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거울' 돋보기
세미는 불안하다. 좋아하는 친구 하은이 마치 죽은 듯 풀숲에 누워있는 꿈을 꿨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 불안한 꿈을 꾼 세미가 하은에 대한 걱정과 질투, 좋아하는 감정이 뒤엉키며 오해하고 또 그런 오해를 푸는 과정을 그린다.
언뜻 보기에 학창 시절 풋풋한 연애 감정을 주제로 한 영화처럼 보이지만, 2명의 주요 등장인물 사이 감정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세월호 침몰 시간, 나비, 수학여행이라는 세월호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암시하며 세상을 떠난 이들의 소멸뿐 아니라 그들과 관계된 세상에 사는 존재들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또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며 불러줄 것인지에 대해 말한다. 또 관계와 세상, 그 속에 개별 존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영화는 중간중간 관객에게 거울을 비추며 그 질문을 이어나간다. “당신은 무엇으로 이뤄져 있는가.”
영화에는 거울이 자주 나온다. 그 거울은 흔히 누와르나 스릴러 등의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인물의 이중성을 보여준다거나 내적 분열 등을 표현하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영화가 말하는 한 존재가 일으키는 ‘반향’을 표현하려는 도구로 작용한다. 영화 <너와 나>에서 나타나는 거울에는 다른 영화에서처럼 특정 인물이 담기지 않는다. 정말 관객에게 빈 거울을 보여준다. 보통 거울은 앞에 서 있는 사물을 비추지만,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거울이 관객을 향해도 그 거울에는 관객이 보이진 않는다. 관객은 현실과는 다른 상황에 물음표를 던지게 되고, 영화는 그 빈 거울에 담긴 것이 우리 자신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거울에 담기는 건 이야기고, 또 영화에 반영된 현실이다.
결국 수학여행을 갔다가 죽은 것은 세미다. 하지만 세미가 꿨던 꿈에서 누워있던 것은 처음에는 하은이었고, 친구들이었다가 세미 그 자신이 되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하은을 발견하기 전 세미는 가족과 이웃 모두가 사라진 공간을 헤멨다. 정말 누가 죽은 것일까. 헷갈리긴 해도 죽은 건 세미다. 또 세미와 수학여행을 간 친구들이다. 하지만 그 죽음 뒤에는 또 수많은 죽음이 따른다. 세미와 친구들의 가족, 또 세미와 가까웠던 하은과 그 모두를 알던 친구들도 죽었다. 떠나간 이들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역시 이들의 세상에서 관계를 맺다가 친구들이 떠나면서 역시 그 세상과 연관을 맺은 존재들도 없어진다. 세미의 꿈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존재가 변한 건, 꿈에서나 있을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 한 개별 존재가 사라지면 그와 관계 맺은 세상에서 존재 역시 죽는 것과 같은 현실을 보여 준다.
영화에서 나타나는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개별 존재성의 의미는 세미 아버지가 세미의 태몽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세미 아버지는 “엄마 말은 우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빨간색이라는 거지”이라고 말한다. 대체 불가한 색을 지닌 하나의 세계들은 또 그런 세계를 가진 다른 사람과 만나 서로의 삶에서 하나뿐인 삶을 산다. 그 세상에서 하나가 스러진다는 건 다른 하나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목인 <너와 나>는 단순히 2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너, 혹은 나로는 세상이 될 수 없지만, 너와 내가 연관되는 순간 그 자체로 하나의 대체 불가한 세상이 만들어진다. 수많은 너와 나는 수많은 세상을 만들어 간다. 당신이 없으면 그 세상에 사는 나도 없다. 당신들을 잊지 않는 건, 우리가 만든 세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세미의 반려동물인 앵무새는 영화에서 자주 나타난 거울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 앞에 있는 상대의 말을 따라 한다는 거다. 거울 앞에 선 내가 웃으면 거울 속 내가 웃는 것처럼, 앵무새에게 어떤 것을 듣고 싶으면, 내가 먼저 상대인 앵무새에게 말해야 한다. 세미는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 밤, 키우던 앵무새에게 “사랑해”를 말한다. 그 말은 울림이 되어, 꿈속 장면에서 죽어 누워있는 세미 자신에게 속삭이듯 들린다. 그리고 죽은 것 같던 세미는 눈을 뜨는 것처럼 하며 영화는 끝난다. 연결된 세상에서 잊지 않고 사랑을 말한다면, 너와 나의 세상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며 크레딧이 올라가면서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은 건 “사랑해”의 메아리가 마지막 소리로 남으며 영화와 관객이 맺는 세상, 그리고 영화에서 나타난 실재 세상과 사람들의 관계에서 “사랑해”를 마지막으로 남기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기억한다면 사랑하고 사랑한다면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