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쓸데없이 고집이 세다"-아버지
"주변의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선생님
"말 진짜 안 듣는다"-어머니
"자기 세계가 뚜렷하다"-지인
고집이 세고, 남의 말 잘 안 듣는 나다. 내가 듣는 말의 조건은 우선 논리 정연하며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뿐 아니다. 말하는 사람 자체도 내게 어느 정도 신뢰를 줘야 한다. 이 조건들을 갖추기는 꽤 어렵다. 그래서인지 나는 공통적으로 말을 잘 안 들어왔다. 최근, 어떤 말들이 내게 다가와 날카롭게 꽂혔다. 사람은 없고 '말만 있을 때'다.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나에게 한 말이 아닌 떠도는 말. 라디오에 보내는 문자다. 순수하다.
라디오국에서 일하게 됐다. 남의 말을 참 잘 안 듣는 난데, 전혀 모르는 청취자가 보낸 문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나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도, 청취자가 내 존재를 아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한 말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나 혼자 문자 창을 보다가 발견하는 떠도는 말들. 때로는 푸념, 때로는 자랑 섞인 말들이다. 일면식도 없는, 그렇기에 아무 편견도 없는, 그 자체로 울림을 주는 말들. 라디오에 닿는 문자가 그렇다. 문자는 순수하다. 악의도, 선의도 없다. 그냥 지금 자신의 감정, 행동 느낌을 말한다. 얼굴도,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말은 역설적으로 그 자체로 힘을 갖는다.
나와 관계없는 말이라 그런지 오히려 편견이 사라지고, '말'자체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청취자가 정확히 어떤 생각으로 그 말을 남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말은 적어도 내 세계 안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누군가는 물고기를 잡을 의도로 혹은 재미로, 작은 돌을 연못에 던졌을 수 있다. 그 의도가 어찌 되었건 돌은 연못에 크고 작은 울림은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 물고기를 잡으려는, 혹은 그냥 장난인 건지 하는 것이 사라지고 돌만 남는다. 그리고 여지없이 파장을 일으킨다. 누군가의 던지는 힘, 지구의 중력은 '물결'로 변한다. 전혀 상관없었던 힘이 내 마음, 생각에 떨림을 준다.
물결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라디오에 던진 말 한마디가 내게 어떤 물결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내게 닿은 크고 작은 말을 한데 모아 보아 스스로를 위한 경전을 만들려 한다.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으려는 내게 문자를 보내 준 청취자들. 울림을 남겨 준 사람들. 그 모두가 저자다.