 몰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무슨 말이 든 되는 줄 아는 그런 전형적인 어린이 말이다. 하필 그날 그 아주머니가 음언니가 응가를 치웠다는 말로 이야기를 하게 됐다. 화장실에 갔는데, 대아에 물이 받아져 있었고, 직감적으로 동생을 씻긴 물이란 것을 알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응가 치우셨어요?” “응 치웠지~” 아주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날의 나를 말리고 싶은 순간이 왔다. 약이 오른 나는(왜 약이 올랐는진 몰라도) 허세가 잔뜩 들어간 채로 "정말 치웠다고요? 에이 안 그런 거 같은데요~?"라며 아주머니의 약을 올렸다.

내 딴에는 며칠 전 동생의 응가를 치운 게 상당한 프라이드여서 그랬던 것 같다. 동생 응가를 아주머니가 치울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아주머니는 나이도 상당했는데, 당시에도 예순이 거의 다 되셨던 것 같다. 지금 기억에도 꽤 무서운 인상의, 덩치도 커다란 아주머니였다. 그런 아주머니한테 까불거렸으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던 아주머니는 결국 화가 났다.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더니 씻긴 물이 든 대아를 들고 왔다. "이거 봐! 보라고! 이래도 안 치운 거 같냐!!" 하며 대야를 흔들어 댔다. 그 바람에 몇 방울이 내 얼굴에 튀었다. 대아를 들고나올 때 ‘저걸 나한테 부을 속셈이구나...’라고 최악을 생각해서인지, 오물이 조금 튀었어도 안도할 수 있었다.

애나 어른이나 자만은 좋을 게 없다. 아직도 생경하게 기억나는 그날 일이다. 억울한 건 내겐 일생일대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던 그날, 원인 제공자 당사자인 음언니는 태평하게 있었단 것이다. 억울할 게 아니라 고마워해야 하나 싶다. 그날 튄 물방울은 지금 내가 겸손한 척이라도 해 몸을 사리는 '거름'이 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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